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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n 21. 2017

여름을 앞두고 다시 찾은 물영아리와 물보라길

물이 있어야 하는데 가뭄으로 물이 사라진 아쉬움

물영아리를 다시 찾는데 오래 걸렸다. 워낙 우중충한 겨울 날씨에 혼자서 스산한 바람을 맞으며 찾은 물영아리오름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대신 무덤덤함으로 일관하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과 달리 다시 물영아리를 찾게 된 이유는 다분히 어쩔 수 없는 선택 때문이다. 올레 2코스를 통해 식산봉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려는 의도가 완벽한 거부에 의해 갈길을 못 찾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순간적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온 아내는 순수히 물영아리오름을 따라나선다. 풀밭의 소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자 아내는 내게 학창 시절 내가 흉내 내곤 했던 영화의 대사를 다시 읊어보라며 옆구리를 찌른다. 


그 대사는 지금 기억 속에는 이러하다.

"보라!(사람 이름임) 저 들판에 뛰어노는 소들을 보아. 저 소들은 국민건강에 이바지하게 될 거야~"


80년대 초반의 국산영화에는 여전히 영화 장면과 대사 녹음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어떤 이유로든 보게 된 영화의 장면이 이와 비슷했고 대사는 완벽하지 않아도 거의 유사했던 것을 기억한다.

철로 받치목스러운 나무들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니 보폭이 나와 맞지 않아 신경질이 나기 시작한다. 하나씩 밟고 지나가기에는 나무의 폭이 너무 좁다.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도 잘 모르는 꽃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혀야만 한다.


물론 물영아리의 초입을 지나면 가지런히 잘 정리된 등반길이 이어진다. 습지보호를 위해 계단을 나무로 가지런히 잘 정돈해 놨을 뿐 더라 중간중간에 쉴 수 있는 의자도 마련해 놓은 덕에 헐떡이는 숨을 참아가며 정상을 오른다. 


오늘따라 쉬는 빈도가 매우 잦다. 건강이 악화됐다는 증빙이다. 어차피 늦은 거 잠깐만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세상은 참으로 간단한 전혀 뜻밖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


길을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쉴 수 있는 모든 구간에서 휴식을 재촉한다. 대신 쉴 때마다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듣고 한껏 감성을 달랜 후 다음 발걸음을 옮기기로 한다. 그러고 나니 어려움이 줄었다.


정상을 지나 분화구로 찾아드는 내리막 길을 지나면 물영아리의 최고 장점인 분화구내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사실 그 안에서 제주에서 드문 호수와 습지를 볼 수 있다. 올해는 어떤 상황일까 물이 많지 않을 것임은 익히 알고 있다. 기우제를 지내야 할 만큼 비가 오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물이 그나마 어느 정도는 담겨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분화구 안의 모습은 사실 어느 정도 충격으로 다가온다. 물이 없다. 마지막 남은 몇 모금 정도의 물이 남아있다.


어릴 적 남미의 어느 호숫가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그 호수는 비가 오기 전 마지막까지 말라가다 마지막 생명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죽음의 시기와 매우 근접한 순간 우기로 접어든다는 내용이었다. 호수의 물이 늘어남에 따라 다양한 생명들이 그 호수를 둘러싸고 다시 번창하고 물이 늘어나다 못해 넘치게 됨에 따라 그 주변 초원이 새로운 환경으로 변화는 모습까지 그리고는 다시 비가 줄어들면서 서서히 생명이 소멸해가는 과정을 주기적으로 겪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 다큐를 보면서 자연과 생명과의 연관성에 대해 깊은 고뇌에 빠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호수의 바닥은 이미 메마른 풀들로 가득했으며 주변의 짙은 수풀만이 이곳이 원시의 초원과 정글을 축소해놓은 곳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물이 그나마 어느 정도는 담겨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분화구 안의 모습은 사실 어느 정도 충격으로 다가온다

실지로 초원 같은 풀과 건너편에 우거지게 짙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숲은 서아프리카의 정글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한참을 앉아 바람을 몸으로 맞고 있다. 땀이 식어간다. 이러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컨디션으로 바뀐다. 그만 일어서야 할 텐가.

내려오는 길에는 올라온 길과 다른 신설 탐방로가 생겼다.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는 설명이다. 천천히 돌아가는 둘레길과 연관되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길 이름은 '물보라길'이다. 이름은 참 잘 지은 듯. 그러나 물보라를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내려가는 길은 어느 정도 내려가게 되면 오름을 한 바퀴 돌아가도록 한 둘레길인 셈이다. 그래도 아쉬울 것 없는 상황.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걷는다.

내려가는 길 나뭇가지가 마치 팔을 구부려 얼굴을 가리는 듯한 모양의 나무를 만났다.


함께 간 아내도 같은 포즈를 취해본다. 그러고 보니 캥거루가 권투장갑을 끼고 싸우는 포즈를 취한 모양새다. 저런 나무가 한그루 더 있으면 한결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나무로 잘 닦여진 길을 지나 둘레길로 들어섰다. 새로운 오름이나 숲길을 걷는 기분이다. 언제 물영아리오름을 왔는지 잊어지기 쉽다. 여기는 물보라길이다. 둘레길의 이름 치고는 잘 지었다. 


곳곳에 야생꽃이 피어나고 삼나무 숲을 지나고 전망대도 나타난다. 통상적인 숲길에서 만날 수 있는 요소가 다 있다. 


어느덧 몸이 흥겨움에 조금씩 젖어간다. 숲 속에 사람도 없는 터라 라디오 음악을 크게 틀었다. 괜히 음악에 몸을 맡기며 춤을 춰본다. 그때 뒤편에서 인기척도 없이 젊은 친구가 내 앞을 휙지나간다. 


아뿔싸 사람이 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한 채 몸부림치며 걷고 있었는데 내 뒤를 빠르게 뒤따라와 추월하는 저 여인네는 내가 얼마나 우스웠으려나... 생각해 보니 괜히 몸이 움츠려 들고 멋쩍다.


이렇게 흥겨운 시간은 끝나고 관심은 이곳에도 예외 없이 쌓여있는 제주의 잣성에 눈이 멎는다. 잣성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 대단한 원시림인 듯해 보여도 사람들이 옛적에 이를 이용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투여했다는 흔적이 남아있음을 알겠다. 역사에서 볼 때는 별거 아닌 듯한 왕조의 이야기를 가볍게 이해하고 나가지만 그 시대에 이 먼 변방의 구석까지 중앙정부와 연계된 영이 통하고 있었다. 

아뿔싸 사람이 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한 채 몸부림치며 걷고 있었는데 내 뒤를 빠르게 뒤따라와 추월하는 저 여인네는 내가 얼마나 우스웠으려나

권력은 그렇게 사소하거나 시시하지 않은 것이다. 옛적에도 그랬고 문명이 발달되고 소통이 더욱 쉬워진 현대에는 더욱 강력해진 느낌이다. 그럴수록 각 개인들은 권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율성 쟁취를 위해 안달인 셈이다.


잣성을 지나 처음 올랐던 탐방로 입구에 서니 두가지 오름과 숲길을 한꺼번에 다녀오면서 깊은 상쾌함속에 몸을 담갔다 건진 느낌이다. 초반의 짜증은 간데없다. 분화구에 물만 가득 차 있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을... 아쉬움이 더 남는 오름 탐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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