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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n 03. 2017

이름만큼 모양도 흥미로운 동검은이오름

패키지로 늘 달려있는 문석이오름은 덤으로...

전날 밤 무조건 어딘가는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깬 시간은 일요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7시밖에 안된 시간. 평소에 출근을 하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과 다름이 없으니 이 억울함을 어찌하리오...


빈둥거리며 페이스북 눈팅만 한시간이 넘도록 반복하다보니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그만 이 관성을 끊어야 한다. 일어서려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어렵게 어렵게 일어나 몸을 움직이기로 하고 잡은 목적지는 동거문이오름.


이미 1년여전에 오르기도 했거니와 특이한 생김새를 익히 아는 터라 재방문하기 망설여졌지만 이번에는 어찌됐든 기록을 위해서라도 다녀오리라 다짐한다.

송당의 한복판을 지나 사잇길로 접어들면 초입에 높은오름이 보인다. 말그대로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오름이다. 다랑쉬와 비교되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발군이다. 그 높은오름과 공동묘지를 지나면 구비구비 어디론가 이끄는 길이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이 길을 계속 지나면 백약이오름이 주차장이 나올터이다. 가보고 싶은 마음도 한가득이지만 오늘은 동거문이오름이다.


안내도가 보이고 여러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장소에 잠시 차를 내렸다. 안내도를 보려는 마음과 혹시 길이있나 싶어 두리번 거리는데 앉아서 쉬는 나이드신 일행분들이 이곳이 입구가 아니라고 설명해준다. 


순간 뻔히 그 사실을 알면서도 불확실성에 대한 확인을 생각하던 나는 마치 당연히 알고있다는 표정과 응답을 날리다. 

"알고 있어요. 저리로 더 가면 되죠?"

다 알고있으니 게으치 말라는 대꾸다. 이 말을 하고나서는 한참을 후회했다. 싸가지 하고는... 

본격적인 탐방로의 초입에 섰다. 바로 건너편은 문석이오름 오르는 길. 잠시후에 다시 보리라는 생각을 갖고는 걸음을 옮긴다. 탐방길은 처음부터 고바위다. 오름의 여러개 봉우리중 가장 높은 봉우리를 향해 길이 우선적으로 향해 있다. 저곳에 오르면 경치도 좋을 터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다행히 첫 시작이라 힘이 다 빠져 허덕되는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오랫만에 와보는 오름인 듯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그동안 얼마나 나를 실내에 방치해 놓았던가. 그 방치의 후유증이 오늘이리니....

발걸음을 최고의 봉우리로 옮긴 후 보여지는 풍광은 그 어려움이 얼마나 부질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좋은 풍광이다. 멀지 않은 곳에 다랑쉬오름이 보인다. 왼편에 보이는 봉우리와 그 뒤에 있는 봉우리가 궁금해진다. 그나저나 나는 저들 봉우리에 오른 적이 있던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나는 동쪽 오름군에서 유명하다는 오름만 자주 다녔지 주변의 오름들은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편이 다랑쉬 왼편이 손자봉과 뒷편이 둔지봉이 아닌지 싶다.

정상을 향해 걷는 걸음은 이 걸음걸이가 결코 순탄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알게 해준다. 눈앞에 확 커져있는 봉우리까지 계단이 쭉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걸음을 옮기는 속도가 말없이 줄었다. 등에서 땀이 흐른다. 숨이 거칠어진다. 예상했던 상황이지만 생각보다 그 시작이 빠르다.


어찌됐든 정상에 올랐다. 굽어보는 모든 경치가 익히 알고있는 모습일지라도 시원스럽다. 


"역시 동부 오름 군락은 오르고 나면 후회할 일이 없단 말이야..."


저절로 말이 입밖으로 나온다. 정상에서 보면 통상적인 오름처럼 분화구가 있거나 말발굽형으로 한군데로 용암이 넘쳐 빠져나갔거나 한 모습과는 달리 개별적인 봉우리들이 삐죽삐죽 솟아있을 뿐더러 모양도 통일성이 없다. 어찌됐든 하나의 오름이기에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또 모양도 다기하기에 거미오름이라는 별칭처럼 거미모양의 모습을 따서 이름을 붙이기도 했으리라.

탐방로 입구에서 부터 굽이치며 이어진 길. 지나온 높은오름의 모습.

두르두르 살펴보는 전방위 풍경을 스스로 파노라마가 되어 뱅글뱅글 돌며 눈에 담는다. 그러다 아차 싶어 다시 카메라를 꺼내 특징적인 장소만을 바라보는 주변의 풍경을 담는다.  익히 알고있는 이름의 오름들이 사방을 둘러쳐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멀리 일출봉과 우도가 보이는 성산 바다의 모습은 다른 장소보다 오랫동안 시선을 붙잡아 놓기에 충분하다.


여기까지 올라선 감정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단지 올랐다는 사실기록의 측면 이외에는 다른 수가 없는 것일까. 봉우리 위에 올라 뒤돌아 온 길을 본다. 멀리 굽이치는 포장된 도로가 아스라함과 그리움을 함께 담은채 탐방로 앞에까지 이어져 있다. 정겨운 모습이다.

