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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ug 04. 2016

길은 있으되 숲과 다르지 않은 산양곶자왈

쇠락한 문명을 찾듯 두려움에 떨며 숲길을 돌아 나오다

곶자왈을 몇 군데 다녀보니 다 같은 곶자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름 특징이 있고 상황에 따른 숲의 분위기도 저마다 다르다. 더욱더 곶자왈을 찾아다닐 이유가 생겼다.


궁금증을 확대해 주변을 본다. 산양곶자왈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 마을 이장님으로부터 마을사업으로 곶자왈 탐방로를 정비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당연 다른 곶자왈과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마을의 입구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 곶자왈 입구가 덜렁 열려있다

주말 오후 가벼운 산책길 같은 곶자왈 도립공원을 둘러보고는 다시 산양을 찾았다. 곶자왈입구를 찾는데 실패해 도립공원부터 돌아본 터였다. 도무지 입구에 대한 표시가 없다. 모르면 이장에게라도 물어보리라 생각하고 근처의 로터리를 도는데 산양곶자왈 탐방로 0.6km라는 팻말이 보인다. 마을의 입구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 곶자왈 입구가 덜렁 열려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을회관을 찾아갔으니 그 입구를 찾을 리가 없을 터다.

마을회관 바로 앞에 자리잡은 연못인 '여귀못'

입구에 도착해  산양곶자왈에 대해 이해를 높이고자 안내판을 정성스레 쳐다본다. 곶자왈에 대한 위치 안내도를 아무리 쳐다봐도 눈에 잘 들어오질 않는다. 자세히 보니 산양곶자왈과 청수곶자왈에 대한 설명이 한꺼번에 뒤엉켜 있다. 산양곶자왈을 설명하는 또 다른 안내판도 여전히 가독성이 떨어진다. 보는 이 보다는 이 지역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안내도를 썼다는 생각이 든다. 친절함이 부족하다. 그래도 길에 대한 설명은 있으니 그대로 가보면 되겠지...

<산양곶자왈>
용암이 어느 곶자왈보다 크고 많은 바위들이 구릉을 이루고 있어 지형, 경관적으로 특이한 곳으로 예로부터 '큰엉곳'이라 불렀다.... 마을 주민들이 목장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숯을 굽기도 하였던 곳으로 지금도 곶자왈에는 경계를 둘렀던 돌담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일곱모작굴'이라는 용암이 만든 큰 궤가 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쉽게 찾을 수 없을 만큼 숲이 우거져 있고 마을 인근에는 '조록물'과 '여뀌못'을 비롯한 크고 작은 습지가 있어 이 지역 사람들의 생명수가 되고 있다.

임구로 들어왔다.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탐방로가 중간에 끈 긴 채 바로 포장길과 비닐하우스가 나온다. 순간 이건 뭐지 싶다. 다시 탐방로 입구가 나온다. 입구는 임도가 분명하다. 시멘트길이 일부 깔려있다. 탐방로의 첫 시작부터 시멘트가 깔려있으면 별로 반가운 기분이 들지 않는다. 길도 차량이 충분히 다닐 수 있는 만큼 큰 길이 나있고 곳곳에 타이어가 걸려있거나 무언가 작업을 했을 법한 너른 공터가 나온다. 이곳이 길은 맞는데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설마 곶자왈의 탐방로가 이런 길로 계속되어있을까?

자신이 내린 결정을 번복하고 스스로의 길을 되짚어가는 것만큼 노동력의 낭비도 심한 것이 없지만 그보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기에 더욱더 가던 길을 되돌아서 원위치로 가는 일은 어렵다

오름과 숲을 다니다 보면 흔하게 깔려있는 가마니가 임도 옆 으로 안내한다. 그 가마니가 너무 낡은 탓인지 탐방로라는 생각이 별도 들지 않는다. 고민 끝에 이 넓은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가보기로 한다.


