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 Aug 15. 2016

숲에도 퀄리티가 있다?_서귀포 치유의 숲

새롭게 깨닫는 한라산 숲의 다른 면을 깨치다.

#1


많은 사람들이 숲을 찾는다.


신선한 맑은 공기를 느끼고 자연과 합일되는 기분을 찾기 위해서거나 속세의 복잡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숲을 찾는다. 그 숲은 많은 이들에게 위안처가 된다. 혹은 관광 코스로 좋다는 후문이 붙어있기에 무작정 찾기도 한다.


좋기로 유명한 숲길에도 퀄리티가 있음을 느낀다. 물론 다분히 개인적이다. 그럼에도 강하게 이야기할 만하다. 숲에도 그레이드가  있다.


쓸데없는 찬양의 글을 위함이 아니다. 어느 날 아침 불현듯 느꼈다.

속세의 복잡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숲은 많은 이들에게 위안처가 된다

괜히 밀린 숙제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숲 치유사를 하는 분께 연락을 드렸다. 덥석 오전 약속을 하고 말았다. 오전에 살짝 비가 내린 때문인지 하늘이 촉촉한 느낌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이런 날 서귀포로 넘어가는 길은 평화로를 택할 이유가 없다. 1100 도로를 넘으면 숲 속을 지나는 기분으로 새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안개가 끼어있는 한라산을 넘는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다. 1100도로는 언제 넘어도 한적하니 좋다. 더구나 나를 추월 못해 안달이난 차들을 미리 보내고 나면 한동안은 여유롭게 구비구비를 넘을 수 있다. 그 와중에 안개로 좌욱한 산길은 도심의 혼란스러움을 잊기에 더없이 좋다. 10분만 차를 몰고 길을 나서면 새로운 세계가 한라산 자락에 펼쳐진다.


오늘의 목적지는 서귀포 치유의 숲이다. 서귀포 쪽으로 넘어와 제2산록도로로 접어들어 동쪽으로 달리면 서귀포시 시내 방향이다. 한참을 말없이 달리다 보면 생뚱맞은 표지판이 왼쪽으로 크게 서있다. 어느새 커다랗게 생겨버렸다. 도착 전에 얼마나 남았다는 이정표 정도만 있어도 좋으련만... 헬스케어타운 못 미쳐 시오름을 뒤에 두고는 바로 입구가 나타난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서너 명씩 짝을 이루어 오전부터 오르고 내리고를 하고 있다.


곧 너른 사무실 입구에 도착했다. 사무실 앞에 있는 조그마한 나무 부스러기가 3개의 봉우리 모양을 하고 있다.

"나름 오름을 상징하는 거예요"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만하지만 설명이 있어 더 명확해졌다.

"서귀포 치유의 숲이라고 쓴 것은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베어진 나무를 재활용한 거예요"

자부심이 한껏 묻어있다.


벌써 정식 오픈하기로 한 시간이 2년 정도는 지난 것 같다. 2014년이라는 애초의 계획이 늘어져 작년으로 연기됐고 이어 2016년 6월 25일 정식 오픈했다. 물론 사람들은 치유의 숲을 다닐 수 있다. 올해까지는 입장료 없이 다닐 수 있다고 하니 나도 이때다 싶어 숲 치유사 한분과 시청 관계자분과 함께 길을 나섰다. 애초에 예정에 없었지만 마침 시간을 잘 선택했다.

한참을 말없이 달리다 보면 생뚱맞은 표지판이 왼쪽으로 크게 서있다. 어느새 커다랗게 생겨버렸다

초입은 그냥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휴양림 같은 것이거나 제주도의 다른 곳에 익히 알려진 숲과 또 다른 것이겠거니 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려니 숲길, 숲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절물휴양림의 장생이 숲길, 한라생태숲, 삼다수 숲길, 붉은오름 휴양림 등 내놓으라 하는 숲과 숲길들이 쟁쟁하기에 서귀포 쪽의 숲 길중 하나이겠거니 생각했다.


숲길에서 감동을 받거나 너무 좋아 날뛸정도의 감성을 지니지는 않고 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숲길을 걷는 정도이므로 '좋다'는 말 이상의 표현을 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비자림 정도 되면 좋다거나 다른 숲들과 다르다거나 할 수 있겠지만 암튼 나무나 식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제로에 가까운 나로서는 숲의 차별성을 따진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좀 더 극단적으로 숲길은 어느 정도 걷다 보면 지루함을 느낀다. 첫 느낌의 숲길 형태가 계속 유지됨으로 인해 신선함을 잃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운동으로서의 숲길 걷기에 빠져 숲길의 면면을 이해하는데 도무지 관심을 갖지 못했다.


