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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Oct 13. 2017

제주 비엔날레_알뜨르 비행장은 다크한가?

막 쓰는 관전평... 쉽게 질러되는 안타까움을 중심으로

[주] 이 글은 제주 비엔날레가 열리는 제주도 남서부의 모슬포항 알뜨르 비행장을 다녀온 이야기다. 밑도 끝도 없이 비엔날레에 대한 생각을 적어놓은 것이니 다른 의도로 볼 일은 아니다.




제주 비엔날레의 정보에 대해서는 나에게 물을 이유가 없다. 잘 모른다. 무작정 달려간 알뜨르 비행장에서 난 제주가 처한 예술의 현 상황을 바라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예술이라는 이름의 지루함을 견디는데 실패했다. 


제주 비엔날레는 알뜨르 비행장이 아니었으면, 혹은 산방산이 아니었으면  사람들이 걷기조차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전시회였다. 밭 사이를 걷게 된 이유가 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뿐이다. 그 사이에 격납고가 있었고 작가들은 개인적인 치열함이 어떠했는지는 몰라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묻어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매번 산방산을 보면 드는 생각이지만 하멜이 이 근처 어딘가에 표류했을 때 처음 본 제주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사람들이야 낯선 이방인일 테고 말도 안 통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형적으로 산방산은 어디에서 봐도 형태의 거대함으로 위압감을 주기보다는 생김새의 기이함이 훨씬 강하다. 그 기이함은 이곳 모슬포에서 한결 더 돋보인다. 주변의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릴 평평한 지형이 함께 있기에 상호보조가 가능한 장소다.


처음 알뜨르 비행장의 비엔날레 주차장을 찾았을 때 노란색 만장 깃발이 산방산을 대체할 만한 내용인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혹은 전면에 거대하게 세워놓은 소녀상이 상징성을 떠나 의미 있는 대체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도 함께 떠올랐다.

그 현장의 예술적 관능이 섹시하지 않다

예술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면 모티브가 직관적이라는 것은 영 싱겁다는 느낌과 일맥상통한다. 제주 비엔날레의 주제가 투어리즘이고 이곳 역시 다크투어리즘이라는 관광의 새로운 개념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인데 그게 비엔날레와 무슨 상관이지.... 걷는 내내 되새겨본다. 근데 투어리즘과 비엔날레와의 연관성을 어떻게 찾아야 하지. 미술작품을 보기 위해 관광을 오라는 이야기인가. 아님 새로운 관광의 트렌드를 제시하고자 함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와 닿는 부분이 적다.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면서 제주와 연관된 키워드를 생각해본다. 일제시대의 본토 사수를 위해 준비해온 비행장인 알뜨르와 태평양전쟁의 기억.  4.3, 세월호의 리본, 정신대 할머니를 상징하는 소녀상. 그것이 혼재된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용어의 결합. 내용은 틀리지 않은데 너무 직관적이지 않은가. 그 연관성을 찾았다고 해서 기뻐할 만큼 순진하지 않으며 그것을 못 찾았다고 무지몽매하지 않을진대. 그 현장의 예술적 관능이 섹시하지 않다.


오히려 격납고를 걷는 내내 농부들의  밭매기가 눈에 밟힌다. 농사에 무지한 탓에 밭 갈고 뭔가 씨부리는 일을 보며 내내 밀레의 만종이 떠오른다. 그건 이삭 줍기 아니었던가. 언밸런스를 스스로 탓하지만 동행한 일행 역시 그와 비슷한 느낌을 호소한다. 역시 자연이 주는 압도적인 영향력이 매 격납고마다 펼쳐놓은 작가들의 작품 의도들보다 훨씬 돋보인단다.  


국방색 모래주머니가 무지개로 변했다고 해서 아름다움 속에서 전쟁의 호전성이 없어질까. 옥정호의 무지개색 진지를 바라봐도 그 의미보다는 이전에 미리 만들어 놓은 제로센 전투기에 형형색색 한 모습이 먼저 보인다. 

묻어간다는 생각.


