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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Oct 13. 2017

너구리 제주를 걷다1-1_7코스 이후의 메모

2014년 10월5일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청한 잠이 깼다.

새벽 5시도 안된 시간이다. 잠결에 온몸이 가려워 긁적이다 짜증이 났다.

모기새끼들 이런곳까지 와서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뜩 모기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꿈속에서 아니 잠결에서 들었다.

이것은 날씨때문이다. 습하거나 날이 쨍하거나 바람이 불거나 갑자기 17년전 버지니아에서 보낸 그 계절들이 생각났다.


그곳에서는 날씨의 변덕이 너무 심해 알러지가 생겼다. 아주 당연하게 한번씩은 겪고 나야 그 괴로움이 없어지곤 했다. 나도 알러지 약을 먹었던 기억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런 산장이나 펜션,혹은 게스트하우스들은 아침이 너무 일찍 시작된다는 점에서 불만이다.

한가함이나 여유로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더 느낄 여유도 없이 약천사로 돌아가 8코스를 시작했다. 물론 약간 먼저 앞당긴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코스중에 있으니 시작은 시작인 셈이다. 사찰안에 너무 일찍 들어섰는지 사람이 없다. 동남아 풍의 낯선 느낌의 절이지만 그곳도 이제는 관광지화된 느낌이다. 아직 절이 나에게는 따스함을 주지는 않는다.


오늘은 8코스를 걸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8코스 추전사에 넘어가 그대로 걸었다. 후회했다. 중문단지를 지나며 자괴감을 벗어날 수가 없다. 계속되는 호텔을 지나면서 내가 왜 이곳을 걷고 있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주의 또다른 면이 나를 슬프게 했다.더구나 길이 우회되면서 계속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하는 피곤함이 나를 괴롭힌다.


커다란 리조트를 짓는 공사로 해안은 계속해서 단절되 가고 있었다. 그꼴이 싫어 멀리 돌아 해변을 찾아간다.

덕분에 약간의 서귀포 일반마을의 느낌을 확인할 수 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찍고싶은 풍경이 적어졌다. 벌써부터 이러면 않되는데 싶으면서도 막상 풍경에 손이 가질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프기까지 했다. 벌써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가.

매너리즘으로 이야기 하자면 나에게 바다는 매일매일의 새로움이 아닌 매너리즘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오래도록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않된다는 생각이 든다. 심하면 우울증의 중요 요인이 될 수도 있겠다.


중문단지를 걸으며 느끼는 괴리감은 이곳이 내 설곳이 아니라는 점에서 짜증을 불러 일으킨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이정표를 찾으며 걷다보니  2시간을 이 부근에서 서성이다 놓쳤다.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싶다.

더이상 사람들은 올레길을 걷지 않는다. 더구나 8코스를 걷는 일은 드문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참을 걸으며 대평포구에 다달았다. 이곳이 제주시에서는 꽤나 멀리 떨어진 항구겠구나 싶었다. 아이러니하게 카타마라선이 2채나 정박해 있다. 항구도 그럴듯 하고 호주의 어느 항구를 보는 느낌이었다.


종착지인 장천항에 다달았을때 이곳은 제주 시내로 나가기 어려운 마을이면서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마을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제주에서는 왠만하면 한라산을 다 볼수 있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는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봉우리인지 모르지만 앞을 막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덕분에 셔틀버스도 타야했다. 멀리 떨어진 느낌, 제주만으로도 충분히 이질감을 줄 수 있다니 갑자니 이곳에서 번화가인 제주시로 가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놀랄일이다.버스만 타면 제주시내로 올 수 있는데...


올레는 적응의 길이다. 바다는 인내를 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일부사람들은 아직 올레를 자신의 체험으로 포트폴리오를 쌓고 싶어한다.


저녁시간 회사 대표의 한마디. 제주에 적응하기 위해 자연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람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바람직하다.

나도 알고있으나 그 사람을 나는 모른다. 아직은 풍경만이 나에게 정직하다. 무엇을 느끼듯 아직은 자연이 먼저 온다. 뒤이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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