임도가 너무 넓은 데다 일부는 포장까지 되어 있어 숲길을 걷는 재미가 떨어지는 사려니 숲길. 그래서 사람들이 아기자기한 삼다수 숲길을 추천하기도 한다. 삼다수 숲길은 물론 조릿대 천지라는 아쉬움이 있다. 곶자왈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풍성함이 있으나 산책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곶자왈 도립공원 등등.


치유의 숲이 속한 곳은  제주가 표방한 개발 한계선인 제2산록도로 위쪽 한라산 방향에서 시오름까지의 숲길이다. 시오름까지 왕복하는 데는 3시간이면 족하다고 하니 다시 도전해볼 일이다. 그전에 숲 속 한가운데 있는 힐링센터와 숲속교실을 목표지로 다녀왔다.  

길가에 떨어진 편백나무 잎을 살며시 꺾어 향을 맡으니 어김없이 피톤치드 향이 강하게 내뿜어져 나온다

치유의 숲 메인 장소는 방문자센터로부터 1.7km를 가면 나온다. 힐링센터를 그럴듯하게 지어놓았다. 그 안에서 HRV측정과 체성분 측정 등을 통해 숲 치료 전과 후의 신체변화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음이온 세러피, 편백향 세러피 등도 가능한 장소다.


한라산의 메인 숲이 어찌 구성되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나 혼자의 일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예전의 일과 관련이 된 관계로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는 편백나무가 치유의 숲의 주요 나무들이다. 길가에 떨어진 편백나무 잎을 살며시 꺾어 향을 맡으니 어김없이 피톤치드 향이 강하게 내뿜어져 나온다.


#2


더위가 온 천지를 뒤덮고 있는 8월 중순의 한여름 낮. 집에 있든 어디에 있든지 더위에 지쳐버리기 일수인 날을 택해 치유의 숲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힐링센터가 아닌 숲길을 제대로 걸어보기 위함이다.

오르면서 차분히 길을 살핀다. 치유의 숲은 다른 숲과 무엇이 다를까.


첫 방문 시 숲 치유사님이 설명한 내용에 따르면 다양한 숲이 존재하지만 치유의 숲에는 극상림이 가장 잘 분포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극상림의 대표 수종인 서어나무 숲이 중간에 잘 발달되어 있으며 편백나무숲이 좋아 숲 치료에는 제격이란다. 물론 쭉쭉 뻗은 삼나무 숲 역시 '보기에는 좋았더라'

설명을 그대로 인용한다 하더라도 다른 숲에 다녀오신 분들이나 관계자 입장에서 보면 수긍하기에 쉽지 않은 내용이 있을 수 있다.


다른 숲에는 극상림이 없겠으며 나름 특징적인 숲이 다 있기 마련인데 치유의 숲만이 좋은 숲이라는 설명에는 동감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비교를 위해 말을 꺼낸 것은 아니다.


숲을 향해 천천히 오르는 길. 통상 숲의 시작이 완만한데 비해 치유의 숲은 제대로 된 숲길을 걷기 위해서는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한라산 숲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오르는 내내 2가지 사실이 눈에 띈다. 우선 곳곳에 쉼팡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다른 숲길을 걷다 보면 숲을 걷는다는 것 말고 쉬기 위한 장소를 찾는 일이 그다지 쉽지 않다. 이를 의식한 때문인가 치유의 숲에는 오르는 내내 쉼팡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쉼터가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이 곳에서 사람들이 잘 쉴 수 있을까?

이 길은 인공적으로 조성되지 않은 자연스럽게 옛부터 사용됐던 길이란다.

다른 한 가지 이곳 역시 제주의 대부분의 숲길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 숲길의 시작이나 활용이 대부분 임도를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넓은 임도를 걸어야 한다. 임도를 유지하기 위해 바닥에 작은 돌들을 깔아놓았다. 이질감이 있다. 숲길이 숲길이 아닌 느낌을 주는 대목이다.


힐링센터에 오르고 나서부터는 다양한 숲길 산책이 가능해 보인다.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지도를 잘 살펴보니 길은 다양한 것에 비해 길이는 그다지 길지 않은 듯 보인다.


'여기까지 왔는데 시오름을 오르는 코스로 잡아보자'

시오름까지 오르되 다양한 숲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나 비교적 한적한 코스를 골라 길을 나섰다. 숲에 들어서는 순간 한적함은 이미 정해진 결과이기에 사실 어느 코스를 선택하든 문제는 없었다.


우선 접어든 길은 산도록 치유의 숲. 한참을 오르다가 놀멍 치유의 숲길을 따라 시오름에 접근하기로 한다. 그 길을 지나면 이제는 오르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시오름에 오르기 위한 길이다.

