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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pr 17. 2017

사려니 뒤편의 다른 숲_삼다수 숲길

겨울을 보내는 잔잔한 인사

벌써 더운 날씨가 되어버렸지만 3월초의 느낌을 기록해 놓고 이제야 다시 둘러본다.


제주 날씨가 구름이 끼고 우중충하면 사실 어떤 바다를 가거나 오름에 올라도 감동의 수준이 급감한다. 뿌연 하늘이 천혜의 경관을 숨기는 날이라고 여기면 궂은 날씨를 탓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런 날에는 오히려 하늘이나 바다 대신 숲과 교감을 하는 것이 훨씬 잔잔하게 마음의 울림을 준다.


삼다수 숲길. 제주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육지인들에게는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비교적 낯선 숲길이다. 사려니숲길의 닫힌 물찻오름 뒤편의 또 다른 숲길이라는 설명이면 좋을 곳이다. 


차를 세워놓는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교래리 복지회관.

이곳 역시 과거 임도로 사용되던 길을 활용해 조성한 숲길이다. 입구에서 숲길의 반환점을 돌아 제자리로 오는 거리가 8.2km.  2시간 30분이나 늦어도 3시간이면 넉넉한 길이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는다. 사려니숲길의 유명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방문자수를 기록한다. 그런 점에서 이 길은 더욱 매력이 있는 곳이다.

매섭던 추위가 가시는 듯 하지만 역시 현장에서 맞는 바람은 여전히 싸늘 맞게 방문객을 맞는다

교래리 종합복지관에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 30m만 가면 입구가 나온다. 물론 바로 숲길은 아니다. 주변에 이런저런 목장이 있고 차도가 널찍하게 포장이 되어있으니 그냥 어느 목장 안으로 들어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이 길을 따라 10여분 걸어 들어가면 제대로 된 숲길의 입구에 다다른다.


교래 사거리를 지난 초입은 '숲애'라는 식당과 바로 옆에 이주민이 크게 지은 전원주택을 지난다. 다음은 바로 사려니 목장이다. 


정처 없이 걷는다. 겨울이라 아직은 만만하게 볼 날씨는 아니다. 매섭던 추위가 가시는 듯 하지만 역시 현장에서 맞는 바람은 여전히 싸늘 맞게 방문객을 맞는다. 아직은 봄이 온 것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걷는 발걸음이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자연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어찌 자연뿐이겠는가. 사람도 아는 만큼 그 사람을 이해하는 법. 

숲길 입구의 안내도

드디어 삼다수 숲길이 시작되는 곳에 도착했다. 자세한 안내판과 함께 딱 하나의 길이  오른쪽으로 나있으니 못 찾으래야 못 찾을 수 없는 길이다. 다시 원위치로 오면 되는 코스인지라 그 또한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나는 이곳 제주에 왜 와서 이 길을 걷는가. 무엇을 하려 하는가

2009년 11월부터 조성을 시작해 이듬해인 2010년 7월에 열린 숲길이니 채 10년도 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이곳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찾으리라.   2년 전 겨울. 햇수로야 꽤나 지난 시간 같지만 겨울은 2번을 넘긴 것에 불과한 시간. 도무지 한겨울을 보내기가 막막해 찾았던 숲이다.  눈이 쌓인 채 길의 구분만 있어 무작정 걷기만 했던 길. 마음이 현지에 적응도 안되고 모든 것이 새로워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시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을 추스르고 주말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걷고 또 걷기만 했던 시절의 한 중간에 방문했던 장소였다.


그때고 지금이고 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나는 이곳 제주에 왜 와서 이 길을 걷는가. 무엇을 하려 하는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탐구 중이다. 


삼다수 공장이 옆에 있으니 삼다수 숲길이라고 명명됐겠지만 숲 이름으로는 조금은 생소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삼나무 숲이 방문객을 우선 맞는다. 지금이야 이런저런 숲을 다니면서 당연히 만나는 삼나무 숲이지만 처음 만나는 삼나무 숲은 도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나름 경외감이 있는 곳이다. 풍족함이 과하면 교만해지려니...


삼나무 숲을 아주 천천히 걷는다. 도무지 걸음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 겨울 내내 굼벵이마냥 실내공간에서 뒹굴거린 채 운동을 멀리한 때문인지 걸음의 속도도 나지 않고 숨도 가쁘다. 뭐지 이 기분 나쁜 느낌은? 숲에 왔는데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상쾌함을 찾을 수가 없다. 숲이 주는 상쾌함에 어느덧 멀어진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삼나무 숲을 지나면 나무는 겨울 수목의 특징을 그대로 앙상한 가지들이 마구 뒤엉켜 봄이 오고 잎이 붙으면 얼마난 무성한 숲이 될는지를 알려주는 듯싶다. 다만 밑바닥의 조릿대 식생은 이 숲의 식생이 한라산 언저리에 가까움을 알려준다.

