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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Oct 04. 2017

너구리 제주를 걷다1_올레 7코스

첫 제주 나들이_2014년 10월 4일

[편집자 주] 제주에 내려온 지 3년이 됐다. 3년이 지나도록 숨 가쁘게 달려오면서 스스로 제주에 적응할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힘은 역시 제주의 자연일 수밖에 없다. 처음 내려오면서부터 지내온 제주의 자연 이야기와 생활을 다시 들춰본다. 처음에는 어찌 기록해야 할지도 모른 채 무턱대고 다녀온 이야기를 적었다. 그 3년 전부터 지내온 이야기를 이제 다시 꺼낸다.


오늘 제주를 걷기로 작심하고 집을 나섰다. 어제 아내에게 물었다. 제주와의 교우를 할 수 있는 첫 만남을 어디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올레 7코스를 걸으란다. 인터넷을 찾아 위치를 확인했다. 서귀포의 관광지부근이다.

"그러지 뭐..."


예전에도 다녀봤던 지역들인데 특별한 게 있을가 싶은 마음으로 걷기를  결심하고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 뭐지 이 낯설음은. 혹시 내일이 설레이나? 아니다. 설레임보다는 걱정과 부담감이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 어느덧 나도 모르게 제주와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하니 이를 시작할 경우 나타날 예기치 않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 기타 등등 그런류의 두려움이다.

그래서 그런지 잠을 잘 못잤다.


예정대로라면 7시30분에 기상을 해 서귀포의 출발지점에 10시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근데 10시에 일어났다.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 나오다 못해 서글퍼졌다. 첫날부터 이모양이다. 다시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도전해 볼 일이다. 정신차리자.


시외버스터미날에서 버스를 탔고 서귀포에서 내렸고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외돌개까지 갔다. 그곳이 시작점이란다. 7코스 다녀온 사람들의 추천이다. 가장 화려한 제주의 모습을 느낄 수 있으니 초보자로서는 권하기 쉽단다.


그래, 외돌개는 한 눈에 들어온다. 바다가 낯설지는 않지만 제주의 바다는 낯설다. 그 낯선바다에 외돌개와 주변 범섬 지역은 나름 경치구경의 기쁨을 준다. 더불어 관광객 구경의 기쁨도 준다.


나는 관광객이다. 7코스를 시작하기 전에 관광을 하고 있다. 기분좋은 관광이다. 수많은 신혼부부, 중국인 유커, 그냥 관광객들 사이에 나를 묻었다.외돌개와 관련된 바다를 다 본후 걷기를 시작했다. 오후 1시다. 배고프다. 어디서 밥을 먹지.관광지에서 밥을 먹고 싶지는 않다. 마을에서 온전히 밥을 먹고 싶다. 어제 저녁 라면과 시리얼로 식사를 떼웠다. 오늘 아침도 우유와 시리얼로 해결하고 부랴부랴 집을 나서지 않았던가. 여기서 대충 떼우고 싶지는 않다. 무작정 걷기로 했다.


2시가 넘었다. 밥먹을 수 있는 장소는 없다. 그 사이에 우여곡절을 겪는다. 가장 유명한 7코스에 관광객이 넘나드는 외돌개 관광지를 빼고는 걷는 사람들이 없다. 올레길은 어디로 갔는가. 전국적으로 둘레길 걷기의 유행을 창조한 올레길의 그 명성이 어디로 갔지? 걷는 사람이 없다. 내가 너무 늦었나 괜한 자책을 한다. 오늘 좀더 일찍 나올걸...

<걷다보면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이 주는 분위기는 이렇다. 넉넉한 바다에 확 다가온 새로운 위협이라고 할까. 가치관계를 떠나 참으로 언발란스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강정마을을 걷는다. 아...이렇게 강정마을이 갈등의 중심에 있었구나. 그동안 나는 눈과 귀를 닫고 있었는데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갈등의 소용돌이 안에 휘몰아쳐 있었다. 내가 눈과 귀를 닫는다고 세상의 문제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걸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강정마을에 대해 심도깊게 논의하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 느낌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 느낌으로 강정을 대변하고 싶었다.>


법환동 마을에도 머물렀다. 남자용 노천탕도 있었고 동서의 물이 갈라진다는 설명도 있었고 해녀가 두드러진 좀녀마을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격정적인 마을이며 차분히 둘러보고 싶은 마을이기도 하다. 그러나 밥먹는 것이 급하다. 왠놈의 시골마을에 화덕피자 집이 2곳이나 있단 말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화덕피자도 아니고 양이 많은 회도 아니다. 그냥 이동네에 어울리는 한끼의 식사고 제주도 서귀포스러운 마을의 식당이다.


