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뒤안길을 맞이하는 지역, 아이린 지구
오랫만에 기록해놓은 일본의 기억을 풀어놓는다.
오사카가 가진 위상이야 일본 서부의 수도라 할 만큼 크나큰 위치라는 것을 여러모로 보면 안다. 막부시대의 개막으로 동경이 일본의 중심이 되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사카는 일본 동쪽과는 달리 자신의 길을 가는 도시다.
히메지에서 신간센(노조미호)을 타고 오사카에 도착한다. 한국의 지하철 경험으로서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복잡한 지하철 노선을 헤매며 목적지까지 간다. 목적지는 오사카의 남쪽 신이마미야역 남쪽 거리다. 이 지역의 이름은 아이린 지구란다.
오사카는 일본 동쪽과는 달리 자신의 길을 가는 도시다
일본의 깔끔함과 질서 정연함을 칭송하던 나의 눈에도 이 거리는 심상치 않아 보였다. 역에서 내려 큰 대로를 걷다 아케이드로 지붕을 덮은 상가지역으로 들어섰다. 오사카에서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기를 꺼린다는 거리에 들어섰다.
물론 한국의 뒷골목이나 중국의 뒷골목 등에 비하면 여전히 깔끔함과 정돈됨은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이지만 일본의 대외적 이미지에 비하면 나름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깔끔함과 질서 정연함을 칭송하던 나의 눈에도 이 거리는 심상치 않아 보였다
아케이드 안에는 오래된 간판과 허름한 술집이 즐비해 있었고 지나는 사람들 역시 초라한 행색을 그대로 드러낸 채 우리 일행을 힐긋힐긋 쳐다본다. 꽤나 많은 가게의 셔터가 내려가 있어 장사를 하지 않고 있다.
곳곳에서 지나는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쳐다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이 관광지가 될 리는 없을 테니 한 번에 봐도 외국인임을 알 수 있는 몇 명의 무리들이 기웃거리며 거리의 사진을 찍고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쳐다보는 모습이 익숙지 않았으리라.
아무리 후미진 동네라 해도 이곳은 일본이다. 거리는 여전히 깔끔하고 깨끗하다. 분명 오사카 최고의 뒷골목일진대 찾기 꺼려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깨끗함에 너무 익숙해 도전정신이 쇠해진 것이리라.
내가 처음에 느꼈던 심상치 않음은 이내 익숙함으로 바뀌었고 자세히 보니 일본의 대중적 요소가 곳곳에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있었다.
목적지는 코코룸. 이곳인가 싶어 당도한 곳은 술을 파는 카페로 활용 중이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한참을 더 지나면 또 다른 코코룸이 나올 거란다. 이 가게 앞에는 온 갖가지 사진과 벽보 등이 어지럽게 붙여져 있다. 인간의 본성은 혼란이 아닐까 하는 의심스러운 생각도 해본다.
내가 처음에 느꼈던 심상치 않음은 이내 익숙함으로 바뀌었고 자세히 보니 일본의 대중적 요소가 곳곳에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있었다
상가는 아케이드로 덮여있고 하나 건너 온 갖가지 상점이 눈에 띈다. 다양한 형태의 업종을 자랑하겠지만 무엇보다 작은 술집으로 보이는 가라오케라고 쓰인 모습이 가장 많다. 모두들 노래만 부르고 살고 있나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 포진하고 있다. 누군가는 오후 시간임에도 생맥주에 마이크를 붙잡고 화면을 보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미 가라오케의 발상지이기도 한 일본의 외로운 군상들에게 삶의 위로가 됐던 가라오케지만 너무나 많고 작은 가게들을 연이어서 바라보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모두들 노래만 부르고 살고 있나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 포진하고 있다
한국의 노래방 문화가 전국을 뒤덮고 이어 단란주점과 유흥주점 등으로 발전하며 유흥문화를 선도하는 모습을 익히 알고 있는터라 이상하지도 않은데 그래도 신기한 듯 기웃거리게 된다. 아마도 대낮이어서 그런 가보다.
