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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ug 17. 2016

겉과 다른 한라산의 속살... 한라산 둘레길1_돌오름길

짧지만 나름 임팩트 있는 길_덤으로 돌오름도...

오랜 시간 동안 한라산 둘레길을 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아직 둘레길을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언가 계속 빠뜨리고 있다는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게 한다. 

얼마 전 삼형제 오름을 다녀오면서 꽤 오랫동안 만났던 한라산 둘레길이 다른 길들보다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갈까를 고민하다 한쪽에 차를 가져다 놓고 다시 버스를 타고 출발점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모든 한라산 둘레길이 다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쪽의 돌오름길과 천아숲길은 이것이 가능하겠다 싶었다. 1100 도로변에서 접근이 가능한 때문이다.


아침 일찍 차를 천아숲길 주차장 근처에 세워놓고는 부지런히 걸어서 버스를 탈 수 있는 1100 도로로 걸어 나왔다. 버스시간까지는 아직 10여분 남았다. 여유롭게 버스를 기다려 서귀포 휴양림 앞까지 가면 된다. 조금만 내려가면 한라산 둘레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얼마 전 삼형제 오름을 다녀오면서 꽤 오랫동안 만났던 한라산 둘레길이 다른 길들보다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운전사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서귀포휴양림을 간다고 하니 왜 서귀포까지 가냐며 의아해한다. 그 이유를 금세 알아차렸다. 승객들은 전부 등산배낭을 메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어리목에서 대부분이 내리더니 영실에서 나머지 사람들이 다 내린다. 버스 안에는 나 혼자 남아있다. 버스 운전사가 의아해할 만도 하다. 서귀포 휴양림을 아침 일찍부터 산책하러 갈 일도 아닌데...

초입에 바로 양봉농장의 벌들이 사람드를 반겨준다. 윙~윙~

도로변에서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니 바깥이 도로라는 사실을 금세 잊을 만하다. 새로운 세상이 바로 펼쳐진다. 밖에서 보는 한라산은 그래서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겉이 딱딱한 게의 속살이 여전히 딱딱하지 않듯, 물렁이는 살이 있다고 속에 뼈가 없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한라산은 언제가 겉과 속이 다르다.

여기서부터는 5.6km의 돌오름길. 둘레길 표지판은 500m 간격으로 거리를 보여주며 더불어 지도를 아주 친절하게 표시해 주고 있다. 


지금 걷는 길은 '돌오름길'이라고 불리는 구간. 거린사슴오름에서 돌오름까지의 길로 중간에 색달천이 흐르고 졸참나무 단풍나무 삼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분포되어 있다고 적혀있다. 돌오름에 오르면 법정이오름, 한대오름 노로오름, 삼형제오름 등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제주 서남부 지역의 경관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딱하니 특징을 잡을 수는 없지만 다양한 수종이 다종 다색 하게 펼쳐져 있다는 느낌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래서 인가 숲이 천편일률적이라기보다는 한 가지 특징을 잡을 수는 없지만 다양한 수종이 다종 다색 하게 펼쳐져 있다는 느낌이 어울린다.

때로는 원시림스러운 숲이 보이는가 하면 상당 부분 개발된 농장들도 곳곳에 표지판을 세워놓고 사유지임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인간의 손길과 숲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발바닥에 감촉을 추는 아기자기한 돌길들은 내가 숲 속을 걷고 있다는 존재감을 충분히 느낄 만하다. 그래서 돌오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름과 어울리는 길이 많은 편이다.

한참을 걷다 보면 한라산 숲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느껴진다. 곳곳에 펼쳐진 삼나무 숲과 순간순간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음을 직감케 해주는 조릿대 숲. 다만 그 점유가 압도적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안도감을 느껴야 할까.


내가 너무 조릿대를 싫어하는지 모르겠으나 무엇이든 단일화되고 획일화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숲은 뭐니 뭐니 해도 다양성을 보여줘야 그 숲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숲은 사람들에게 단일함이 주는 무덤덤한 자극과 때로는 공포를 주기 마련이다.  마치 끝없는 미로 속을 헤매며 제자리를 맴도는  공포심을 줄 때가 있다. 오전 일찍부터 그 같은 무미건조함을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숲은 뭐니 뭐니 해도 다양성을 보여줘야 그 숲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입장을 아는 듯 길은 처음부터 양봉농장에 이어 표고버섯 농장, 그리고 산삼 연구소가 계속해서 나타나며 자연을 활용하는 인간의 지혜를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길이 점점 무미건조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숲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임도를 둘레길로 사용하다 보니 곳곳에서 차량의 들고남이 편할 수 있도록 넓게 넓게 잘 정비되어 있는 길을 걷는 일이다. 더불어 중간중간의 콘크리트 포장은 발에게 주는 고통은 물론 마음속으로도 억울한 느낌으로 가슴이 시려온다.