그런 것은 없다. 곳곳에 카페와 샌드위치를 판다. 예전 일본의 지유가오카에 갔을때의 느낌이 되살아 났다. 나는 초기의 그곳이 좋았다. 스스로 컨셉을 만들어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어 팔아오던 자그마한 가게들이 있던 시기의 지유가오카는 살아있는 고장이었지만 수년이 지난후 그곳에 재방문한 나에게는 대기업 매장과 프랜차이즈 매장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다시는 가지 않았다. 그곳에 가지 않아도 그런 의미의 매장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므로.


이 동네도 마찬가지다. 샌드위치와 카페와 화덕피자는 굳이 제주 서귀포의 이 고장에 오지 않아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이템 아니었던가. 내가 서울식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북촌이나 가로수길에 가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기분을 여기에 와서 느낀다고 감동한다면 그것은 지방적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마을의 독특함을 보고 싶을 뿐이다. 식사도 그러 식사를 하고플 뿐이다.


각재기국이라는 점심을 먹었다. 그래 그 생선이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전갱어라는 생선이었지만 그 생선이 이동네에서는 각재기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낯선 이름에 낯선 국의 모양새로 기분은 생소했지만 그 자체로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래서 그 마을은 합격...

계속 걸으며 자연스럽게 깨닫는 사실 하나. 제주도는 나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곳에 들어가서 내 자신을 느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도를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현실과 떨어져 있는 인간들이 그 자체만으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는 것때문에 의미가 있을 뿐이다.


5시에 일정을 마감하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낯선 경험이기는 하지만 주인장의 도움으로 5명이서 회를 떠서 저녁과 술자리를 겸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사실 홍콩이나 중국에 갔을때의 민박과 동일한 구조이기 때문에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낯선사람들과의 조우는 긴장과 기싸움 그리고 흥겨움과 반가움이 늘 뒤섞인다. 24살의 청년2명. 수업중 하루를 땡땡이칠 생각을 하고는 제주에 내려와서 오토바이를 빌려 이곳 저곳을 다니는 청년들. 부럽지만 한편으로 자식같은 느낌으로 걱정이 앞서는 친구들이다. 한명은 일정없이 올레길을 완주하겠다며 9월30일부터 올레길을 걷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한라산을 등반하고 싶다는 내나이 비슷한 인물. 한명은 창원으로 내려간지 7년이 지났으며 제주도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습자지 지식이라며 굳이 본인을 내색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지식을 내보이고 싶어하는 40대 초반의 사람. 그리고 아직까지는 제주보다는 서울이 더 익숙한 자존심 덩어리 나 자신. 그렇게 5명이 회를 뜨고 이를 저녁식사로 대신했다.뒤늦게 우리가 자리를 차지한 사실에 아쉬워하며 원주에서 온 산악회라며 모임에 끼고 싶어하는 3명의 일행을 비롯해 나름대로 낯설지만 친절한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졌다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런 기분을 어디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인가.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지만 17년전 유럽을 여행하면서 유스호스텔에서 만났던 유럽의 젊은이들을 연상케해주는 기분이다. 아직은 나에게 열정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차분히 정리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더불어 오늘 하루의 올레길 걷기 보다 이들과 만나서 솔직담백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 느낌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엌<샬레 게스트 하우 부엌 모습>

어쩌면 매주 토요일 오전에 올레길을 걷고 하루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 모습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들은 국외자요 아웃사이더이자 관광객이기에 이들에게서 무엇을 찾아내기 보다는 이들을 시작으로 하나씩 안으로 들어가고픈 욕심이 난다.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어갔고 몇몇은 밤을 서성이고 있다. 너구리는 아직까지 제주 바깥사람들과 함께 걷고 있다. 풍경이 제주지만 이 정도까지만 밀고 들어가는 수준으로 첫 시작을 해도 만족스럽지 않을까 싶다. 첫술에 배부를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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