거리를 지나며 이 지역이 거칠다고 생각됐던 이유는 철시된 가게의 셔터와 간간히 쓰인 그라피티 낙서가 자전거들과 함께 곁들여져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오늘의 목적지인 코코룸에 도착했다. 이 곳은 이 지역 도시빈민들의 중요한 모임 장소이기도 하고 주인장이 심혈을 기울이며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이기도 하다. 또한 식당이자 카페이기도 한 다목적 공간이다.
여기서 한 여성을 만나 오사카 빈민촌의 생활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찾았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이 코코룸의 외관에서 보이는 형형색색의 색깔과 함께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현재는 그곳을 찾고 그 건물의 옥상에서 바라본 오사카
<어디서 나온 말인지 공사 중인 펜스에 '남자의 미학'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놓았다. 20대 30대는 남자가 되고 싶다. 40대 50대는 남자이고 싶다. 60대 70대는 남자로 죽고 싶다.>
지역의 모습을 바라보는 인상 등을 남기고 싶었다. 그곳에서 2시간여 동안의 오래된 이야기를 나누어가며 일본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게 되니 새롭고 낯선 기분을 갖게 된다.
거리는 어느덧 우리나라의 외각지역과 흡사한 모습으로 이어져 있어 그다시 새로울게 없어져 버렸다. 어찌 됐든 오사카에서는 유명한 거리라니 주인장의 설명을 들으며 걷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이 거리는 일본이 성장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안착하고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밀려 나온 군상들이 모여든 곳이란다.한때는 다들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벌고 살았으나 건설경기를 비롯해 일용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자가 된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로 한 곳에 무리를 틀기 마련이다. 그곳이 오사카에는 아이린 지구다. 그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일자리를 잃음과 동시에 돈도 없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빈민이 된다. 빈민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술인 것은 전 세계 공통현상이리라.
이 거리는 일본이 성장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안착하고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밀려 나온 군상들이 모여든 곳이란다
문제는 시간이 이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도록 육체적 능력도 상실해버리면 그야말로 사실상의 노숙자로 변모하게 된다. 아래의 락커는 이 지역의 일용직 인부를 희망하는 인력시장 대기자들이 활용하는 락커라고 주인장은 설명한다. 그리고 건물 밑은 매일 아침 인간시장이 열리는 장소이자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대기하는 장소이기도 하단다.
언뜻 봐서는 그냥 낡은 건물이 남아있는 지역이라고 하지만 한때 인력시장의 대기자만 일 3500명가량 달했다고 하니 이 지역의 역할변화를 실감케 한다. 아직도 매일 아침에 사람들을 찾는 인력시장이 열린다고 하니 활발한 지역의 중심지임은 분명하다. 화려함으로 치면 밀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우리로 치면 합숙소와 같은 곳이 남아있어 그곳에서 나이 든 독거인들이 혹시나 하고 일자리를 기다리던가 하루하루의 생활을 영위한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선진국이니만큼 나라에서 매달 우리 돈으로 120만 원 정도의 지원금이 나온다. 기본소득은 아니겠지만 연금정도로 생각하면 될란가...암튼 생활은 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돈을 받아 든 사람들의 씀씀이. 대부분이 그렇지만 돈을 받고서 며칠 만에 다 탕진해버리고 나면 또다시 빈민의 상태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계속되지만이것까지 행정에서 해결하기란 난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도록 육체적 능력도 상실해버리면 그야말로 사실상의 노숙자로 변모하게 된다
굳이 인력시장이 벌어지는 장소까지 안내해준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우리에게 새로운 일본의 뒷모습을 소개한다. 통상 외국인에게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쉽게 노출하고자 하지 않을텐데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사회의 변화를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음에 보람을 느끼는 중이었다. 어느 곳에나 어려운 사람들과 굳이 함께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꼭 와서 함께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인간인 모양이다. 착한 사람들이다.
발전한 곳에는 늘 어두운 면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그곳에도 언제나처럼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발전을 한다고 사회의 모든 면이 다 발전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터이다. 미국 뉴욕의 할렘같은 뒷거리처럼 일본의 오사카가 되든 우리의 도시 변두리가 되든 발전한 곳에는 늘 어두운 면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그곳에도 언제나처럼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주류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은 늘 고달픈 삶을 영위하기 마련인 모양이다.
괜히 내 삶의 시간들이 걱정도 되면서 우리 사회 역시 그냥 넘길 수 없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많은 점에서 우리는 일본을 따라가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