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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n 17. 2017

손자봉(손지오름)은 낮거나 별 볼 일 없지 않다

실내악을 연상케 하는 분화구의 차분한 모습을 이야기하다

손자봉을 찾아 나선 이유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오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부 오름의 대표 선수 사이에서 주목받지 못한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손자봉은 용눈이오름 뒤편에 어정쩡하고 서있다. 그 너머에 다랑쉬오름이 있으니 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나 중계자 역할 정도라고 이해하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그 역할 여부를 떠나 자주 찾는 용눈이오름의 능선을 걷다 보면 바로 지척지간에 낮지 않은 오름이 하나 버티고 있다. 저 오름은 어디로 올라야 되는고? 하는 궁금증이 앞서지만 용눈이를 걸으며 굳이 거기까지 가보겠다는 터무니없는 용기를 낼 이유는 없는 셈이다. 그렇게 잊져지거나 스쳐 지나간 경우가 꽤나 많은 횟수를 자랑할 터이다.

손자봉은 용눈이오름 뒤편에 어정쩡하고 서있다. 그 너머에 다랑쉬오름이 있으니 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나 중계자 역할 정도라고 이해하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네비로 지정된 손지오름의 입구는 도로 한 중간에 멈춰 서야만 가능한 장소다. 도로 그 자리에 차를 세우고 나면 이 봉우리를 어찌 오른단 말이지... 분명 어딘가에 입구가 있을 터인데 이곳은 아니지 않을까 입구스러운 곳을 지나는 순간 익숙한 팻말이 보인다. [1 오름 1 단체 가꾸기 운동]이라는 팻말. 대부분 오름에 가면 그곳을 가꾸기로 한 단체명과 오름의 이름이 함께 쓰여있다. 지나는 장소에 손자봉이라는 팻말이 서있는 것을 보니 이곳이 입구임이 분명하다. 이미 길을 채촉하느라 엑셀레이터를 밟은 터라 잠시 길을 지난 후 다시 유턴으로 그 장소에 도달했다. 담 사이로 난 길을 지나자 차 몇 대를 세울 수 있는 장소와 탐방로인 듯한 길의 흔적이 나 있다. 옆에는 방풍림으로 조성된 삼나무들이 한쪽으로 일렬 지어 서있다. 정상을 나타내는 능선도 나무들이 병정처럼 줄지어 서있다. 이 오름은 정상의 풍광을 볼 수 없어 잘 다니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일단은 정상까지 초지로 되어있으니 안심이다. 아무리 낮은 오름일지라도 숲 사이로 난 음한 길을 지나는 오름을 오르려면 여간 분위기가 으스스한 게 아니다. 그런 경험을 겪지 않아도 된다 하니 다행이다.

오름오르는 길 입구에서 부터 그냥 오르기 시작한다.

길은 트랙터나 4륜 자동차가 지난 흔적마냥 언덕 위로 표시가 되어있다. 언뜻 옆으로도 길인 듯싶지만 삼나무 숲과 연계되어 있는 듯해 왼쪽은 포기하고 걸었다. 일단은 직진이다. 머뭇거릴 이야가 없다. 올라가 보다 길이 아니면 길을 찾아 턴하면 된다. 늘 그랬듯이 일단은 비슷한 지점을 향해 걸을 뿐이다. 중간의 목초지는 걸음에 부담이 없으면서도 완만한 경사가 불편한 기분을 느낄 여유를 주지 못한다.

용눈이 오름을 오르는 사람들은 제주의 오름 등반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니 그들 눈에 나는 매우 생소한 등반객일 것이다

뒤편의 경치는 어떠할까. 걸으며 뒤돌아가는 모습은 용눈이 오름의 색다른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나마 용눈이 오름을 걷는 탐방객들이 줄지어 걷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터무니없는 장소에 홀로 남은 외톨이일 가능성이 높다. 용눈이 오름을 오르는 사람들은 제주의 오름 등반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니 그들 눈에 나는 매우 생소한 등반객일 것이다. 어떤 오름 인지도 모를 오름에 혼자서 오르는 모습을 혹시 카메라로 담지 않을까.

걷다 보니 쓸데없는 생각을 다하게 된다. 정상은 오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커다란 심리적 부담 없이 약간의 숨이 헐떡이는 순간을 지나면 다다를 수 있는 거리다. 무언가 팻말이 꽂혀 있다. 안내판이겠거니 했는데 나무에 무언가를 거치할 수 있게 되어있다. 글씨는 뜻밖이다.

