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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pr 19. 2017

바다와 밭담을 잇는 길_하도리 1

제주 동쪽 바다를 마을로 이어가는 곳

하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마을길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마냥 해안길을 걷어서도 설명이 안된다. 올레코스를 따라 걷지 않아도 되기에 할 말이 많은 동네다. 어쩌면 제주의 다른 곳보다 작은 인연이 몇 가지 맺어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마을 그 자체만으로도 할 말이 많은 동네다.

구좌읍 하도리는 해안선이 제주에서 가장 긴 마을이다. 바닷가의 식생이나 원래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고 제주의 어촌 생활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걸음의 시작은 하도 마을회관부터다. 지금은 바로 옆으로 리사무소를 옮겼지만 여전히 팻말은 그대로다. 이층은 복합 문화공간으로 변신 중이고 아래층은 식당으로 변모할 예정이다. 그 리사무소를 시작으로 마을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구좌읍 하도리는 해안선이 제주에서 가장 긴 마을이다

수도 없이 지난 길이지만 마음먹고 천천히 집을 살펴보며 걷는 일은 처음인 듯싶다. 리사무소와 마을 지도를  살펴본 후 왼편의 마을길로 꺾어 들어갔다. 해녀 박물관 방향이다. 따스한 날씨를 그냥 보낼 수 없어 오후에 급히 나선 발걸음이지만 바닷가라 그런지 여전히 바람은 상쾌함보다는 삭막한 냄새를 더 많이 숨기고 있다. 

새로운 리 사무소. 그 옆의 건물은 어촌계다.

포장된 마을 길을 걷는 것은 나름 생뚱맞다. 대단한 경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올레길 리본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닌데 제주의 집들을 기웃거리며 걷고 있자니 스스로가 조금은 쑥스러운 느낌이다. 이를 아는지 지나는 삼춘 몇 분이 나의 여행객 행세를 보고는 힐긋 쳐다보며 지나친다. 집 몇 채를 지나자 넓고 푸르른 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푸르른 밭으로 인해 제주의 겨울은 삭막함에서 견딜 수 있으리라.


지나는 길목 낮은 담장 위로 해초를 잘라 블록 위에 가지런히 얹어 놓은 모습이 보인다. 삼춘은 열심히 해초를 빨고 있다.

"지금 씻고 계신 거 미역 맞아요?"

미역이 맞단다. 그 삼춘은 내게 먹어보겠느냐고 묻기도 했지만 엷은 미소로 고맙다는 몇 마디 말을 섞은 후 길을 재촉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을 건네면 참 친절하게 답을 한다. 이런 점에서 농촌은 도시보다 언제나 좋다. 사람을 반기니 말이다.

밭 사이의 돌담길로 걸음을 옮겼다. 이 길을 계속 가면 아마 비석거리와 할망당이 나올 것이다. 이전에 자동차를 타고 마을길을 다녔었기에 기억한다. 그 길을 찾아 밭 사이로 무심히 걷는다. 중간중간에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 몇몇과 마주치며 가벼운 목례를 하고 지나친다. 저 사람들에게 나 역시 이방인이니 그다지 말 섞기에는 편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아는지 지나는 삼춘 몇 분이 나의 여행객 행세를 보고는 힐긋 쳐다보며 지나친다

곳곳에 수확을 마쳤거나 방치해 놓은 밭이 눈에 띈다. 물론 아직 경작을 하지 않은 무밭도 보이지만 역시 이곳의 핵심은 밭담이다. 아직 밭담의 명소에  닿지도 않았는데 밭담은 금세 여행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쉽게도 밭담 축제는 다른 지역에서 선점해 버렸지만 밭담의 길이가 가장 긴 곳도 하도가 아니던가.

비석 거리에 도달했다. 40 여기에 달하는 묘지가 놓여있다. 그러나 공교롭게 이곳 묘지의 어느 곳에도 죽은 이들의 시체가 묻힌 곳은 없다. 소위 가묘만 있는 곳이다.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마을 사람들처럼 주검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 묘비와 묘를 썼다. 그래서인지 공동묘지와 같은 스산함이 조금 부족하고 묘지로서의 엄숙함도 다소 비어있는 느낌이다.

