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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Oct 11. 2017

귀갓길에서 만난 제주 서쪽의 메밀꽃밭

제주시 오라동 어딘가에는 지금 메밀꽃 축제가 열리고 있을게다

지도상의 위치는 알아도 가보지는 못하였다.

차를 몰고 가다 보면 어딘가에 잔뜩 불법 주차가 되어있는 곳이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나도 차를 세우면 흐드러진 수많은 메밀꽃을 볼 수 있을 게다.


10월 황금연휴의 마지막 날인 한글날

차마 가만있지를 못하고  제주 비엔날레를 보러 다녀오는 길

동쪽의 구좌끝자락에서 제주시내를 지나 서남쪽 모슬포항고 인근 섯알 오름이 있는,

장소도 낯설어 분명히 올레길을 걸으며 지나쳤던 너른 비행장과 격납고가 있는 

그곳에 세워진 예술작품을 떠돌다 

다시 서쪽의 어딘가 청수와 저지를 지나 이시돌 목장을 거닐다 돌아오는 길


장황하게 설명하는 그 길 옆에서 뉘엿뉘엿 해질 시점을 헤아리던 순간

'앗, 메밀꽃이다'

그렇게 서버린 서쪽의 메밀꽃밭에서 짧은 시간 망설임 없이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덩실거리는 순간을 맞았다.

뭔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꽃인 줄 알았으면 됐지. 

그래도 못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되돌리다 다시 돌아서서

사진 몇 장을 담는다.

여전히 똑같은 꽃밭을 향해 버튼을 눌러보는데

이 꽃이나 저 꽃이나 구분 없이 한데 모여 있어야 이쁜 꽃이거늘

그 안에 뭔차이라도 있는 듯 

요리조리 돌려가며 풍경을 담아본다.


왜 나의 베아트리체는 어디에 있을까

초록과 흰색이 어우러진 너른 들판을 관조하다 묻는다.

부끄러움이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천둥벌거숭이 같은 삶이 이 고장에서 또 어찌 닳아가고 있는가.


휴일인 월요일 오후 늦을 무렵 기대 없이 만난 메밀을 바라보며

꽃은 땅에 있어야 아름답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가 가는 곳에서 기다리는 이런 순간의 즐거움이 있으니 아직 살만한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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