'악보대'

이게 뭐지? 암튼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뜻밖의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정상에 다다른 순간 바로 앞이 조림된 나무와 철망으로 둘러쳐져 있다. 어딘가는 사유지가 분명한 듯한데 이상한 것은 손자봉의 능선을 둘러 동그랗게 철망이 쳐져있다. 여기 분화구의 일부분이 소유의 경계인 모양이다.


철망 사이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입구가 보인다. 무턱대고 오른 길에 대한 선택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철망과 나무 사이를 지나고 나니 초지가 펼쳐진 분화구가 보인다. 분화구를 두고 한 바퀴 돌 수 있는 거리다. 뜻밖의 경치와 능선길이 펼쳐지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통상 약간의 정상스러운 모양이 있으면 옆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예상과 조금 다른 제대로 된 분화구를 보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거의 다닌 흔적이 적어서인지 능선을 탐방할 수 있는 길 사이로 풀이 날카롭게 많이 자랐다. 걷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자연은 사람들이 조금만 놔두면 그냥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향이 너무도 강하다. 아마도 자연 자체의 생명력 이리라. 


다른 오름에서는 잘 못 보는 뱀딸기가 자주 눈에 띈다. 혹시 뱀이 많은 것이 아닐까 괜한 걱정이 앞선다. 가시덤불이 길을 가로막아 여러 차례 옆으로 돌아가야 하는 수고 역시 겪어야 한다. 그렇다고 전혀 걷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걷는 내내 분화구 안의 푸르른 초지를 향해 시야가 탁 트인 게 숨겨진 비경을 찾아낸 느낌이다. 손자봉의 겉모습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풍광이다. 


앞의 악보대라 씌여진 낡은 나무팻말은 사실 손자봉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키 역할을 한다.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오르기 시작한 걸음걸이가 그 악보대 팻말을 보는 순간 하나의 음악으로 손자봉과 연결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향곡이나 아주 웅장한 가극과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 피아노나 바이올린 독주와도 매칭이 되지 않는다. 실내악의 분위기를 준다. 분화구안의 분위기기 그렇거니와 그 너머로 보이는 목장의 모습도 약간의 일탈을 허용하는 매너리즘을 상상하는 관현악을 생각나게 한다.



능선을 걸으며 조망이 좋은 곳을 찾게 되니 두 가지 모습이 보인다. 한쪽은 역시 용눈이오름이다. 용눈이 오름은 뒤편에서 봐도 아기자기함이 오름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하다. 멀리 관광버스가 오름 추차장 쪽을 향개 가는 모습도 보이고 다양한 능선을 걷는 모습이 멀리서나마 식별이 가능하다.


반대편 능선은 또 다른 아기자기함이 있다. 익숙한 풍경이다. 오전에 이미 올랐던 동거미(동검은이)오름의 다기한 봉우리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 앞의 하도목장 역시 낯설지 않다. 아마도 여기 철조망이 하도목장의 경계를 나타내는 모양 이리라. 하도목장까지는 다른 철망이 없는 것을 보니 손자봉 역시 하도목장의 연장선에 있는 것인가. 

하도목장은 연초 해돋이를 보러 갔던 곳이라 장소의 식별이 가능하다. 하나하나 장소가 익숙해지는 모습은 괜히 이유 없는 뿌듯함을 준다.


옆에는 역시나 혼자사 우뚝 솟은 높은오름이 덩그러니 솟아있는 모습니다.

분화구 안에 롤로피어있으며 고고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나무와 꽃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병품처럼 자리한 방풍림. 마치 이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는 듯 하다.


지미봉쪽의 바닷가 모습이 보인다.


한 바퀴 능선을 돌고 오니 다니 악보대라가 쓰여있는 입구 및 출구 역할을 하는 철망에 도착했다. 어떤 의미를 지녔듯 악보대라는 나무 팻말은 손자봉이라는 묘한 봉우리의 거침없는 기념거리로 자리할 듯하다. 이 악보대라는  이정표가 있어서 어쩌면 손자봉의 특색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숨겨진 분화구의 잔잔하면서도 오붓한 느낌을 음악과 연결시킬 수 있는 인연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내 4중주 관현악 한곡쯤 듣고 나온 느낌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것과는 달리 주페의 '시인과 농부'에서 나오는 악기가 보여주는 다양한 자연의 소리도 연상이 된다. 얼른 스마트폰으로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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