아쉽게도 밭담 축제는 다른 지역에서 선점해 버렸지만 밭담의 길이가 가장 긴 곳도 하도가 아니던가

옆에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할망당이 있다. 할망당의 흔적을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곳에 세워진 팻말 안내판뿐이다. 그 뒤편의 당 자리를 아무리 뒤져봐도 흔적이랄만 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쉽다. 

할망당의 자리라고 일컬어지는 장소의 모습이다.

마을 길은 다시 밭고 밭 사이를 끊임없이 지나고 돌담과 푸르른 야채를 내보이며 걷는 이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돌담의 구비구비는 이 길을 지나면 황천길이나 서천꽃밭이라도 나올 기세다. 아마 마을 사람들이 내 생각을 듣는다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나는 이 돌들이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길처럼 느껴진다. 물론 나 혼자의 생각이다. 그 사이의 모든 돌들은 사소함으로 채워진 각자의 사연으로 얽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삶의 다양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여 담을 쌓고 길을 만들어 다른 세상을 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사연을 담고 새 세상은 다신 새로움으로 재탄생할 것이라는 다소 철없는 생각을 해본다.


묘한 여운을 남기는 돌담길을 걸어 나오니 묘한 생각을 하게끔 한 길의 이름이 나온다. '낯물밭길'. 낮은 마을에 있는 밭길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면수동이라고 불리는 이 동네의 옛 지명이란다.  옛사람들도 이 길을 예사롭게 여기지는 않았을 터이다.

밭은 다시 돌을 넘어 유채와 풀무더기가 이어진 모습을 보여주더니 하도는 물론 제주의 모든 트렌드를 다 집어삼킬 '건축중'의 현실태를 보여준다. 아무리 좋은 경치나 풍경이 있어도 그 끝은 언제나 '건축중'이다. 하도처럼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장소에 짓고 있는 집 혹은 펜션의 모습은 경관에 주는 영향이 너무 커 보인다. 이런 경치 외에는 다른 풍경을 담을 수 없는 각도에 사진기를 들이대고 있는 스스로가 어이없다.

그 삶의 다양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여 담을 쌓고 길을 만들어 다른 세상을 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사연을 담고 새 세상은 다신 새로움으로 재탄생할 것

저 앞이 바다다. 이제는 해안도로로 나서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하염없이 걷기만 하면 될 일이다. 바다 앞에 서자 해안도로가 내 발길을 잡았다. 


저 바닷가에 용감하게 바짝 붙어 있는 용문사에 한겨울 대찬 바람이 부는 대낮에 가본 적이 있다. 불이 꺼져 있는 곳을 보살님에게 이야기해 들어가서는 혼자 불을 켜서 108배를 했었다. 너무나 거센 바람으로 온 법당이 흔들리는데 참선을 한다는 것이 어쩌면 이 바닷가의 절에서는 무척이나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모든 곳에서 불어닥친 바람은 마치 나를 향해 부는 듯 온 세상이 나를 질타하는 듯했고 마음의 갈피를 잡기 힘들었던 기억, 그 기억을 뒤로하고는 바닷가를 천천히 걷는다.

화려하게 피어난 무꽃과 유채 사이로 건물들은 하염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닷가에 위치한 용문사. 기회가 되면 방문해보길 바란다. 


이제 부터는 하도의 다양한 바다와 바닷가에서 생활해온 제주인들의 모습들이 여과 없이 드러나며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론 바다라는 사실 이외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그만일 테지만 그 앞의 낮은 바닷가는 어촌의 삶의 단면을 다양하게 비춰주고 있다.

하도처럼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장소에 짓고 있는 집 혹은 펜션의 모습은 경관에 주는 영향이 너무 커 보인다

지나는 곳곳마다 불턱이 여러 개나 나온다. 불턱은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기 전 혹은 들어갔다 나온 후 몸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불을 피우고 바람을 막는 곳이다. 지금도 제 역할을 계속하고 있는 곳들이다.


