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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Sep 23. 2017

이름과 내용 모두 아기자기_소롱콧길

서귀포 한남리 머체왓숲길의 또 다른 선택

한남리 머체왓숲길에 대한 내 기억은 물론 좋은 게 많지만 나름 아쉬움이 남는 숲이다. 8월 말 아내가 잠시 제주에 내려와 산책을 가고자 했을 때 내가 서슴없이 한남리를 찾은 것은 아쉬움에 대한 또 다른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번에는 약간의 코스만 바꾼 소롱콧길을 택하기로 했다. 출발점은 같지만 아기자기한 숲길의 모습을 보이는 소롱콧길을 통해 숲과 산책로와 등산의 느낌을 나름 다양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부터가 특이했다. 작은 용을 닮았다니... 숲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숲길 자체를 작은 용을 닮았다고 생각할까.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그래도 이름 하나만은 이쁘게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롱콧... 한남리 서중천과 소하천 가운데 형성된 지역으로 편백나무, 삼나무, 소나무, 잡목 등이 우거져 있는 숲으로서 그 지형지세가 마치 작은 용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입구는 한창 공사 중이라 불편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저수지를 만드는 모양인데 그래도 자연을 너무 심하게 훼손한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그 덕에 입구가 바뀌어 조금은 헷갈리는 출발이지만 길은  바로 숲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머뭇거리지 말고 숲 탐방의 준비나 하시지 하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분위기다.

숲은 커다란 나무 대신 오밀조밀하고 다양한 삼나무 소나무 등이 군락지를 이루며 많은 변화를 준다. 그래서 인가 이 분위기가 좋구나 싶으면 곧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아하 숲은 냄새가 좋다고 하면 다시 문화의 흔적을 보이기도 하는 듯 변화의 속도는 심심할 여지가 없다.


그 와중에 가장 큰 인상을 주는 곳은 잡목들로 우거진 숲길에 낙엽이 쌓여 만드는 오붓한 탐방로라고 할 수 있다. 계절에 굳이 구애받을 일도 없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시몬, 듣고 있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이라는 시구절을 괜히 되뇌게 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낙엽활엽수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그 낙엽길을 한참 걸으며 서울 근교 공원의 어딘가를 걷는 늦가을의 정취와 소녀의 감성을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은 도시에서만 자란 이들의 가볍고 얄팍한 감성일 것이리라. 사실 장소는 어디라도 상관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누군가 무슨 목적으로 이 곳에 돌을 쌓기 시작했는지 혹은 숲을 조성하면서 콘셉트의 하나로 포인트를 주기 위함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뜻밖의 만남을 주는 여정은 그래서 행복한 느낌이다

그때그때 전해주는 숲의 분위기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마음만 열려있다면 숲길을 걷는 목표는 달성되는 것이다. 그 숲의 한 복판에 와있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도 정화와 가까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럭저럭 숲길을 걷고 있는데 숲 중간에 방사탑스러운 돌탑이 십 수개가 놓여있다. 무슨 목적일지는 몰라도 나름 숲에서 만나는 이벤트라고 여겨진다. 누군가 무슨 목적으로 이 곳에 돌을 쌓기 시작했는지 혹은 숲을 조성하면서 콘셉트의 하나로 포인트를 주기 위함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뜻밖의 만남을 주는 여정은 그래서 행복한 느낌이다. 괜히 이곳에서 다양한 사진을 찍어보겠노라며 여러 장의 사진을 다양한 앵글로 시도해 본다. 그중 맘에 드는 사진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비록 핸드폰이기는 하지만...

방사탑의 돌무더기를 놔두고 숲의 새로운 입구로 들어가려니 멈칫 어두운 기운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불편하고 음울한 기운 때문에 이곳에 방사탑을 쌓았던 것이 아닐까. 굳이 이곳이어야 했다면 그 이유는 저 숲이 주는 음침한 분위기였으리라.


숲은 겉에서 보기에는 음침하지만 한 발짝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다양한 식생은 물론 촉촉한 분위기가 무엇보다도 원시적 생기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시적 생동감을 느끼고픈 심정을 아는지 멀지 않은 곳에 온통 이끼로 뒤덮인 돌무더기가 나를 반겨준다. 아 저 초록의 생동감이여!

숲은 겉에서 보기에는 음침하지만 한 발짝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습기가 여타 다른 곳보다 많은 때문이겠지만 그런 생동감은 심정적으로는 원초적 생명의 원형을 떠오르게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생명은 잉태되지 않았을까.

길은 어느덧 오름 쪽으로 올라가는 듯하더니 방향을 바꿔 다시 내려가는 길목으로 바뀌었다. 왼쪽의 계곡은 보아하니 서중천이다. 숲길로 이어져 옆에 서중천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 아직까지는 계곡이 깊지 않지만 그 길목은 점점 깊은 계곡으로 발길을 이끈다.


이미 한번 와봤다고 익숙한 다리가 눈에 보인다. 서중천 계곡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자 한라산 둘레길이 지나는 사거리인 셈이다. 이곳에 서면 다른 길로 가고 싶지만 한라산 둘레길을 선택하는 순간, 기약 없는 발걸음이 될 것을 알길에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조만간 채 가보지 못한 한라산 둘레길의 나머지를 선택하리라.

마치 공룡뼈를 연상시키는 바위의 모습

서중천의 내리막 계곡은 사실 맘 편한 길은 아니다. 계곡의 물이 늘 있는 것이 아니라 비가 와야 흐를 텐데 아예 건천이면 모르겠으나 약간씩 남아있는 물들이 고인 물이 되어버리니 유쾌하지 않은 정체된 연못의 느낌을 풍긴다. 모기와 이끼 그리고 고인물에 보이는  녹조의 모습이 편하지 않다. 그곳을 지나 출구에 다다르는 순간 커다란 포클레인이 엄청 넓은 공간을 파내며 온 자연 풍광을 해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약간씩 남아있는 물들이 고인 물이 되어버리니 유쾌하지 않은 정체된 연못의 느낌을 풍긴다

도대체 이 깊은 곳을 와 파내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팻말에는 저수지를 만든다고 하니 뭐라고 말할 상황은 아니지만 얼른 보기에는 불편한 모습일 뿐이다.


길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소롱콧길은 머체왓숲길과 마찬가지로 내려오는 서중천 길이 상쾌한 맘을 바로 잊게 만들어 주는 단점이 있다. 내려오는 길목이라도 새롭게 만들어 준다면 이 길을 계속해서 오고 싶건만 올라갔다가 다른 곳으로 증발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한동안 이 숲길을 오는 한 계곡길의 고인 물은 계속해서 봐야 할 듯하다. 

저수기가 될 장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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