분명 숲길이 아닌 것은 알겠다. 곶자왈 탐방로가 아닌 것도 알 것 같은데 이후에 옆으로 난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아까 초입에서 본 길이 아무래도 탐방로가 맞는가 보다. 산이나 숲에서 가장 힘든 결정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일이다. 자신이 내린 결정을 번복하고 스스로의 길을 되짚어가는 것만큼 노동력의 낭비도 심한 것이 없지만 그보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기에 더욱더 가던 길을 되돌아 원위치로 가는 일은 어렵다.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이 같은 일이 어디 평범한 숲길 탐방에서만 일어나겠는가.


인생의 수많은 결정을 되돌아보면 돌아가고 싶었던 시절이 무지하게 많았다.그러나 현실은 과감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뒤돌아 서지 못해 돌고 돌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그 후회를 어찌 웃으며 감상할 수 있으리오.


산양곶자왈의 중심부라는 안내판
곶자왈 중심부라는 팻말에서 보이는 숲의 모습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나무들로 빽빽하다.

이날도 나는 넓고 쉬운 길을 택한 셈이다. 주위를 둘러보는 일을 등한시했고 큰 길이 나 있으니 그 길을 따라나섰다. 이윽고 여기가 곶자왈의 중심부 숲이라는 설명 안내문이 나온다. 이대로라면 나는 숲의 한 복판에 들어와있는 셈이다.

중간에 잘못되면 처음의 목적을 되새기기보다 현재의 끝을 일단 봐야 한다. 그런 성격을 타고난 셈이다

그곳에 서있는 지도를 보아하니 역시 내 판단이 잘못됐다. 나는 오른쪽으로 돌려고 생각 중이었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숲의 한 복판을 가로질러 중간에 와 버린 셈이다. 그리고는 그 길은 여전히 큰 임도로 연결이 되어있다. 이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더라도 임도의 끝이 궁금해졌다. 내가 하는 일들이나 판단이 이러하다. 중간에 잘못되면 처음의 목적을 되새기기보다 현재의 끝을 일단 봐야 한다. 그런 성격을 타고난 셈이다. 흔한 말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봐야 성이 풀린다'


그 시도는 한참을 가다 보니 맥 빠지게 끝이 났다. 임도가 끝나며 숲역시 끝나고는 일반 민가가 나온다. 허걱... 내 의도와 상관없다.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 본다. 아까 본 탐방로 팻말 앞에 섰다. 앞으로 남은 탐방로가 1km. 이 숲 속으로 들어가면 곧 들어왔던 초입으로 나온다. 그 길을 그렇게 갈까 고민이다. 뒤돌아보면 2.4km의 탐방로가 숲 속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임도를 따라 나서고 나니 덜렁 입구와 민가 그리고 비닐하우스가 나타난다.

오늘은 숲 속의 탐방로를 역으로 걸어보기로 한다. 넓은 임도가 아닌 숲 속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산양 곶자왈은 공교롭게도 숲 탐방로의 안내리본과 밑바닥에 깔린 가마니가 관리가 안된 때문인지 거의 유실되거나 방치되어 있다. 숲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길을 찾기 쉽도록 해 놓으려는지 노란색 리본이 달려있다. 웬 리본이 저렇게 자주 달려있지 싶다. 무심코 리본을 따라가다 보니 길이 사라진다. 이상하다. 리본의 정체가 숲 속의 탐방로 표시가 아니다. 흔한 등산로 리본도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재선충 때문에 방제작업을 하거나 베어낸 소나무가 있는 곳을 표시한 리본이다. 이미 베어낸 소나무가 밑동만 남아있으니 자칫 길처럼 넓게 보이다 다시 숲 속 넝쿨 앞에서 길이 끊어지게 보인다. 착시 현상이다.  이제 두 가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 하나는 삼각형으로 묶여진 산양리 곶자왈 탐방로라는 안내 깃발과 발아래 중간중간 깔려있는 가마니의 흔적이 탐방로를 안내해 주는 이정표다.

