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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n 13. 2017

한라산 남쪽의 정겨움을 안겨주는 숲_머체왓숲길

아스라함을 품은 남국을 연상시키는 숲길

서귀포의 제2 산록도로를 지나 성읍 주변의 동쪽으로 갈 때마다 보이는 한라산은 다른 곳과 달리 모든 한라산의 기운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을 준다.


숲도 우거지거니와 주변에 비교적 개발된 곳이 적어서인지 시원스러운 숲과 멀리 보이는 한라산이 주는 정감은 시원하다 못해 통쾌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동쪽의 오름들처럼 군락을 이루는 느낌도 없고 백록담에서 바닷가까지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비탈을 선 보인다.  그  숲 속이 궁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머체왓숲길.  2012년 행정안전부 주관  ‘우리 마을 녹색길’로 한남리의 ‘머체왓 숲길’이 선정되면 친환경적인 도보길이 만들어졌다. 제주관광공사는 물론 여러 곳에서 다양한 행사를 하는 덕분에 최근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숲길의 역사에서 보면 신참인 셈이다. 치유의 숲 정도와 괘를 같이 한다고 할까. 

한남리에 자리한 머체왓숲 입구는 제주의 많은 숲길 입구가 그러하듯 생뚱맞은 위치에 낯선 출입구를 가지고 있다. 국가태풍센터를 지나자마자 갑자기 나타난 표지판에 차를 안으로 돌리자 바로 안내센터가 나온다. 그리고는 주차장에 연이어 숲 입구다. 이건 뭥미? 입구 조차 서부 영화 OK목장의 결투를 연상시킨다.  마치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이기 위한 경계인 듯 사람들을 유인한다.


2012년부터 시작된 친환경 도보길



멀리 한라산의 실루엣과 그 앞에 펼쳐진 이름 모를 나무와 숲 한 무더기가 떡하니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곳으로 난 야자매트가 최근에 새롭게 깐 것임을 알려주며 신삥(?) 임을 강조한다. 매트 옆으로 커다란 바위들과 끊임없는 공사장의 울림이 시작을 유쾌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숲으로 유인하는 자력이 다른 무엇보다 강한 덕인지 질끈 감고 길을 나선다.


길은 이내 머체왓과 소롱콧으로 갈리는 이정표를 보이며 머뭇거릴 시간을 주지 않는다. 첫 시작은 머체왓으로... 머체왓은 이 일대가 머체(돌)로 이루어진 밭(왓)이라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라고 설명한다.  뒤편에 머체오름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곳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암튼 머체(마체)오름은 머체로 이루어진 오름, 혹은 지형이 말의 형태(마체)를 하고 있다고 붙여진 오름이라는 설도 있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구어인 제주어는 이런 면에서 생소하고 불명확한 측면이 강한 셈이다.

숲으로 난 길은 발길을 재촉하기에 앞서 생명력 하나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봄철 끊임없이 날리는 민들레 홀씨들이 결실을 맺고 난 후 그 자리에 피어난 노란색 민들레 꽃들이 숲 입구를 차지하면서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과 그 뒤의 화려한 꽃의 향연을 보여준다.

 

민들레 홀씨는 곧 생명의 자유분방함을 실천하고 자연은 이를 축하하며 노란색으로 물든다.


숲 안으로 들어가면 이내 분위기가 새로워진다. 낙엽이 쌓여있고 온도가 내려가고 분위기가 차분해진다. 말 그대로 여기서부터가 숲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풍긴다. 이후 느쟁이왓다리라는 생소한 이름의 천을 넘는 목교가 나오고 숲은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 특별함 없는 발걸음을 이끈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서 자동차 달리는 거센소리가 들려오지만 어느새 그 소리는 바람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에 묻혀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을 넘듯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숲으로 난 길

숲을 벗어나 풀로만 난 뙤약볕 아래를 걷는 일이 반복된다. 목초지스러운 곳과 울창한 원시림이 반복되는 이런 숲은 남국의 정취를 이끌어내는 묘한 취기가 만연해 있다.


