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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pr 18. 2016

제주막걸리를 논하다

흐린 날 저녁 무심코 생각나는 순간을 위해

퇴근 무렵 비가 내린다. 오후 회의를 마치고 산 중턱에 섰다. 중산간에 있는 사무실에서 가진 회의를 마치고나니 퇴근시간이다. 아직 이르다. 


"어디로 가십니까?"

"집으로 가야지요."

"비도 오는데 파전에 막걸리 한잔?"


언제부턴지 내가 제주 막걸리에 흔쾌히 호응을 보이던 것이... 혹시 벌써 습관적인 반응이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니다. 전혀 입에도 대지도 못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체력의 한계로 술을 즐겨한다거나 애주가라거나 하는 말을 덧붙일 생각은 전혀 없다. 나를 술과 연관시키는 것이 달갑지는 않다.


평균적으로 따져보니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는 술을 마시는 것 같다. 본의 아니게 업무상 약속이 잡혀 있는 경우도 있고 지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쾌활하게 갖는 술자리도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날씨가 흐리거나 괜히 마음이 울적하거나 한 경우 똑같이 술 생각이 나더라도 막걸리가 먹고 싶어 진다. 막걸리라고 다 막걸리가 아닌 흰색 바탕에 핑크색으로 이름이 쓰인 제주막걸리 생각이 난다.


웬 제주막걸리 찬양이냐고 비아냥 거리는 반응도 있을 테지만 육지에서 맛보지 못한 막걸리 맛에 순치되는 느낌은 나쁘지 않다.

묘하게도 날씨가 흐리거나 괜히 마음이 울적하거나 한 경우 똑같이 술 생각이 나더라도 막걸리가 먹고 싶어 진다

몇 년 전인가 아내와 마트에 다니면서 재미 삼아 온동네 막걸리를 한 번씩 음미해보기로 했다. 주말마다 마트에 들러 최소 5가지 정도의 막걸리를 사고 이틀에 걸쳐 맛을 비교하면서 그날 가장 맘에 드는 지역 막걸리를 고른 적이 있었다. 물론 여행을 다녀오거나 지방을 갔을 때 먹었던 막걸리 맛을 비교하는 것도 이 콘테스트에 포함됐다.


몇 주간의 노력(?) 끝에 우리는 20여 개에 달하는 지역 막걸리 중 2가지를 최종 후보로 꼽았다. 그중 하나는 지리산 막걸리였고 다른 하나가 제주 막걸리였다. 공교롭게 나는 그때까지 제주막걸리를 먹어보지 못했다. 나는 지리산 막걸리를 최고로 꼽았고 아내 역시 지리산 막걸리를 최고로 꼽았지만 지난 여행에서 먹어본 제주막걸리를 동등한 맛으로  강조하며 공동 1위를 제안했다.(공교롭게 내가 뽑았던 지리산막걸리 회사는 부도가 나서 다른 막걸리로 대체됐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물론 개인의 입맛이 다르므로 어느 지역의 막걸리가 더 맛있다는 평가는 다른 지역인들에게는 대단한 실례의 언사가 될 것이다. 암튼 그 같은 일이 있은 후 수년 후에 제주에 자리를 잡은 나는 이제 매주 한번 이상은 제주 막걸리를 마신다. 


최근의 술자리야 소맥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작심하고 막걸리를 먹기로 한 날은 다른 음료를 멀리한다. 제주막걸리만의 담백한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다.


다른 막걸리와 뭐가 다르냐고? 맛이 다를 뿐이다. 일단 단맛이 적다. 담백하고 탄산이 적어서 트림이 적게 나온다. 무엇보다 인위적인 느낌이 한결 적다. 


서울의 장수막걸리에 익숙해져 있다가 제주막걸리를 마셨을 때 첫 느낌은 심심하다는 평가였다. 뭔가 부족한 단맛이나 탁 쏘는 게 부족한 밋밋한 느낌이었다. 이 맛의 무엇이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제주막걸리의 가장 큰 장점은 다른 맛으로 인해 막걸리 본연의 맛이 침해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탄산이 많이 들어가 있거나 추가적인 첨가물로 향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혹은 지역적인 특산물과의 관계를 강조한 맛도 아니다. 오히려 빙떡이 밋밋한 맛 그대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었듯 제주막걸리는 막걸리 특유의 맛에 충실하다는 이유로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막걸리의 가장 큰 장점은 다른 맛으로 인해 막걸리 본연의 맛이 침해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에서 좀 더 자극적인 맛과 음식에 익숙해있던 사람들이 제주 특유의 음식을 접하면 처음에는 다소 낯설다. 특별한 맛을 느끼기에는 무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첫 시작은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조미료 등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일부 지방의 영향을 받아 음식 맛이 많이 바뀌기도 했지만 제주 음식 특유의 특징이라면 덜 자극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 때문인지 이곳 사람들은 매운 청양고추를 거의 매 식사때마다 한두개씩 먹는다. 자극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막걸리에도 그 생각이 그대로 적용되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다른 막걸리보다 자극적인 맛이 부족하지만 본질에 충실한 맛을 몸과 입맛이 받아들이는 순간, 막걸리의 맛을 알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제주막걸리에 더 집중을 할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무분별하게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구성 요소들을 바꾸는 변질의 요소가 개입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자신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이거나 혼자서 저녁을 먹는데 익숙해진 요즘 마트에 들러 막걸리를 장바구니에 담는 일은 일상적인 모습이 됐다. 점점 제주에 적응되어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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