불턱이 연이어 계속 있다는 것은 해녀들의 어로활동이 지속되고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 멀리서 해녀들이 작업을 마치고 올라오자 트럭들이 해녀가 잡은 다양한 해산물들을 옮겨 싣는 모습이 보인다. 


저 해녀 삼춘들은 오늘 어떤 것을 잡아 올렸을까나. 그들에게는 바다가 아니 바당. 곧 바다 역시 밭인 제주의 생활모습인 것이다.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는 분들인지 상괭이가 맞는지 모를 해초가 가득한 바닷가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골라내는 모습도 보인다. 무엇 하나도 허투이 버릴 것이 없는 모양이다. 나 같은 방랑객에게는 단순하고 낯선 풍경이다. 

생이덕불턱
모진다리 불턱
보시코지 불턱
무두망개. 서문동에 위치한 갯담으로 빌레와 빌레 사이를  겹담으로 쌓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불턱들을 사이에 두고는 잔잔한 바닷가의 옅은 곳으로 바위들이 둥그렇게 쌓여있는 장소들이 여러 개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개 혹은 원담이라고 부른다. 밑물이 들어오면 물고기들이 따라 들어왔다가 물이 빠질 때 바닷가로 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을 자연스럽게 가두는 역할을 하는 자연의 그물인 셈이다.


전해 들은 말로는 이 같은 원담 혹 개는 해녀 활동이나 바다에 가서 물고기를 잡을 수 없는 분들을 위해 비교적 손쉽게 물고기를 잡는 역할을 하는 공동체적 역할 분담의 모습들이라고 한다. 


밑물이 들어오면 물고기들이 따라 들어왔다가 물이 빠질 때 바닷가로 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을 자연스럽게 가두는 역할을 하는 자연의 그물인 셈이다


좋은 모습이지만 제주는 여러모로 다양한 역할의 분담이 이루어지고 함께 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든 지역이었음이 분명하다. 수눌음도 당연한 결과일 터이다.

'하도'라는 팻말이 크게 서있는 서문동의 포구에 다달았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을 쌓아놓은 별방진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굉장히 튼튼한 성곽으로 이 지역에서는 그 규모가 대단히 크고 위엄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 더구나 포구와 함께 있고 그 안에 마을을 품고 있으니 옛적에 항구와 마을과 방벽이 함께 작용하는 아주 유용하면서도 요지였을 것이 분명하다.


마을 부녀회의 천막을 빌어 슬로 바이크라는 누워서 타는 특이한 자전거 점이 영업을 막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이 매장의 두 사장님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두 분은 친구사이며 그중 한 분은 음악을 다른 분은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인데 어쩌다 자전거라는 공통의 관심으로 특이한 사업을 시작했다.

포구와 함께 있고 그 안에 마을을 품고 있으니 옛적에 항구와 마을과 방벽이 함께 작용하는 아주 유용하면서도 요지였을 것이 분명하다

혹시 이곳을 들르는 분들이 있으면 꼭 들러서 타고 가보시길 권한다. 해안도로를 누워 타는 자전거로 달리는 기분도 좋거니와 마을의 골목길을 달리는 재미도 상상 이상으로 아주 흥겹고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으리라.


별방진 안에 포근하게 자리 잡은 마을은 지독한 바다의 바람을 살며시 하늘 위로 지나 보내며 안정적으로 마을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을의 전경은 어떤 동요에도 꿈쩍할 것 같지 않은 튼실함과 고요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별방진과 그 안에 피어난 유채가 보인다.

서문동 마을을 지나면 원래 처음 출발했던 하도리 회관으로 향하는 큰길을 따라 오르게 된다. 이곳을 지난 원 위치로 가게 되면 하도리의 서쪽을 대부분 걷게 되는 셈이다. 돌담길과 바닷가의 묘한 대비와 조화가 잔잔히 걸어보는데 전혀 주저함을 가질 필요가 없을 만큼 소박한 제주 농촌과 어촌의 모습을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제부터는 또 다른 모습의 동쪽 하도다. 무엇부터 시작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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