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_일본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며칠간의 일본 여행을 마치고 마주한 일본과 나

by 너구리

길지 않은 시간을 둘러보는 일본. 그 와중에 새삼스레 생각해본다. 일본은 나에게 무엇인가?


일본 여행이야 그리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고 서울서 부산이나 제주도 가는 정도의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오히려 부산 가는 것보다 더 자주 가게 될 수도 있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 그런 도시는 홍콩과 도쿄였다. 일 년에 수차례 가야 하는 일이 생겼고 관광이라는 이름보다는 업무를 보거나 시장조사 등 아주 실무적인 이유로 의미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저물어 가는 이을 녘의 황혼을 보듯 차분히 앉아 어떻게 명예로운 인생의 후반을 보낼지를 알려주는 새로운 교본을 열어젖히는 느낌이다

그런 일본을 안 가본 지 몇 년 되었다. 제주에 내려온 후 일본을 가보지 못했으니 3년이 되어간다. 그 3년의 기간 이후 다신 찾은 일본은 얼핏 치명적으로 다른 생각 몇 가지를 내 가슴속에 던져 놓았다. 그 사이 일본이 경천동지 할 만큼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이 아니었난 싶다.


일본 단상이라고 해야 하나. 그동안 내가 알았다고 생각되는 일본, 혹은 내가 필요로 하는 일본의 실체가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일본은 이제 저물어 가는 이을 녘의 황혼을 보듯 차분히 앉아 어떻게 명예로운 인생의 후반을 보낼지를 알려주는 새로운 교본을 열어 제끼는 느낌이다.

20170702_205409.jpg
20170702_205839.jpg
20170702_210526.jpg

물론 오사카의 번화가인 도톤보리는 황혼이라는 표현과는 전혀 맞지 않는 북적임으로 밤을 호령하고 있었다. 산세이바시와 난바로 이어지는 도심의 거리는'진정 번화가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절감하게 해준다. 아마 도쿄의 시부야에도 경험하기 힘든 모습을 지녔다. 동경과 달리 관서지방에는 오사카가 또 하나의 수도인 셈이다.


그런데 어쩌랴! 그 수많은 인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관광객들을 보면 이곳 역시 지난 영광을 팔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예의 시끄러운 중국어 소리가 의미 전달도 없이 온 밤거리를 휘감는다. 물론 그 안에는 한국말도 예외 없이 뒤섞여 들린다. 일본은 여전히 선진국의 번화가를 상상하며 찾아드는 인파와 그들이 기대하는 앞선 도시 문명과 밤문화의 첨단을 체험하는 장으로 유효한 상황이다. 영화 <블레이드 런너>의 도시 장면과 많이 닮아 있음을 느낀다. 혹은 공각기동대려나...


디테일에 있어 일본을 따라갈 수 없다는 옛 신념이 여전히 지속된다는 생각을 재확인하는 계기. 관광은 관광일 뿐. 관광과 더불어 나는 이번 여행에서도 일본이 제시해줄 수 있는 새로운 트렌드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낮과 밤을 보내고 있었다.


KakaoTalk_20170703_224450337.jpg

수십 년 이상 일본은 대한민국이 따라가야 할 모델이자 극복하고픈 대상이었다. 경제적인 성장도 그러하거니와 사회적 트렌드, 사회를 이끌어가는 담론, 각 분야의 깨알같이 소소한 물건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는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는 영감과 전례를 보여줬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일제시대의 영향일지 혹은 선진국의 수준이든 상관없이 아직까지도 수많은 분야에서 일본은 우리가 늘 벤치마킹을 해야 하는 도시이자 사회이자 국가였다. 그래서 일본에 간다는 것은 고우나 미우나 선진국에 가는 것이었고 새로운 문물을 찾고자 하는 기대를 함께 품게 했다.

