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살던 거리 걷다보면 사람들은 그 거리의 현재보다 과거의 시간을 걷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 어떻게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혹은 누군가와 진한 연애를 했는지 등 자신만 간직한 시간 속을 걷는다. 그 거리는 제목이 같지 잡지의 과월호와 비슷한 느낌이다.
옛 제주대병원이 변신한 ‘이아’ 앞 삼도동 문화의 거리 역시 제주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 같은 잡지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중 자양삼계탕이라는 식당도 한 챕터를 차지할 만한 시간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삼계탕 전문점인 이곳은 지난 6월20일자로 영업을 중단하고 휴업에 들어갔다. 뜨겁던 여름 내내 휴업 플래카드가 펄럭인 채 셔터가 내려간 줄도 모르고 이곳을 찾았다 발길을 되돌리는 장면을 가끔씩 목격하곤 했다. 그중에는 꽤나 나이가 드신 분들도 있고 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들도 있었다.
가족들은 40여년 간 운영하던 삼계탕 집을 정리하기 위해 오랫동안 이야기해왔다고 한다. 또한 여름 내내 장사로 인해 힘들어 하시는 연로한 부모님이 안타까워 여름대목 전에 영업을 중단했다는 아들의 이야기도 듣게 됐다.
40년된 가게가 문을 닫는 건 당사자들에게는 굉장한 고통이자 엄청난 결정이었으리라. 더불어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옛 기억 하나를 과거로 묻어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아쉬움속에 삼계탕을 먹지 못한채 돌아서는 분들의 생각이 그러하리라.
가게가 문을 닫기 전 몇몇 사람이 장소를 임대하러 오거나 삼계탕 집을 이어받아 장사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자양삼계탕은 그 제안을 거절했고 여전히 가게는 문을 닫고 있었다.
9월초 여름내내 닫혔던 셔터가 다시 열렸다. 삼계탕 판매대신 일단의 젊은이들이 뚝딱거리며 망치질을 하기 시작하더니 전시판넬과 안내판 등이 설치됐다. '2018 HAO:OK선[옥션]'이라는 낯선 행사가 준비중이었다. 제주를 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와 독일, 청주, 태국 치앙마이에서 활동하는 작가 30여명의 작품 60여점을 전시 및 판매하는 내용이다.
더불어 생각해본다. 오래된 가게가 살아남는 길, 아니 살아가는 길은 무엇일까. 작은 노력이지만 자양삼계탕측과 도시재생지원센터 그리고 관련된 다양한 전문가들이 향후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서 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만들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첫 스타트가 조금은 낯설게 시작됐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자양삼계탕 하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역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연륜과 추억과 삶의 문화가 켜켜히 쌓여진 수많은 가게들이 있다. 그 가게들 중 일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어떤 식으로든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어떤 곳은 새로운 사람 혹은 새로운 이름으로 가게가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던 소위 노포라는 가게들이 지역의 매우 중요한 자산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낡았다고 해서 새로운 유행에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에 남아있는 주인장의 노력과 그곳을 찾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들이 쌓여있기에 그 장소가 단순한 공간 이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원도심에는 예전 이 지역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던 가게들이 세월의 힘을 이길 수 없기에 하나 둘씩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자양삼계탕을 이야기했지만 이를 시작으로 지역의 공간들이 기억의 장소로 오랫동안 살아남았으면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쌓여있는 장소들이 어떤 곳들이 있는지부터 찾아내고 그 시간의 주름들을 어떻게 지역 안에 담아내야 할지를 고민하고 만들어 가야할 시점이다. 자양삼계탕이라는 한 가게처럼 지역이 추억과 미래를 함께 가져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함께 찾아가기를 기대한다.
이재근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