산양곶자왈은 숲은 시간을 가리는 대신 이미 해가 져버린 저녁에 가까움을 느끼게 해준다. 시간이 느껴진다. 사실과 다른 환각의 시간이 존재한다

그제야 산양곶자왈의 탐방로가 머릿속에 들어온다. 한 바퀴를 돌아 원위치하는 길이 3.5.km 길이다. 나는 그 숲의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가다 탐방로의 끝부분을 만난 셈이다.


숲은 처음의 임도와는 사뭇 다르다. 임도를 걸으며 바라본 숲은 아주 짙고 어두컴컴해 섣불리 발길을 허용할 것 같지 않다. 화순곶자왈이 원시의 생생한 초록이라면  산양곶자왈은 그 생생한 초록에 빛이 가려져 어둠을 잔뜩 머금은 진초록에 가깝다. 거기에 길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관계로 길이 거칠다. 나무숲이 시간을 모르게 하는 다른 숲과 다르다. 산양곶자왈은 다른 숲이 시간을 가리는 대신 이미 해가 져버린 저녁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간이 느껴진다. 사실과 다른 환각의 시간이 존재한다. 빛이 환환 숲의 생명력을 북돋아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절정이 지나버린 완숙한 숲에서 짙은 어둠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숲이라고 할까...


물론 사실과는 다른 측면이 많다. 당시 내 느씸일뿐이다. 화순곶자왈을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원시성에 비유했다면 산양곶자왈은 원시부족이 자신들의 축제를 막 끝내고 탈진한 현장에 깔린 짙은 우수뒤편 어디쯤이라고 해야 어울리는 분위기다. 사실 쾌활한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공교롭게도 기술의 발달이 감정을 동등하게 이끌지 내지는 못한다. 내가 느꼈던 순간에 대한 기억들을 사진으로 담는 스마트폰 역시 편리함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의 느낌을 제대로 다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란다. 이날의 사진들을 둘러보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사진들은 그나마 숲의 짙은 어둠과 우울 속에서 가장 밝고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장면들을 담았다.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사진들은 해맑은 숲 속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금방 어딘가 옛적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내 앞에 나타나 입을 벌리게 만들 기대를 하는 숲이다

산양곶자왈의 탐방로는 당황스럽다. 직선 길로 이어진 길이 없다. 이리저리 숲 속으로 사람들을 끌고 다니는 기분이다. 곧바로 걸울 수 있는 길도 좌우로 길게 늘여놓은 상태로 다양한 숲 속의 손대지 않은 원시의 상태를 보여준다. 특이한 것은 그런 숲 속을 걸으며 같은 원시림이라도 밝고 환희의 생명이 움트는 숲의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대신 예전에 쇠락한 문명을 찾아 나서는 인디아나 존스가 유적을 찾듯 탐방객 들을 이끈다. 순간 내가 한때 찬란했던 문명의 흔적을 찾으러 가는 탐험가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산양곶자왈은 탐방로의 정비를 끝낸 후 몇 년간 방치되어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인공적인 의자와 가마니 등이 방치된 채 널려있고 금방 어딘가 옛적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내 앞에 나타나 입을 벌리게 만들 기대를 하는 숲이다.


불과 몇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숲은 간의 손길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자신들의 본래의 모습에 충실하다. 빽빽한 나무와 넝쿨 그리고 다양한 식생의 풀들과 제멋대로의 바위를 엉크러뜨리며 그 사이에 길을 보여준다. 길이나마 아직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탐방로 표시가 있으니 길이라고 여기지 그냥 놔두면 길이라는 판단은 어불성설이다.


한참을 숲에 취해 걸으며 인간이 아둔 문명의 흔적을 찾는 듯이 걷는다. 어디선가 정적을 깬다. 또다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난 숲 속에서 개 짖는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린 상태다. 지난번의 노로오름도 그렇고 삼형제 오름 때도 마찬가지다. 길을 헤매고 있다 싶으면 어디선가 심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이야 숲 바깥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을 텐데도 개 짖는 소리가 너무 사납게 들리니 온몸의 신경이 쭈빗하며 예민하게 반응한다. 주의를 기울여 봐야 탐방로를 벗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냥 조심스럽게 걸을 뿐이다.


