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 Apr 19. 2017

제주 봄색, 제주본색

제주의 봄이 주는 색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제주의 봄을 대표하는 색은 무엇일까.


어찌 봄의 색을 한 가지 색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색은 어쩔 수 없이 노란색이다. 제주의 봄길은 한 순간 환한 기운으로 바뀐다. 조경용으로 도로가에 심어놓은 노란 꽃이 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아마 금불초가 아닐까?) 무엇보다 유채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제주의 온 산하는 어느 순간 유채로 물들기 시작한다. 날씨가 흐리고 비바람이 불어도 그 노랑의 흔들림은 전혀 지칠 기색을 보이지 않고 도로와 밭, 바닷가를 구분 않고 수채화처럼 번져간다.


모든 길이 더 이상 노란색을 거부할 수 없는 시점이 되면 제주 곳곳은 유채꽃의 자연스러운 축제가 열린다. 그사이 하늘은 가끔씩 맑은 하늘을 보일 뿐 언제나처럼 비바람이 불고 찌뿌둥한 하늘과 온몸을 날려 버리기에 충분한 바람으로 가득하다.

모든 길이 더 이상 노란색을 거부할 수 없는 시점이 되면 제주 곳곳은 유채꽃의 자연스러운 축제가 열린다

유채꽃을 비롯한 꽃의 색깔이 바람에 날려 바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제주의 노란 꽃은 유채가 대표한다. 개나리도 주류는 아니어도 길가나 등성이 혹은 울타리 곳곳에 널려있었는데 지금은 개나리 찾기가 쉽지 않다.

문뜩 지나면서 드는 생각. 육지에서 봄을 맞이할 때면 언제나 개나리가 모든 담장을 다 덮고 있어 대한민국의 국화를 개나리쯤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진달래도 함께.


그런 생각이 제주에서는 전혀 들지 않는다. 산중에 들어가면 노란색 복수초가 간간히 봄의 전령임을 알리는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름이나 숲 속, 이름 모를 길가에서 겪을 일이지 유채의 흐드러짐을 감당할 수준은 전혀 아니다.

유채꽃을 비롯한 꽃의 색깔이 바람에 날려 바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제주의 4.3은 그래서 시기적으로 유채를 보면 자연스레 떠오른다.  유채는 화려한 만큼 슬픈 구석이 많은 꽃이다.  4.3의  슬픈 역사의 한 단면을 유채 이상으로 상징할 수 있는 꽃이 어디 있으랴. 


또 제주에 도달하지 못한 세월호 아이들 역시 유채로 피어나는 계절과 함께 있다. 왜 이리도 유채에 많은 슬픔을 담는지 모를 지경이다. 


설사 T.S. Eliot이 그의 너무나 유명한 시집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를 써넣음으로써 새롭게 자라나는 생명이 이전의 껍질들을 깨고 나와 새 생명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지만 세상은 그 전후 사정은 다 생략한 채 문구만으로 충분히 잘 사용하고 있다. 잔인한 달.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 있으랴. 그 잔인함을 제주의 노랑꽃은 오늘도 바람에 흔들리며 온 천지를 뒤덮고 있으니 잔인함도 드넓으면 아름다움을 주고 다시 눈물을 쏟게 만든다.


그 사이 슬며시 연분홍의 왕벚꽃이 잔잔한 슬픔을 다시 만들어 낸다. 올해는 지난해처럼 온 동네 벚꽃을 둘러보지 못했지만 한 두 군데만 바라봐도 환한 슬픔을 주는 벚꽃의 생리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일본 애니메이션 작가 산케이 마코토였던가.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5cm라 했으니 그 5cm의 팔랑이는 꽃비에서 처연한 청춘의 아련함을 담으려 했으리라. 벚꽃의 화려함과 산만함은 연인과의 관계에서 충분한 흥분보다는 쓸쓸하고 퇴색될 수밖에 없는 기억을 되살리는 경향이 크다. 개인적 감정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위미리의 벚꽃 풍경

물론 벚꽃의 연분홍은 핏빛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좀 더 짙은 복숭아꽃의 처연한 핑크빛과 여기에 더해 혹여 동백의 빨간 봉우리가 아스팔트 바닥에 봉우리채 떨어져 뭉개지는 모습을 볼라치면 봄은 자유롭지만 잔인하다 못해 처절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없다.


노랑과 연분홍이 짙은 붉음으로 바뀌는 순간, 인생은 농밀의 오일리한 동백마냥 화려함만큼이나 길거리에 나뒹구는 모습이 더 가슴에 와 닿노니. 동백의 봉오리는 잎으로 떨어져야지 결코 봉우리채 떨어져서는 삶이 너무 반전되는 안타까움을 준다. 꽃잎 하나씩 떨어져도 충분히 아름답고 슬프일이다.  개량되기 전 꽃잎 하나씩 떨어지는 동백이 그립다. 차량이 지나는 길가의 동백은 그 색이 붉은 만큼 인생의 깊이와 회환을 만들어 갈뿐이다.


아직 4월이 채 지나지 않은 날씨에도 봄의 색깔은 노랑에서 연두와 초록의 신록색으로 물들어 갈테지...순간적인 화려함으로 유혹하는 뭇 봄 빛깔들이 남아있는 한 인생의 봄은 아직 지나지 않은 것이니 매일 혹은 매년 봄빛을 맞으러 꽃구경을 가는 모든 이들에게 삶의 영광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젊음의 영광을 읊어댔던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만큼 찬란한 순간들로 기억되기를 기대하며 꺾어놓은 유채꽃의 잎새가 얼마나 가녀리게 꽃잎을 흩뿌리는지 아는 사람들은 결코 유채를 꺾지 않으리라. 그대로 번성하고 쇠락하게 놔둘일이다.


영광의 나날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아직 지나지 않은 것인지...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와 밭담을 잇는 길_하도리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