격납고라는 매개체는 무지하게 매력적이다. 비행기에 색을 덧붙이기보다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격납고 자체를 새로운 예술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보호 때문에 문제가 되나? 그 안에서만 무언가를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그게 다크투어리즘이나 투어리즘으로 표현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맘에 안 든다. 비엔날레의 의지가 뭔지 읽히지 않는다.

옥정호의 작품이 있는 격납고


강문석 작가의 작품
단지 그것을 이용해서 평화라는 역설적인 개념을 설명하려 했다면 그것은 너무 쉬운 방법을 택하는 길이다



강문석 작가의 작품 역시 맘이 편하지 않다. 리본이라는 이미 너무나 일반화된  도구를 땅에 박힌 제로센에 아무리 매단들 팽목항의 그 치열함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전쟁의 폐허를 환기시키고자 했다면 세월호로 인식되는 노란 리본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작가적 상상력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메시지가 별로다. 본인이 내 평가를 듣는다면 발끈하겠지만 상상력이 조금은 가슴 아픈 추억과 닮았다. 


사실 격납고는 그 어떤 이미지 보다도 강한 상징성을 갖는다. 그 안에 안주하려 하면 지는 것이다. 일본의 본토결전을 위한 작전 준비 비행장이 아니었던가. 단지 그것을 이용해서 평화라는 역설적인 개념을 설명하려 했다면 그것은 너무 쉬운 방법을 택하는 길이다. 그 이상이길 원했는데 그 이상을 보기가 어렵다.

전망경을 통해 보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컨텐츠와 그 매개체

작품은 작품으로 인정하려고 한다. 그들의 작품세계를 탓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 지형이 주는 지리학적 역사적 의미가 너무 크다는 느낌이다. 그 보다 자연이 주는 감흥이 모두를 압도한다. 여기에 날씨까지 좋으니  '에헤라 디야~'. 


작품성. 오히려 격납고 안에서 바라본 하늘과 스프링클러 그리고 격납고까지 가는 길이 밭으로 인해 한참을 돌아야 하는 그 간접적 느낌. 이 모습이 더 강한 메시지를 준다. 자연과 함께 하는 지역적 순수성. 그로 인해 격납고와 컨테이너가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묻어가려는 의지만큼이나 자연환경에 일단 밀렸다. 더불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키워드에서 너무 직관적이었고 작가들의 작품 역시 핵을 둘러싼 한 가지 테두리만을 둘러싼 느낌이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자연과 함께 하는 지역적 순수성. 그로 인해 격납고와 컨테이너가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비엔날레가 기간이 많이 남았지만 문화적 후유증은 전시회의 기쁨이나 의미보다 훨씬 큰 충격을 줄 듯싶다. 비엔날레가 제대로 전달해 주는 것이 없으니 후유증이라도 크면 의미가 있으려나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강태환의 숨을 쉬다
전종철의 경계선 사이에서
김해곤의 <한알>과 산방산

난 그저 노란 만장이 아니었기를 바랐다. 노란색이 주는 상징성이 제주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 영역에서 익히 만연되어 있기에 그냥 노란 리본이나 노란 만장이 아니기를 바랐다. 노란 리본을 부정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작가적 상상력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다른 상상의 표현이 이뤄지기를 희망한 것이었다. 그 희망이 아쉬움으로 변했다. 노란색 만장이 산방산과 옆에 있으면서 멋있지만 산방산을 대체할 수 없듯 비교가 아니라 독자적인 만장의 색이든 혹은 다른 모습이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비엔날레의 목표가 훈풍이 부는 가을 하늘에서 우울모드의 실현이 아니지 않은가. 


난 예술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더구나 설치예술에 대해서는 언급할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근데 나에게 자꾸 아쉬움을 이야기하게 만든다. 제주 비엔날레 투어리즘은 나에게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또 다른 회의론자나 불평분자 하나를 추가한 셈이다. 근데 그 인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사했다면 여러모로 혹은 계속해서 물어보고자 한다. 

"왜 투어리즘이지? 제주도가 관광의 섬이니까?"


제주를 모르는 이들의 기획은 아니었나?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자연의 위대함과 환경의 의미를 역으로 되새긴다.

밭과 산방산이 없었으면 지루했을 시간들이다.

<자유 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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