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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12. 2017

지미봉을 넘어 종달바당에 닿는 길

2014년 12월 14일 

지친 걸음걸이와 허기를 달래며 지미봉을 향해 걸었다숨이 차는 게 죽을 듯싶다. 갑자기 전화가 온다아는 지인으로부터 제주 한 달 살기를 위해 방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봐다란다그러고마 했지만 내가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 약간은 답답하다내가 제주에 아는 지인이라고는 제대로 된 사람도 하나도 없다. 전화 덕에 잠시 쉰다. 이 봉우리를 안 올랐으면 어찌했을까 싶다.

지미봉을 오르는 중간에서 바라본 하도해수욕장 방면의 전경


성산항과 우도가 보인다.

막혔거나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다. 올라오길 너무 잘했다. 갑자기 이 기분으로 올레길을 걷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멋지고 멋진 풍광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성산을 떠나지 않는구나. 이 멋진 풍광을 두고 쉽사리 다른 곳에 가기 쉽지 않겠구나.

저 멀리 구름에 휩싸인 한라산이 이 느낌을 더 아스라한 마음으로 전해준다.


한쪽으로 보면 내가 걸었던 하도의 해변과 바다가 보이고 다른 쪽에는 성산봉과 우도가 눈앞에 다가온다. 우도를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섬이라는 점을 알겠는데 이렇게까지 가깝게 느껴지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성산을 떠나지 않는구나. 이 멋진 풍광을 두고 쉽사리 다른 곳에 가기 쉽지 않겠구나


일출봉 뒤편이 저리 생겼구나 싶어 더 좋은 느낌이다. 일출봉도 눈앞에 들어온다. 일출봉을 몇 번이고 갔었지만 그곳에 가는 것보다 여기서 보는 느낌이 더 좋은 것 같다.


이제야 배고프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리 힘든가 했더니 먹은 게 없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싸가지고 간 롤케이크를 꺼냈다. 올레를 걸으며 난 점심을 먹지 않기로 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평일에 너무 많은 술과 음식으로 배가 계속 나온다. 최소한의 음식만 먹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결심을 하지만 그래도 배가 고픈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허겁지검 빵을 먹으며 지미봉 봉우리에서 시간을 보낸다.

감탄이 가라앉지 않는다. 너무 좋다. 진짜 제주에 산다는 게 이처럼 좋은 것이겠구나 싶다.

한편으로 자세히 보니 참으로 척박한 땅이겠다 싶다. 여기도 저쪽 구좌의 연속이다. 아래쪽에서 종달리 항과 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종달리와 성산 주변을 이렇게 조망할 수 있으니 지미봉에 사람들이 모이는가 싶다.


처음에는 나밖에 없겠지 싶었는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봉우리를 오른다. 다음에 오면 꼭 일출봉보다 이곳에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종달리와 성산 주변을 이렇게 조망할 수 있으니 지미봉에 사람들이 모이는가 싶다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지미봉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목적지인 종달리다. 지미봉은 동네에 솟은 하나의 뒷산이다. 금방인 듯싶은 종달리의 종착점은 의외로 금세 닿지 않는다. 계속 걷는데 뉘엿뉘엿 해가 지려한다. 2주도 안 남은 동지가 오는 탓인지 금세 해질 폼을 잡고 있다.


제주는 해돋이도 유명하지만 해질 녘의 석양 하늘도 너무나 일품이다. 오늘처럼 하늘이 맑고 구름이 다양한 날은 일몰도 멋지리라. 산 너머로 해가 지니 하늘빛이 붉은빛을 내며 제대로 멋을 내고 있다. 그런 결심을 하지만 그래도 배가 고픈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허겁지검 빵을 먹으며 지미봉 봉우리에서 시간을 보낸다.



종착지에 다가오자 겨울새들이 바닷가에 단체로 몰려들어 먹이를 찾고 있다. 이럴 때 카메라가 제대로 된 게 있었으면 좋겠다. 진짜 내가 스스로에게 용서하지 못하는 현실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렇게 처절한 필요를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업보다.


아직 걸어보지 않은 코스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끝을 와보니 약간은 허탈하고 서운하다


종착지에 다 달았다. 표지판이 있다. 아... 시작은 1코스부터 하지 않았지만 이미 끝을 봐버렸으니 어쩌란 말이지...

아직 걸어보지 않은 코스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끝을 와보니 약간은 허탈하고 서운하다.

해가 져버렸다. 버스시간을 확인하며 정류장까지 열심히 걸었다. 족히 10분은 걸은 듯싶다. 그래도 돌아간다니 반갑다. 다만 역시 오늘도 일요일 저녁이라는 부담감은 어쩔 수가 없다.

일주 버스를 타고 좌석에 몸을 실었다. 졸리다. 이 버스가 이제는 익숙하다.

제주의 시외버스가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시외버스정류소도 익숙하다.

한주가 이렇게 갔고 올레길도 이렇게 끝에 와버렸다. 다시 돌아야겠다. 안 간 곳이 어딘지 찾아봐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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