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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ug 13. 2016

팔방미인 섭지코지에서 기억나는 것

재주가 너무 많아 기억되기 쉽지 않은 명소

여름이 되기 전에 찾은 섭지코지에 대한 단상



아직도 찌뿌둥한 하늘이 결코 맑은 하늘로 바뀔 것 같지 않은 시간.

섭지코지에 섰다. 지인들의 발걸음과 함께 천천히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은 나의 미래와 같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그림의 저편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것인가. 아직 생각이 많다.

섭지코지에는 없는 게 없이 다 있다.


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가 있고 이를 조망할 수 있는 등대가 있다. 

바다의 바위와 해안절벽도 있으며 나지막한 오름과 그 위에 선 헨델과 그레텔 같은 코지 하우스가 생뚱맞게 서있다. 

파도가 몰아치는 물결과 이것이 포말로 사라지는 바위가 버티고 있다. 

멀리 저 멀리 아스라한 기억들을 기억하고픈 바다도 펼쳐져 있다.

뒤돌아 보면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했다는 글라스타워도 있고 친환경적인 건축의 단면으로 명상길 같은 느낌을 주는 지니어스 로사이도 숨어있다. 오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계절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유채꽃도 있다. 

성산 일출봉을 멀리서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피닉스 아일랜드라는 리조트도 있으니 없는 게 없다.


그 때문인가. 섭지코지에는 하루에서 수도 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사진을 찍고 해안길을 산책하다가 돌아간다.


나 역시 이 곳을 찾은 게 수차례다. 제주에서 순수하게 관광만을 위해 관광지를 지속적으로 찾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지인들이나 가족들이 내려오면 데려가기 편한 장소이기도 하다.


섭지코지는 사람으로 말하자면 팔방미인이다. 없는 게 없고 갖추지 않은 게 없다. 단 하나 흠이라면 이상하게 특출 난 그 무엇이 없다는 사실. 

너무나 많은 것을 보게 해주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특출한 무엇 하나만 있어도 좋으련만 이 좋은 붉은오름(섭지코지도 오름이다) 위에 너무나 많은 것이 담겨 있어서 킬링타임에는 좋은데 섭지코지를 대표하는 한 가지만을 꼽으라 한다면 무척이나 고민이 된다. 


재주가 많은 게 늘 좋은 일이 아니듯 보여줄게 너무 많아도 사람들에게는 중요성을 일깨우지 못한다.


제주의 보물 같은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이 섭지코지가 나에게 주는 괴리감은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파도칠 때가 이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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