그나마 잊힐만하면 나타나는 돌담과 하천의 흔적, 아마 흔적이 아니라 비가 오면 범람하고 넘칠 테지만 다양한 건천의 모습은 순간순간 잊혀가는 한라산의 새로움을 각성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어느 순간 조릿대 숲을 장악한 듯하더니 다시 새로운 숲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천이 있고 돌이 마냥 검은색이 아닌 흰색이 섞인 돌이 하천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찌 보면 검은색 돌에 이끼가 낀 모습보다 더 생경하다. 숲에서 순간순간 어두운 공포가 느껴질 때가 있다. 한라산에서 경계를 풀지 말라는 신호처럼 보인다.

더불어 중간중간의 콘크리트 포장은 발에게 주는 고통은 물론 마음속으로도 억울한 느낌으로 가슴이 시려온다

많은 곳에서 느껴지는 모습 한 가지. 이곳의 길에도 여지없이 아주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뿌리가 통째로 드러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마도 흙이 깊지 않아 더 이상 커져버린 나무줄기를 버티지 못하고 바람과 토양의 부실함 때문에 쓰러졌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나무가 쓰러졌다는 사실보다 그 뿌리에서 새롭게 자라나고 있는 다양한 생명들이다. 이끼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참으로 곱고 이쁜 모습을 하며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들의 삶의 이정표를 찾고 있다. 저들은 자신들이 자라는 곳이 엄청나게 큰 공룡 같은 나무의 뿌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나무 뿔리에서 자라나고 있는 새로운 식물들. 바라보고 있으면 참 생명의 신비를 저절로 느끼게 된다.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이 식물은 과연 어디까지 클 수 있을까.

둘레길을 찾는 인원들이 적지 않다. 가장 부러운 것은 차를 두대로 나뉘어 한쪽에 차를 세우고 일행을 태운 후 다른 쪽에 차를 세워서 트래킹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나야 혼자서 걷다 보면 그 같은 호사를 누릴 기회를 얻을 수가 없다. 다른 둘레길은 일행을 찾아야 할 판이다. 아니면 교통편을 도저히 연결할 방법이 없다.

흥미로운 점은 나무가 쓰러졌다는 사실보다 그 뿌리에서 새롭게 자라나고 있는 다양한 생명들이다

5.6km의 돌오름길은 그다지 길지 않아 돌오름 입구에 도착하니 10시 40분이다. 다소 싱겁다는 생각을 한 건 숲길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길이 짧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보너스 찬스. 돌오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표시판에 보이는 돌오름 입구까지는 겨우 150m 여기서부터 돌오름 역시 650m다. 있는 힘껏 쉼 없이 단순에 정상을 향해 재촉한다. 돌오름은 둘레길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명색이 돌오름길인데 정작 이름이 붙은 오름에는 가보지 못한다면 마침표를 찍은 것이 아닌 셈이다. 


굳이 돌오름을 고집하는 이유는 오름 정상에서 백록담과 주변의 오름들을 한 번에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노로오름, 삼형제오름, 한대오름 등에서는 한라산 주변을 바라볼 기회가 있었지만 이들을 남쪽 지역에서 바라볼 기회는 없었다. 


돌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한라산 풍경.
1100 도로를 지나다 보면 마치 아무것도 없을 듯한 숲의 연속일 뿐이다. 겉과 속은 다른 법이다


정상에서의 풍경은 명불허전. 서남쪽의 위치에서 보이는 한라산이 한없이 멋져 보인다. 생각건대 백록담 밑은 짙은 봉우리는 삼형제오름쯤 될 것이고 그 밑의 어정쩡한 구릉 같은 모습은 한대오름일 것이 분명하다. 왼쪽의 나지막한 모습은 노로오름일 것이며 뒤편의 혼자 두드러진 봉우리는 어승생악이 아닐까. 나만의 추론이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이 아니라면? 아님 말고...


돌오름을 내려와서는 5분간 제정비 시간. 둘레길의 아기자기한 맛을 짧은 기간을 통해 맛보았으니 이제는 진짜 길게 걸어야 할 시간. 아직 걸은 길의 2배 이상의 길이 기다리고 있다. 중간에 영실이나 1100 고지 쪽으로 나가는 길들이 임도로 잘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고 놀랍다. 1100 도로를 지나다 보면 마치 아무것도 없을 듯한 숲의 연속일 뿐이다. 겉과 속은 다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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