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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08. 2016

다시 곱씹는 숲_비자림

숲해설을 통해 만끽하는 숲의 향기

비자림 숲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일이 개인적으로는 영 땅치 않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1년에 백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 숲을 찾고 이미 거쳐가지 않으면 안될 유명한 관광지가 되고 말았으니 그 숲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비자나무 숲에 대해 제대로된 지식도 없으면서  비자림을 논한다는 것은 어쩌면 언어도단이다.  숲이 좋으면 좋다고 말하면 될까 고민끝에 '비자림도 숲이다'라는 명제에 충실하며 거닐던 느낌을 끄적이겠다고 결심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올해 맺히기 시작한 비자나무 열매

숲해설을 듣는 것은 이럴때 참 편한일이다. 동물원이라면 모를까 나무에 둘러싸인 탐방로를 걷는 일은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산책이나 조금 빠른 트래킹 정도의 의미를 부여해도 숲의 왕성한 활동력을 느끼는 경우는 쉽지 않다. 그냥 나무들이고 가끔씩 오래되고 모양이 특이한 나무들이 있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숲이 주는 싱그러움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상쾌함과 신선함을 제외하고 이야기를 해볼 요량이면 표현할 방법들이 묘연해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다.


비자림의 경우는 수종이 특히 한정적이라 숲 자체가 주는 역동적 측면보다는 비자나무 자체에 귀를 쫑긋할 일이 우선이다. 그 점에서 다양성에 대한 기대감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동백동산의 '먼물깍'이나 산양곶자왈의 방치된 듯한 숲의 느낌과는 달리 이곳은 잘 닦여진 숲길이 계속 이어져 있다. 넉넉잡고 2시간이면 걷기 좋은 숲길이다.


숲해설을 들으며 숲을 걸어본 적은 없지만 비자나무에 대해서는 꼭 들어야 한다는 강권한 요청이 있었기에 굳이 해설사와 동행하리라 맘먹었다. 그래인가 잘 모르던 사실이 하나 둘씩 기억에 남는다.


숲 전체의 느낌을 등한시할 생각은 없지만 숲을 계속 다니다 보면 너무나 잘 짜여진 길은 순간적인 감동을 받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연인이나 관광객 혹은 나이드신 분들을 위한 숲 산책길을 연상하면 비자림은 그 어는 숲보다도 다양하면서도 생소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제주만의 숲이랄 수 있다.


비자나무는 은행나무와 마찬가지로 친척이 별로 없는 나무란다. 다만 은행나무가 대대로 독자들을 낳고 다른 나무와 유사한 종이 없는데 비해 비자나무는 사촌정도만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독특하다는 이야기다.

비자나무숲을 걷다보면 무언가 새로운 숲만의 신비를 경험하리라 생각한다면 결론은 별로 신비할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양성보다는 특이성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숲이다.


비자나무숲에서 비자나무 열매가 주는 그리고 잎새 특유의 향은 어느 숲 보다 강하다. 소나무 숲에 가면 솔향이 나듯 비자나무숲에 가면 비자향에 취한다. 그 숲속의 짙은 향을 맡고 걸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 향이 비자나무 향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냥 숲속이니 좋다는 정도만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숲에서 잰걸음으로 재촉하며 볼거리를 찾는 행위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음을 걷는 것과 같다. 특히 비자나무가 온통 숲을 가득채운 이곳에서 비자나무에 대한 그 무엇을 무시한채 걸으려 한다면 이곳에 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냥 숲속이니 좋다는 정도만으로 걸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숲이 인간에게 주는 역할이 그 정도면 족하니 말이다.

비자나무는 2년에 한번씩 열매를 맺는다. 매년 열매를 맺지만 2년에 걸쳐 열매가 무르익는다. 올해에 맺힌 열매가 아주 작게 보인다. 열매를 줏어 껍질을 까보니 비자향이 아주 강하다. 대부분 나무들이 내는 피톤치드향은 벌레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인데 그 점에서 비자나무는 삼나무와 같이 아주 독보적으로 강한 향을 뿜는다.


