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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Sep 24. 2016

백가지 약초가 궁금하다_백약이오름

동부오름의 태풍의 눈

오늘까지 일에 치여 하루를 사무실에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오전을 홀딱 날려버린 시간이 되었지만 오후 내내 집안에 잡혀 있을 일도 없거니와 특별히 만나야 할 사람들도 없는 주말. 가볍게 운신할 수 있는 장소를 생각하다 생각이 가물가물한 백약이 오름을 찾아 나섰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듯한데 벌써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백약이 오름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선상에 있다. 아래쪽의 주차장이 제주시인 반면 그 앞은 서귀포라는 팻말로 인해 경계선이 바뀌는 곳이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에도 좋은 날씨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름을 막 다니기 시작한 시간 이름이 입에 배서 찾은 곳이 백약이 오름이었다. 백가지에 달하는 온 갖가지 약초가 즐비해서 백약이 오름이라고 했던가.

이곳은 많은 면에서 용눈이 오름과 닮아있다. 오르는 길이 완만하게 시작되는 것도 그렇고 살짝 돌아서 분화구 부근까지 오르는 점도 닮아있다. 이 점에서는 백약이오름은 용눈이 오름에게 약이 오를 것이다. 김영갑 선생이 용눈이를 제주의 대표 오름의 반상에 올려놓음으로써 백약이는 어찌 됐든 당분간 명성에서 이를 뛰어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가 분화구 자체만으로 많이 인구에 회자되기보다 이름이 주는 다양함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오르다 보면 길이야 나무 계단으로 잘 갖춰져 있어서 큰 무리가 없지만 계단 옆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즐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가 울창한 오름이라면 식생의 다양함이 당연하지만 이곳은 숲이 주를 이루는 오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많은 잡목이나 풀들이 눈에 띈다.


공교롭게도 풀의 식생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 구체적인 언급을 할 재주가 없다.


주말이어서 인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연이어 백약이오름을 찾는다. 동부 오름 중에서 다랑쉬와 용눈이를 찾고 난 후에는 그다음 순서가 백약이 오름이 아닐까 싶다. 능선의 부드러움도 적절하거니와 올랐을 때 주변에 보이는 풍광이 주변의 오름군락을 360도 돌면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옆자리의 좌보미오름만 하더라도 봉우리수나 산세에서 백약이를 압도하지만 그 오름은 찾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외진 곳이다. 이유는 주봉의 정상에서 둘러볼 경치가 거의 없거니와 분화구를 둘러보는 재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좌보미오름의 주요봉우리 주봉과 넷째 그 너머가 다섯째 봉우리다. 오른쪽은 좌보미 남쪽 오름쯤 되지 않나 싶다.

오르는 내내 바로 남쪽 옆으로 여러 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각각의 봉우리마다 오름 이름이 다를까 싶지만 결국 좌보미오름의 5 봉우리 안에 포함되어 있는 오름일 뿐이다. 그곳까지의 능선과 숲이 우거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걸어서 이곳을 내려가면 저곳까지 걸어서 다시 가거나 차를 타고 입구까지 가는 소로가 눈에 들어온다. 길은 늘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움이나 안타까움을 주는 주제다.


이곳들도 한참을 다녀봐서인지 이제 오름들의 위치와 이름이 눈에 익숙해졌다. 오름 하나하나마다 이름을 불러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 오름 개별적인 입장에서는 개체성이 생긴 것이니 스스로 인간세상에서 존재 위치를 찾은 셈이다. 실제 각 존재가 주는  의미야 별개지만 말이다.

능선을 돌면서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태풍의 눈이 아닐까? 태풍의 눈은 고요하다고 한다. 주변이 화려하고 번듯하고 다양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지만 정작 태풍은 눈은 고요하다. 백약이의 존재 위치는 동부 오름군의 태풍의 눈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길은 넓지 않지만 어찌 됐듯 도로의 한 복판에서 묵묵히 자신의 존재를 유지한다. 결코 주변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언제나 오름은 사람의 가라앉히는 묘한 재주가 있는 실체다. 육지의 산이 하지 못하는 역할들이다.

머리 둘레를 깍아놓은 듯 보이는 오름이 개오름이다. 그곳에 조만간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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