사실 지난번 겨울 방문 시에는 이 숲이 나름 이렇게 깊은 원시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했다. 그저 눈이 아직 쌓여있고 길이 난 곳만이 탐방객을 이끌 뿐이어서 조릿대와 나뭇가지 외에는 별다른 기억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 느끼는 이 숲의 다양함은 걸으면 걸을수록 더 새롭게 다가온다. 사려니 숲길이 너무 넓은 임도로 인해 숲과 걷는 이들의 이질감을 강화시켰다면 이곳은 호젓함 하나만으로도 탐방객들에게 높을 점수를 딸 수 있는 중요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여전히 걸음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 오늘이 다 가기전에 원위치로 돌아갈 수 없을 듯싶다. 헉헉댄다.

걸으면서 속도를 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 가지를 덧붙였다. 숲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관찰하고 느껴보자는 핑계를 만들어 냈다.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니 숲의 모습이 여러모로 자세하게 들어온다. 아하 이곳을 숲길로 만들어 놓은 이유가 이런 것이 있을 터였다. 길도 잔잔하거니와 그 안에서 보이는 새로운 건천의 모습은 나름 원시림의 그로테스크함을 보여준다. 순간순간 발길을 옮기다 옆으로 새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을 사진에 담아본다. 아직 봄은 멀었겠지만 희망을 보는 숲이라는 생각이다.

중간에 보인 천의 모습이 원시 생태계나 커다란 계곡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를 확대한 지형으로 생각하면 공룡이 나와서 거닐던 중생대의 모습쯤으로 여겨도 될 듯한 생경함이 있다.


시간이 터무니없이 지나간다.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길을 걷는다. 1시간이 훨씬 넘고 2시간 가까이 되도록 반환점에 도착도 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속도지만 굳이 속도를 낼 이유가 없다.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은 때문인지 중간에 길이 헷갈린다. 가다 보니 길이 없어졌다. 조금 전의 입구까지는 분명히 길이었는데 가다 보니 재선충병으로 나무를 벤 흔적이 분명해진다.

이해할 수 없는 속도지만 굳이 속도를 낼 이유가 없다

제주의 숲을 다니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한참 걷다가 길인 듯싶지만 나무가 베어져 있는 흔적이 무성하면 이는 길이 아니다. 재선충병 때문에 나무를 벤 흔적이지 그걸 길로 알고 있으면 곧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부질없는 오판이었는지를 느끼게 된다. 이럴 경우는 고민하지 말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판단을 했는지 재빠르게 뒤로 돌아가 복기를 하면 된다. 아주 작은 찰나에 사람들은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길은 나있었는데 그 사이를 나무가 쓰러지며 길을 막고 있었다. 옆에는 재선충병 작업 흔적이 나를 길인 듯 이끌었다. 돌아와서는 그 사실을 알고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내 순간적인 오판의 결과였음이 명확해졌다. 그 당시 전화를 걸고 있었으니 무심히 지나가 버린 것이다.

계곡의 서쪽으로 나있는 출입금지 팻말. 이곳으로 계속 가게되면 출입이 금지된 사려니오름 중간에 있는 물찻오름이다. 물찻오름을 두고 반대편 길인 셈이다.

드디어 반환점에 도착했다. 앉아서 한참을 쉬며 주말의 흐릿한 오후를 생각한다. 아무런 사람의 흔적이 없다. 이런 날씨에 사람들은 트래킹을 다니지 않는가. 싸가지고 온 김밥 한 줄과 귤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몸에 한기가 돌기 시작한다. 이제는 속도를 내면서 가는 길만 남았다.


내려가는 길 중간중간 내가 좋아하는 이끼긴 바위들이 나를 반긴다. 나는 이 진초록과 연두빛이 섞인 원시적 색감이 좋다. 그래서 제주의 숲 속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어느 곳은 이미 여름인가 싶을 정도로 푸른 잎들이 울창한 곳도 있다. 앙상한 가지의 숲의 모습과는 다르다. 다양한 식생과 느낌이 속도 내는 것을 말린다. 중간에 핀 복수초인가 하는 노란 꽃 역시 내 시선을 붙잡는다. 여전히 속도를 내기는 힘든 순간들이다. 천천히 가자. 다시 한번 되뇌며 걸음을 옮긴다.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오는 길. 시작처럼 끝도 삼나무 숲으로 마감을 한다. 숲을 지나면 농장 길을 거쳤듯 그 길을 지나면 된다. 나가는 길을 무심코 걷다 보면 다른 길로 가게 되지만 원래 왔던 농장 길을 굳이 찾아 원위치로 길을 찾아들었다. 멀리서 말을 타고 지나는 사람이 나와 조우한다. 농장에서 일하는 분이겠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타고 지나는 모습을 보니 놓칠까 싶어 뒷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저 사람 역시 지나면서 나를 빤히 바라본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아무런 생각도 안 하는데 괜히 나만 자연스러운 말타기에 시선을 돌렸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싸늘한 바람이 봄을 맞으려면 한두 달은 족히 걸릴 모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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