지칠만하면 새로운 이정표를 내보낸다. 이번에는 방애혹이다. 설명을 읽어봐도 조금은 생소하다.

"한남리 산 5-1번지 내에 있는 목장지대로 땅심이 깊은 곳을 찾아 돌담을 둘러쌓고 화전농을 일궜던 곳으로 밭 형태가 방아혹처럼 중심을 향해 둥그스름하게 꺼져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숲이 우거져 곶자왈을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방애>는 방아 <혹>은 돌확(돌로 만든 절구)의 제주 지역어이다."

목초지스러운 곳과 울창한 원시림이 반복되는 이런 숲은 남국의 정취를 이끌어내는 묘한 취기가 만연해 있다

이런 설명이나마 없으면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풀이 무성한 이 장소를 무엇으로 이해하고 지나가랴 싶다. 사진상으로 담아봐도 커다란 특징을 찾을 수 없다. 숲에서 아무리 인간의 흔적을 찾으려 한들 숲을 이기는 것이 무엇이 있을쏘냐... 어렵게 이해된 설명을 읽으며 힐긋 지역을 한번 쳐다보고는 그만이다. 갈길이 멀다.

방애혹의 모습

이제 숲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이끄는 동시에 언덕을 오르도록 한다. 조금씩 숨이 가빠짐을 느낀다. 이윽고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나무가 나타난다. 신령스러운 기운을 품기라도 한 듯 주변의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강하다. 


두루이드라도 살고 있지 않을까. 서구적인 개념이지만 나무를 신성시하는 관념은 동서양이 별다를 리 없는 지라 저절로 영성이 깃든 나무를 연상하게 된다.


이곳을 지나거나 살던 사람들도 이 나무의 영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름이 <제밤낭기원쉼터>.  제주 이름이 아닌 것으로 말하자면 구슬잣밤나무다. 식물의 자세한 학술적 연원이나 특징을 차치하고 나무 자체가 속해있는 곳은 물론 주변의 환경과 비교해보아도 이곳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조용한 기도를 들이기에 딱 좋은 환경을 하고 있다.


지나며 가벼운 돌을 하나 주웠다. 머뭇거리다 그냥 제자리에 떨어뜨리고 간다. 길가다 남 따라 소원을 빌려하는데 무엇을 빌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가족의 건강, 나의 재부, 아들의 무사안녕, 사무실의 번창 등등 갑자기 생각이 없어졌다. 좋은 나무라는 인상만 품고는 발길을 돌렸다. 혹시 내가 기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 나무의 정령이 나의 길을 어렵게 막거나 힘들게 하지는 않겠지 하면서 걸음을 재촉한다. 어리석은 일이다.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 어리석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숲 속에서조차 순수해지지 못한 순간을 느낀다는 게 별로 유쾌하지 않다.

전망대에 다다르기 전까지 비로소 깊은 걸음을 걷는다. 걸음걸음이 경쾌하고 숲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야 숲이 나와 일체가 된 느낌이다. 숲에 잘 적응을 하는 시점이 있다. 하루 2시간 혹은 그 이상을 걷더라도 숲이 나와 혼연일체가 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 말이다.  생활에도 리듬이 있고 바이오리듬이 있듯 숲 속 트래킹도 그 흐름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 사이 숲 속의 산철쭉과 산수국 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깊은 숲과 그 뒤로 이어지는 오름도 보이고 목장길로 이어진 아스팔트도 눈에 들어오며 별도로 인식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개별적으로 자세히 인식이 된다는 뜻이다. 숲을 느끼고 있다는 감정은 굉장히 기분 좋은 순간들이다. 