앞으로 나아갈 길. 정상보다는 작은 봉우리 두개가 아랫쪽으로 길을 잇고 있다. 이곳 저곳의 봉우리 위에 사람들이 서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지만 이미 익숙해져버린 풍경에서 상쾌함과 시원함 이외의 단어를 연상하며 극단적인 이야기를 할 이유는 없다. 그저 인생이란 올랐으면 다시 내려갈 일만 남아 있을뿐...


다만 중간에 오르락 내리락이 있어 지루하지 않게 하려할 뿐이다. 동검은이가 꼭 그짝이다. 높이 오른 정상에서 본 모습과 비교적 낮은 봉우리에 올라 다시 뒤돌아 보며 내가 서있던 곳을 바라보는 시각차는 참으로 다르다. 거미의 다양한 발길을 연상해도 무방한 봉우리와 아래로 내려가는 곡선들이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할 뿐이다.

옆쪽에 이름모르게 펼쳐저 서 있는 좌보미오름.
소로 뒤에 보이는 오름은 다랑쉬오름이다.


하도목장의 소들. 이 소들은 줄을 지어 옆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검은이는 장소에 따라 보이는 봉우리도 다르고 오름내 풍경도 사뭇 다른 다양함을 주는 측면에서 주변의 다른 오름들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다기함을 지닌 오름이다. 아주 심각할 정도로 위험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마냥 편하게만 발걸음을 받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자존심을 간진한 멋스러운 중년 여성의 포스를 내품는다. 단 하나도 동검은이의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생각되는 봉우리의 모습을 담을 수 없다. 처음 올라가면서 생각한 모습이나 작은 봉우리에서 다시 높은 봉우리를 바라볼때 보이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을 제시하고 있다.


동쪽을 향하는 오름 아래를 내려다보니 올 신년초에 찾았던 하도목장이 눈에 들어온다. 년초에는 시간이 급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을 찾기 위해 목장 초지를 지나 자그마한 언덕이 이어져 있는 하도목장을 찾았었다. 그 하도목장을 거니는 소들이 방목하는 초지를 향해 줄을 서서 이어져 나가고 있다. 


저 아래 말테우리는 어디에 있을고?

하산하는길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봉우리를 뒤돌 돌아보는네 내려가는 길이 굉장히 좁다는 느낌을 받으며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일종의 고소공포증이다. 10여년전 서해안에서 배를 타고 2시간 30분이나 서쪽으로 향하는 배를 타고 도착한 적이 있던 어청도. 그 어청도에 있는 등대위에 올라 꼭대기의 작은 둘레를 한바퀴 도는 동안 나는 내가 얼마나 겁이 많아지고 의기소침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난간에 조금더 다가가지 않기위해 거의 기다시피 한쪽으로 기대어 아주 짧은 등대한바퀴를 돌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신 떨리던 내 다리를 보며 스스로 느꼈던 그 낯설음이 오늘도 비슷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옆이 낭떠러지도 아니고 그냥 길이 다소 좁고 비탈이 심하다는 사실외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에도 이 고소공포증으로 인한 다리의 떨림은 쉽게 제어가 되지 않는다. 이를 어쩌리오. 늙어서 이정도의 산길도 못견디는 어리석음을 세월과 함게 몸에 상처처럼 달고 살게 되었구나.

문석이오름을 걸으며 뒤돌아서서 찍은 동검은이의 모습.

문석이 오름은 동검은이 바로 앞 반대편에 있다. 사실 동검은이의 오름 봉우리를 올랐다 이곳을 오르면 이게 무슨 오름이야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이름조차도 동네 친구의 이름인양 문석이인데다 실제로도 아주 완만한 초지가 약간 언덕져 이어졌다가는 다른 쪽으로 쑥 빠려나가는 모양을 띠고 있다. 이름처럼 특색도 없고 정체성도 상당히 부족한 오름이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라  기대하기보다는 동검은이와의 차별성을 느끼거나 동검은이의 모습을 담기위한 장소로서 문석이는 역할지워진 상황이다. 다소 새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문석이오름의 초지를 오르는데 넓게 펼쳐진 초지가 흔들리며 옅은 연두색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얼떨결에 카메라에 담았던 그 모습이 부러워 풀밭을 따라 자꾸 앞으로 앞으로 걷는다.

옆으로 비켜져 있으며 끝없이 흔들리는 풀받을 바라보며 문석이라는 이름을 머리속에 각인시키려 한다. 오르는 길도 잠깐이며 되는데다가 특별한 봉우리도 없다는 결과와 달리 나에게 각인된 문석이의 힘은 바로 바람에 흩날리는 초원의 한들거림이라 할 것이다. 옛적 미국드라마인 '초원의 집'이 생각난다.


발걸음이 저절로 움직이며 어디로 나를 이끄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풀받의 아쉬움은 머리속에 오랜 잔영으로 남는다.

문석이 산책도 마치고 하산하는 길. 멀리 동거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와중에 잠시 만난 젊은 처자들, 커플... 그들은 이 오름에서 무슨 신명이라도 느끼고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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