나는 일본에 가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서점에 들른다. 이전에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위해 LOFT나 TOKYO HANDS를 들러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벤치마킹하러 찾아가는 장소가 조금씩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서점이었다. 기노쿠니야가 됐던 준쿠도가 됐든 서점에 간다는 것은 그 사회가 가진 관심사의 첨단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 커다란 서점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나를 붙잡지 못했다는 점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다른 출장으로 어려운 시간을 쪼개 함께 간 사람들을 졸라 서점에 들어섰다. 일본 사회는 무슨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설렘과 우려를 동시에 안고 한 시간여를 넘게 서점 곳곳을 뒤져보았지만 결론은 의외로 살 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취미생활로 푹 빠져있던 목공이나 인테리어 잡지라면 예전이라면 살 책이 산더미처럼 많았을 테지만 이미 그 취미를 살릴 일들이 없어졌으니 그 코너는 패스. 정치적 관심사 역시 일본의 우경화로 인한 관심의 영역이 많이 달라 또 패스, 특이한 경향이나 트렌드에 대한 관심은 공교롭게도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패스.


물론 거만하게 일본 사회에서 얻어낼 관점이나 아이템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가진 관심이 편협해져 버렸다는 사실로 인한 결과지만 그 커다란 서점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나를 붙잡지 못했다는 점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마을 만들기와 도시재생(일본에서는 창생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함)과 관련된 책자를 뒤척거리면서 결국 이 분야가 일본이 우리 사회에 주는 비전과 전망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책 3권을 집어 들고 나왔다.


길거리를 걸으며 수없이 많은 행인들과 자전거로 내 곁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수십 년간 내 머릿속에 언제나 선진국으로 자리 잡았던 일본 사회. 그 사회는 사회의 안정기 혹은 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바뀌고 있었고 내가 찾아야 할 시사점의 위치가 내가 느끼지 못한 사이에 바뀌고 있었다. 더 이상 성장의 프레임 속에, 새롭고 독특한 아이디어와 창조적 개발이라는 요소보다는 좀 더 다른 측면에서 나를 손짓하고 있었다.


도시와 마을의 역동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 사회를 중년층 정도로 본다면 우리가 아직 장년층에 가깝다. 그러나 급격히 기울어 쇠락의 속도를 내고 있는 한국의 도시와 마을의 세태를 보면서 어쩌면 조만간 일본을 따라가기보다 사회적 문제 측면에서는 훨씬 앞서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앞서간 일본이라는 사회가 다양한 노년기 사회를 대처하는 방식에서 새로운 비전을 얻을 시점이 된 것이 아닐까.


일본을 떠나며 앞으로 일본을 다니면서 서점은 가겠지만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는 잡지나 책자 등에 관심을 갖고 서성이는 별로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역동성이 사라진 사회를 힐난할 수 없는 시대에 나 역시 서있다. 젊음을 이제 뒤로 하고 노년을 준비해야 할 나이다. 우리 사회의 비전을 생각하면서 여전히 내가 일본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해 지는 모습조차 일본을 쫒아야 한단 말인가. 어느새 일본을 극복해보고자 애썼던 그 시절을 지나 보니 도시나 마을의 미래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조차 일본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면 또 어떠랴. 지구 상의 모든 국가가 일본이 20년간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오롯이 보면서 새로운 정책을 세우고 추진하고 있다.


장기불황에서 빠져나온 일본이 고령화 사회에 대처하는 다양한 모습 역시 우리 사회의 커다란 교훈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을 떠나며 앞으로 일본을 다니면서 서점은 가겠지만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는 잡지나 책자 등에 관심을 갖고 서성이는 별로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어느 시점이 돼서 마트의 장난감 코너에 더 이상 기웃거리지 않게 되는 시점이 왔다고 할 수 있다. 다른 관심이 현재로서는 도시든 농촌이든 마을에 집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의 관심은 물론 그 사회 자체도 자전하듯 방향을 틀고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울 프린지와 짧은 만남_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