생활에도 리듬이 있고 바이오리듬이 있듯 숲 속 트래킹도 그 흐름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오케스트라를 들을 때 전체의 음악이 전해주는 감동도 있지만 세심히 듣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음악이 악기별로 분리돼서 들리기 시작할 때가 있다. 물론 늘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악기 중에서도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가 구분돼서  들리고 금관악기 중에도 트럼펫과 트롬본 호른 등이 구분돼서 들린다. 뭐 대단한 구분은 아니지만 그 같은 구분이 느껴질 때 음악이 더 다채로워지는 느낌을 받듯 숲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전망대에 다 달았다. 쉴 시간이다. 멀리 남쪽 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그 앞에 푸르른 숲이 펼쳐져있다. 중산간 어딘가를 걷는 느낌이 확연히 다가온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전망대이긴 해도 쉴 시간에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제주 숲의 전형성이랄까. 어느 숲을 걸어도 일정 장소에 가면 적지 않은 조림숲이 있다. 삼나무 숲이 가장 흔한 숲의 종류이며 종종 편백나무 숲이 자태를 뽐내기도 한다. 이번에는 삼나무 숲이다. 어느덧 숲에 들어오니 갈 길을 잃는다. 모두가 길로 보이는데 가다 보면 방향이 이상한 곳을 향한다. 뻔히 길 같아 보이는데 가다 보면 아차 싶다. 분명히 안내 리본을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덧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그때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첩첩산중이 아님에도 이 같은 경우를 종종 당하는 것을 보니 내 판단력이 흐려졌거나 이 숲의 이정표 시스템이 이상이 있다는 증거다. 아무래도 전자가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그래도 쉽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삼나무 숲의 한 복판을 지나 언저리로 가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사람들의 흔적이 느껴진다. 분명 지금은 사람도 살지 않고 아무것도 없음에도 이쯤에서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제부터 돌담이 보이기 시작한다. 잣성인셈이다. 돌담이 지나는 곳의 한 복판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덜컹 나타난다. 예전에는 꽤나 큰 집이 있었던 터가 나타나 있다. 숲 속에 이 정도로 다양한 기능의 집을 짓고 살았다는 것은 이곳이 사람이 생존하기에 어렵지 않다는 의미 이리라.


숲은 막판을 향해 자신이 내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흐름과 외부와의 단절을 내어놓았다. 그대로 충분히 빠져들며 길을 걷는다. 삼나무 숲도 지나고 나니 예전 숲 속에서 집을 짓고 살았던 터다. 이 같은 숲에서 어찌 살았을꼬. 그럼에도 긴 사연이 있거나 먹고살기 참으로 힘들었거나 했을 것이다. 


제주의 어디를 가나 중산간지역에 들르면 잣성이 나타난다. 어디선가 방목을 하며 말이나 소를 키웠다는 이야기다. 이곳도 예외 없이 잣성이 나타나며 이 원시적 숲 안에서도 인간의 오래된 삶이 함께 했음을 보여준다.  내가 있는 이곳이 어딘가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고 할까...


삼나무 숲 아래는 다양한 형태의 잡목과 인간의 생활 흔적이 뒤얽히며 곧 이 생소함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사전 예고를 하는 듯하다.

머체골 집터의 일부 모양. 집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부터는 서중천이다. 매우 깊은 천이다 보니 보기 드물게 계곡을 지나게 된다. 원래의 출발점까지 가는 거리를 서중천과 함께 내려간다. 계곡도 깊지만 그에 따른 숲도 여간 깊은 것이 아니다. 발아래 쌓인 낙엽과 하늘을 가린 나무, 그리고 제주에서 보기 드문 계곡의 물이 한데 어우러지며 이곳에 숲길을 조성해 놓은 이유를 알 듯하다. 이런 곳이 드문이유다. 특히 제주에서는...


숲의 깊이와 물의 고요함만큼 약간의 기괴함마저 감도는 서중천 길은 소롱콧길과 겹치는 구간이다. 그 길이 겹치든 말든 음기가 가득한 길은 한참을 걷는 이로 하여금 헤매는 느낌을 주더니 덜렁 출구로 이끌었다. 바로 주차장이다. 주차장 옆에서 이렇게 헤맨 느낌이다. 한 치 앞도 못 알아볼 일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하게 만드네...


나오는 순간 더위가 함께 붙어 나온다. 숨을 헐떡이며 그늘에서 쉬어가다 보니 여기는 한라산 남쪽임을 다시 되새긴다. 참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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