이 숲의 방치 흔적은 곳곳에 설치해놓은 나무의자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숲 속에서 강의를 하거나 잠시 쉬어가도록 만들어 놓은 벤치가 낡은데다 분위기를 더 휑하고 만든다. 이곳에서 쉬고 있으면 뒤에서 누군가가 나와 와락 나를 놀래키거나 아주 낯선 사람이 갑자기 등장할 것 같은 여름 공포특집을 연상케 한다.

쇠락한 아시아의 조그만 문명을 찾아 나서는 인디아나 존스의 정글탐험쯤으로 여기면 이 길은 더욱 새로움을 줄 수 있다.  단, 혼자 걷기를 권하지는 않는다

이 모든 느낌의 이유는 한 가지다. 다른 길들은 많은 사람들이 다님으로써 길의 구분이 명확해졌다면 산양곶자왈의 탐방로는 분명히 길인 것은 사실이나 관리의 흔적은 멀리 사라져 버린 이유다.


산양리의 관리 부족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이 곶자왈은 그런 점에서 앞의 다른 곶자왈과는 아주 두드러진 비교를 가능케 해준다. 쇠락한 아시아의 조그만 문명을 찾아 나서는 인디아나 존스의 정글탐험쯤으로 여기면 이 길은 더욱 새로움을 줄 수 있다.  단, 혼자 걷기를 권하지는 않는다.


나야 늘 혼자 다니는 버릇 아닌 버릇이 있어 주변에서 조난의 위험이 있으니 어딘가에 가려거든 주변에 꼭 알리고 가라 하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혼자 다닐 생각이다.  온전히 나만이 느끼는 이 감정을 타인과의 동행으로 깨뜨리고 싶은 마음이 없을뿐더러 찬찬히 전달할 소재를 찾고픈 욕심을 아직은 버릴 수 없다.


입구에서 이미 탐방을 마치고 나오는 2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내가 혼자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아하게 쳐다본 이유를 알겠다. 나 역시 지금이라면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제는 뭔 생각으로 이 낯선 길을 혼자 걸으려 하는지 원...'


산양 곶자왈은 대단히 낯선 숲이다. 정비가 잘 되어있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탐방로가 아예 없거나 정비가 안되어 있지도 않다. 언젠가 탐방로를 야심 차게 만들어 놓았지만 관리 미비로 인해 오히려 재미있는 결과를 만들었다. 숲 속을 걸으며 탐방로와 숲 속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필요 없어졌다. 길은 그냥 숲 속을 헤매듯 숲속 이곳 저곳을 두서없이 안내한다. 그러나 길을 잃을 일은 없다. 이미 인간의 손을 탄 흔적이 명확히 존재하므로 그 손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만 숲이 너무 짙고 어둡다. 더불어 수없이 많은 모기가 숲의 초입부터 공격해 마지막까지 함께한다는 점은 각오해야 한다. 등산복을 입은 상태에서 옷을 뚫고 공격한 모기로 인해 팔과 가슴의 가려움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이토록 많고 독한 모기를 숲 속에서 만난 적이 없다. 집요한 녀석들이다.


시간이 나면 이 숲을 다시 찾을 것이다. 이 숲이 사람의 관리에서 멀어진 채 옛 선조들의 흔적을 느낄 대단한 문명이 있을 법하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곶자왈 숲 중 어쩌면 심리적으로 가장 어두운 인간의 내면속의 두려움을 끌어내는 이미지와 가장 연결이 잘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숲 속을 헤매듯 걷는 길로 안내한다. 그러나 길을 잃을 일은 없다. 이미 옛적 문명의 흔적이 명확히 존재하므로 그 문명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탐방길을 마치고 나와 한동안을 의자에 앉아 쉬어야 했다. 숲이 주는 원시적 원초성과는 숲 전체에서 영향을 받아 온몽을 휘감고 있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했다. 산양곶자왈은 당분간 두려운 곳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다음 방문 때는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다른 곶자왈들은 어떤 느낌일까 더욱 가고 싶어 진다.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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