천년 가까이 형성되어온 비자나무 숲이 형설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공교롭게도 인간들의 역사가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니 아이러니하다. 고려시대부터 비자나무 열매를 임금에게 진상해야 했기에 숲을 잘 보존해야 했다.  진상을 위해 필요한 비자나무를 보호하는데 다른 나무들보다 애를 더 쓰게되고 자연히 숲이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육지땅의 정치적 영향력이 이곳 섬의 한 구석에 이런 영향을 다 미치는 구나 하는 생각과 함게 최근의 정치적 환경을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정치는 잘해야 한다.  안 그러면 그 영향이 너무 지대하다.

구미호의 꼬리를 연상시키는 9백년이 넘은 가장 오래된 비자나무. 여전히 튼튼해 보인다.

비자나무 밑에는 의외로 젊은 나무들이 거의 자라지 못다. 워낙 나무들이 단단하고 오랫동안 자라나니까 그 밑에서 태양빛을 받지 못하고 시름시름 죽어가며 오래 버티는 나무들이 없어진다는 슬픈이야기.


암튼 비자림은 다른 나무의 성장을 거의 허락하지 않으며 단일수종의 숲을 만들어 냈고 오늘날까지 거대한 단일 숲을 만들어 버렸다.


생명의 다양성측면에서는 재미없는 구성이 되어버렸다. 이를 반증하듯 숲내의 커다란 나무들은 예외없이 비자나무 밖에 보이지 않는다.

 숲안의 9백년 넘은 나무는 물론 7백년이 넘은 나무들이 수십그루가 있다하니 생명력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순간순간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4명이서 걷던 비자림의 탐방길 산책은 어느 덧 10여명으로 급히 불어난다. 홍수에 물불어나는 듯 하다.


 특히 천남성 이야기나 선인과 이야기등 풀들에 붙어있는 독특한 이야기중에는 사람들이 꽤나 몰리지만 이야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제갈길로 바삐들 움직인다. 단 4명의 탐방객들이 해설사의이야기를 주의깊게 귀를 쫑긋하게 듣고 있다.

비자나무 숲에서 공교롭게도 가장 눈에 띄는 식물은 천남성이라는 독초다. 물론 잎새를 잘 섞어서 수제비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장희빈을 죽일때 사용했다는 이 독초를 섣불리 먹을 사람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숲이 약하게 형성된 나무밑에 포도열매처럼 빨간 알갱이들이 뭉쳐저 있다. 열매는 마치 포도열매 같으나 어떤 놈들은 빨간색으로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유혹한다. 특이한 것은 그 열매가 익어갈 수록 잎새들이 떨어지고 녹아내리듯 사그라져 버린다는 사실이다. 독기운이 스스로의 잎새에도 해로운 기운을 주는 것이리라.


결코 만지거나 하면 맹독성이 있어 큰일난다고 하니 괜히 온몸이 쭈뼛거리며 기분이 이상하다. 순간 흩어져 있던 수많은 천남성이 눈에 계속 밟힌다. 갑자기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다른 나무를 만지는 와중에 그 열매가 피부에 닿은 느낌을 준다.신경이 쓰이는게 영 기분이 언짢다.

탐방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 천천히 아주 천천히 2시간의 시간을 비자림과 함께 겪었지만 마음은 이미 비자림의 비밀을 상당부분 알게된 뿌듯함이라 할 묘한 풍부함이 온몸을 감싼다.


비자림읠 찾으면 바지향을 잊지 못할테지만 그것 때문에라도 숲해설사와 동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숲에 대해서 설명을 잘하는지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감동을 전해줄 방법이 없는 셈이다.


비자림은 알아갈수록 더 풍부한 콘텐츠를 가진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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