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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14. 2017

눈 쌓인 삼다수 숲길

2015년 1월 3일 사려니 뒤편의 비교되는 길

삼다수 숲길을 가고자 버스정류장에서 지인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데 하염없다. 버스가 도무지 올 생각을 않는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아직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추운 겨울날 대중교통 그중에서도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참으로 하염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그곳이 서울보다 따뜻한 제주라는 지역이라도...


그렇지 않아도 집에서 늦게 나와 도착하면 한참이나 늦을 시간인데 버스는 도대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쩐지 여기서 버스를 기다리자고 말한 내가 미안하고 무안해진다.


그런 날이 오늘이다. 30분을 넘게 기다린 덕에 버스가 왔다. 차라리 예전처럼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시외버스터미널을 목적지로 가서 그곳에서 버스를 탔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결국 도착하는 시간은 마찬가지로 오래 걸렸다.

숲길이 한결 더 좋다며 추천해준 장소인지라 오늘의 목적지는 오래전부터 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진 터였다.


내가 타야 하는 것은 시외버스 710,720번의 시외버스다. 하나는 성산항 다른 하나는 그 언저리 어디인지 몰라도 표선 쪽인지 싶다.


다행히 버스 2개 노선 모든 교래리를 지난다. 교래리는 제주 숲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사려니 숲길이 있고 그전에 한라생태숲이 먼저 나온다. 다음으로 절물 자연휴양림이 있다. 그 옆에 삼다수 숲길이 있다. 물론 그 뒤편에 물찻오름과 붉은오름도 자리해 있다. 숲길의 보고인 셈이다.


사람들이 잔뜩 내리는 사려니 숲길을 지나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여전히 사려니 숲길은 사람들이 많다. 사거리에서 내려준 버스 운전사는 마치 너희들 여기 내려서 무얼 하려고 이곳에서 하차해(?) 하는 분위기다. 그냥 관광객들 마냥 관광지를 가려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고 아니면 사려니 숲길이나 절물도 아닌 것이 어정쩡하다는 분위기다. 

주변에 보이는 목장이 시원하게 트인 풍경의 의미를 전해주지만 아무래도 이 때문에 사려니 숲길과는 비교가 안되도록 찾는 사람들이 적은 것이 아닐까 싶다

삼다수 숲길의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니 식당이 하나 있다. 일행이 배도 고프고 화장실도 가고프다고 말한다. 그 식당 주인의 손님 맞는 태도가 너무나 엉망이다 싶어 식사를 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허겁지겁 나왔다. 생긴 것은 물론 서비스 태도 역시 비호감이다. 이 시골에 저 정도의 불량한 태도를 가진 아주머니가 손님을 맞고 있다니 상상해보지 못한 상황이다. 어떤 손님도 두 번 다시 들르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들 것은 분명하다.


그 식당을 지나니 낯익은 장소다. 2달 전쯤 지인과 함께 찾아온 집이다. 그렇다. 은퇴하고 이곳에 집을 짓고 집들이를 한 언론사 선배의 집이다. 허걱... 그분 집이 여기였다니 그제야 이 위치의 의미를 알겠다.

오늘의 목적지는 삼다수 숲이다. 사려니 숲길이나 절물휴양림도 아니고 비자림도 아니다. 현지 인들이 삼다수 

숲길로 가는 길목에 집을 지었으니 장소로는 참으로 좋은 곳을 골랐다. 허탈한 웃음과 함께 그 양반이 10여 년이 넘기도 전에 사두었던 부동산 매입의 진가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참 좋은 곳에 집을 지었다. 4천 평을 사두었다고 하니 부럽기만 할 뿐이다.


숲길의 입구에 다다르기도 전에 임도가 난 때문인지 본격적인 숲길은 나오지 않고 포장도로만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주변에 보이는 목장이 시원하게 트인 풍경의 의미를 전해주지만 아무래도 이 때문에 사려니 숲길과는 비교가 안되도록 찾는 사람들이 적은 것이 아닐까 싶다. 본격적인 숲길 탐방 이전에 오랜 걸음을 걸어야 한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숲길 입구라는 팻말이 나오고 이정표가 나온다. 다 돌아 나오면 족히 3시간 30분은 걸릴 것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잠시 망설이다 오늘은 짧은 1코스를 선택하기로 했다. 같이 간 아주머니의 걸음이 오랜 산행을 하기에는 아직은 제주 적응이 힘든 모양이다. 하긴 원래부터 저질체력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기는 했지만 서로의 걸음걸이를 맞춰보는 것도 좋으리라. 나만의 걸음걸이가 타인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걱정이 생겼다. 제주시에서는 잘 못 느꼈지만 신년 들어 내린 눈이 이곳에서는 전혀 녹은 흔적이 없다. 작년 연말부터 새해 첫날 새벽까지 내린 눈이 이곳에서도 수북이 쌓여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갈길을 이끌어 주는 고마움이야 어쩌지 못하지만 새로움이 없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눈길을 걸었다. 눈 내린 지 며칠이 지난 때문인지 뽀드득 소리가 나기는 그런 느낌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나의 앞길을 이끌어간다. 내가 갈길을 이끌어 주는 고마움이야 어쩌지 못하지만 새로움이 없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숲길은 아기자기하게 이길 저길을 돌아가며 활엽수와 곳곳에 조릿대를 흩뿌려 놓았다.


길이 임도처럼 널따랗게 나아있지 않아 좋다. 아기자기한 산길을 걸을 수 있어 사려니숲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눈이 깊어 푹 빠지는 부분은 없어 다행이다. 한 시간여를 지나 구비구비 산길을 지나니 조용한 숲 속에 눈 내린 겨울길은 어느 누구라도 즐겨할 분위기다. 마냥 좋다고만 하기에는 괜히 미안한 느낌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내는 일을 하고 있을 터다.


아니다 다를까 길을 다 마치고 나올즘 전화가 왔다. 그렇게 걸음을 걷고 한참을 돌아 숲길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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