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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14. 2017

2015년 제주에서의 첫 새해

2015년 1월 1일 이호태우의 겨울 바람

새해가 밝았다.

몇일간 머물던 가족이 서울로 올라갔다.

새로운 시간을 함께 나누어야 하지만 어쩔수 없는 현실이 가족을 다시 헤어지게 만들었다.

비행기를 태우고 되돌아서서 버스를 타는 나는 먹먹한 마음에 하늘이 다시 우울하게 보인다.

올해 1월의 첫날은 살아있는 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미안하고 답답하고 한스럽고 나의 모자람을 한껏 느낄 수 있던 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나마 다시 가족과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이조차 감사하지 못한다면 미련한 일이 될 것이다.


12월 31일 2014년의 마지막 날.

예상치 않은 성미산마을의 친한 가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의례적인 인사겠거니 했는데 제주에 내려왔단다. 시간이 되면 저녁 먹으로 오라고 한다. 순간 우리 가족도 제주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너무나 반가운 조우가 되었다.


저녁을 먹고 그들이 잡아놓은 숙소인 라헨느 골프텔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 제주의 날씨는 절물휴양림 밑부분에 있는 숙소에 까지 길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눈이 내린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심상치 않다.


11시가 넘어 전화를 했다. 더 이상 늦으면 여기서 내일 아침까지 못갈것이 뻔하다. 눈이 쌓이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신년을 불편하고 어정쩡하게 맞고 싶지는 않다. 다행히 택시가 왔다. 물론 비싼 가격이지만 지금은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내일 아침을 편안하게 맞이하고 싶을 뿐이다.

새해를 맞았다.  해돋이는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그래도 새해가 아닌가. 창을 열어 밖을 내다봤다. 눈발이 날린다. 제주시내에 이렇게 눈발이 날리기는 쉽지 않다. 다시 창을 열어 밖을 내다본다. 눈이 최소한 10cm이상이 쌓였다. 걱정이다. 나가서 도로를 살폈다. 역시 내리는 눈은 있지만 제주의 날씨는 눈이 쌓이게 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2시간 가량 남는다. 이호태우로 방향을 잡았다.아내는 이호태우를 좋아한다. 가깝기도 하지만 그 바다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느낌이다.


도착한 바다는 눈보라와 비바람이 섞여내리고 바로 눈이내리다 해가뜨고 바람이 불고 모든 가능한 날씨의 조합을 다 보여준다. 무엇보다 바람의 세기는 가늠할 수 없다. 이렇게까지 셀줄이야. 태풍이 올때면 정말 무서울 것 같다.아들 녀석도 이 바람과 파도의 느낌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살면서 이처럼 힘센 파도를 직접 보기가 쉬운일은 아니다.

녀석이 해변으로 걸어나간다. 자신이 봐도 그냥 가기에는 아쉬운 바다와 파도다. 나가서 한참을 호기를 부리더니 추운지 바로 움추러든다. 그래도 귀엽다. 동심이 살아있어 고맙다.


차를 몰고 해변 바로 옆에 가니 이곳은 파도는 가히 장관이다.

"이 파도를 카메라로 제대로 담을 수 없다는게 너무 아쉽다" 녀석의 입에서 아쉬운 탄성이 나온다. 데려오길 잘했다.


동영상이라도 기록해 놓고 싶었다.


멋진 파도와 바람의 조합, 거기에 눈보라까지...


커피숍에 앉아 있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다. 커피숍은 난림공사를 했는지 따뜻한 기운은 전혀 없고 냉기만 흐른다. 원래 카페는 이런날 따뜻해야 제격인데 여기는 난방을 전혀 고려치 않고 지은 건물인 듯 싶다.




집에 들러 아내와 아들을 공항에 내려주고 렌트카를 반납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아들과 아내를 보내고 뒤돌아 나오려니 마음이 먹먹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지...제주가 좋다는 막연한 기대는 그동안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어려웠던 것인지 가족을 멀리하면서까지 좋은 것은 아닌데 되돌아 오는 버스안에서 하늘의 우중충함이 마음까지 전해진다.


가슴이 블루하다.나만의 숙소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이 가방도 없고... 몇일이나마 널부러진 여행가방과 옷가지들로  정신산만하다고 느낀 그 기분이 사실은 기쁨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느끼고 만다.

벌써 가족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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