이 길을 택하면서 느끼는 사실 중 하나는 숲이 길지 않은 순간순간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 이 숲은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되면 이미 숲의 모습이 다르게 변하고 있다. 여기는 삼나무가 군락지를 이루고 있네 하는 생각을 하는데 나무가 가늘어지더니 색이 변하고 있다. 그제야 알아차렸다. 참, 이곳이 편백나무 숲이로구나. 그렇게 편백나무의 나무 색이 흰색을 띠고 있어 이름이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이윽고 고비를 넘기고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여기가 정상이다. 무엇하나 특별할 것 없는 정상이지만 남쪽 오름에서 아주 가깝게 한라산을 바라보는 감회는 많이 색다르다. 1100도로나 그 근처의 오름에 올라 한라산을 본 기억들이 많이 눈에 남아 있는 때문인가 남쪽에서 바라본 북쪽의 한라산은 또 다른 경외감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었다. 이 한 가지 경치만으로도 시오름에 오기를 잘했다. 아니면 치유의 숲에 오기를 잘한 것이다.

숲은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되면 이미 숲의 모습이 다르게 변하고 있다

오르는 중간중간 나무와 잎들이 나를 반겨주었지만 그 무엇하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줄 모르는 나그네의 무지 때문인지 수많은 기억의 요소들을 망각의 저편으로 몰아가야만 했다. 아쉬운 따름이다.


다만 이곳에서도 곳곳에 커다란 나무 밑동이나 흙과의 접점이 될 만한 곳에서 자란 작은 식물들을 보면서 새로운 싹은 또 새롭게 자라나는 구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이제는 하산길.


원래의 예정에 따라 걷기로 하면서 중간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다른 길이 늘 더 좋아 보이거나 순간적으로 나의 선택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쪽에서 바라본 북쪽의 한라산은 또 다른 경외감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었다

오름을 내려가자 이정표에 없는 길이 하나 나온다. 지도를 자세히 보면 한라산 둘레길과 연결되어 있는 길이다. 이곳을 지나면 한라산 둘레길이 나올 것이고 그곳은 또다시 숲 속의 어딘가로 연결되겠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닌 것을 안다. 아쉬움을 머금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벤조롱 치유숲길로 명명된 길을 주로 걷는다. 이 길은 이미 산책로로 정비가 되었지만 길은 리본으로 표시가 되어있지 않다면 결코 길이 되지 않았을 숲 속의 길들이다. 계속해서 하산하는 길들이 낙엽이 쌓인 길과 띄엄띄엄 돌들이 놓인 사이사이를 파고들듯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길은 만들어져 있으되 결코 길이 아니었을 길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그 길을 찾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숲속길을 어찌 됐든 사람들이 많이 걷게 되면 그 흔적이 남아 이곳이 길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쪽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길임을 알게 된 곳이 아니라 길이라고 만들어 놓았으므로 사람들이 다녀야 하는 곳이다.

산책로로 정비가 되었지만 길은 리본으로 표시가 되어있지 않다면 결코 길이 되지 않았을 숲 속의 길들이다

이 길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없이 매어져 있어 산행을 유도하는 리본이 없었다면 아주 단순히 숲 속을 헤매는 것 이상도 아니었을 것이다.

벤조롱 치유숲길이 커다란 임도와 만나기 직전의 잣성.

어찌 내려왔는지도 모를 만큼 깊은 숲 속에 빽빽하지는 않지만 많은 나무와 점점이 깔려있는 돌들을 피하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다. 하산길인지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중간에 옛사람들이 다니던 돌길을 그대로 갈 수 있는 오고쟁이 숲길이 다시 한 번 나를 유혹한다. 이 길을 가고 싶다. 그러나 오늘은 역시 그날이 아니다.

이쪽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길임을 알게 된 곳이 아니라 길이라고 만들어 놓았으므로 사람들이 다녀야 하는 곳이다

치유의 숲을 2번에 걸쳐 다녀오면서 가벼운 산책과 숲을 잔잔히 걸어보고픈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숲은 사려니와 다르고 절물과 다르고 삼다수 길과도 다르다. 혹은 선흘과 화순에 펼쳐져 있는 곶자왈과도 사뭇 다른 영역을 구축한 느낌이다.


서귀포 쪽의 한라산 자락에 또 다른 선택으로 숲의 맑은 느낌을 얻을 수 있는 명소가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이 내쉰다. 어쩌면 숲으로 찾아가기에 늘 아쉬웠던 지역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아쉬움의 한 가지가 오늘 풀린 느낌이다.


다음에는 이곳을 거치는 한라산 둘레길인 동백길을 걸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팔방미인 섭지코지에서 기억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