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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17. 2017

겨울날의 절물 휴양림

2015년 1월 10일 이름으로도 충분히 유명한 절물의 숲길

주말이 왔다. 토요일이다. 주말 아침에 푹 쉬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인지 오늘도 눈을 뜨니 10시가 넘었다.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뒤척이는데 생각이 안 난다. 혼자서 여기저기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면 멀리라도 가볼 테지만 저녁 7시까지는 공항에 가야 한다. 아들 녀석이 억지로 내려온다. 내려오기 싫은 녀석을 내려오게 하니 녀석도 싫을 것이다. 그래도 내려오게 해야 한다. 앞으로의 생활이 힘들 전망이다.


11시가 다돼서야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는 도토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시간도 늦고 했으니 절물휴양림에 가기로 합의했다. 역시 뚜벅이의 비애를 느끼며 도착하니 2시다. 게으름의 극치를 보인다.


해 질 녘에 시작하는 산책 아닌 산책이라니... 도착해보니 절물휴양림은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때문인지 산책길이 여러 가지 코스가 있다. 한참을 둘러보다 이곳에서 출발해 한라생태공원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쪽에서 온 아주머니의 말대로라면 2시간이면 된단다. 시간도 적당하고 하니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길들이 헷갈린다.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일단은 대충의 목적지를 찍어 그곳으로 향했다. 일차 목적지는 목공체험관. 10여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목적지에 다 달았다.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지 아무리 봐도 우리가 가려하는 방향과는 다른 느낌의 길들이 여기저기로 뻗어있다. 망설여진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도착해보니 절물휴양림은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때문인지 산책길이 여러 가지 코스가 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한라생태숲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모른단다. 우쒸...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어쩌지 다시 한 명이 내려온다.  마지막으로 물어보련다 맘먹는 순간. 아는 얼굴이다. 대학교 동창이자 제주에서 언론사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다. 친구는 이미 중무장을 하고 한참을 걸어서 하산길이다. 교차로가 있는 갈림길에서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던 차라 서로 당황스럽다. 그렇지만 산중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역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루트의 숲길과 등산을 전문적으로 다니던 친구인지라 나의 목적지를 쉽게 알려준다. 헷갈릴 뻔 한 길을 제대로 선택하게 되어 다행이다. 그때 한 가지 해프닝이 발생했다. 나에게 일행이 있다는 사실을 까먹었다. 나이 든 남자가 주말 오후 늦게 아줌마와 둘이서 산행을 하는 모습을 보면 당연히 부부관계라고 생각하게 된다.

친구도 반가운 마음으로 묻는다. 

산중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역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집사람이야?"

나야 공동육아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인지라 아주 당연스럽게

"아니... 누구냐 하면..."

순간 내가 대답을 하면서도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든다. 근데 뭐라고 설명해야 맞는 거지...

"와이프의 친한 친구야."

내가 대답을 해 놓고도 어색한 답변이 되었다. 아내는 분명 서울에 있는데 왜 아내의 친구가 제주에 내려와 있으며 그것도 주말 오후 늦게 함께 둘이서만 등산을 하는 것일까.

그 친구도 내 대답이 영 이해가 되지 않는지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며 더 이상 캐물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알면 돼...."

세상은 뜻밖의 상황이 늘 벌이지게 마련이다.


친구의 길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한라산 생태 숩을 향한 숲길 탐방을 시작한다. 이후로 사람 만날 일이 없다. 숫모르편백숲길이라는 발음도 쉽지않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이름으로 되어있는 숲길을 걸으며 순간순간 편백나무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향이 온몸을 감싸기를 기대하며 걷는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숲이 주는 고요함과 날씨의 우중충함이 한데 어우러져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천천히 나무 사이를 걷는 일뿐이다. 숲길을 걷다 필요한 경우 자그마한 오름에 오르고 다시 숲을 따라 길을 내려가기를 한 시간 여. 지나는 길이 양갈래로 나뉜다. 어딜 가나 목적지는 같을 테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생태숲에 가까워지자 억새풀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윽고 한라생태숲을 산책하는 일행들과 간간히 조우한다. 이제 곧 생태숲임을 알게 된다. 바닥이 우레탄으로 깔린 길이 나타나고 너른 호수가 나온다. 육지의 늦가을스러운 느낌의 호수 생태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흥이 나지 않는다. 시간과 날씨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숫모르편백숲길이라는 발음도 쉽지않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이름으로 되어있는 숲길을 걸으며 순간순간 편백나무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향이 온몸을 감싸기를 기대하며 걷는다


이윽고 바쁘게 생태숲 앞에 도착하고 나니 2시간여의 숲길 탐방 때문인지 온몸에 피곤함이 갑자기 밀려온다. 버스를 타면 곧바로 골아떨어질 기세다. 10여분을 기다리자 버스가 오는데 사려니숲길을 거쳐 오는 때문인가 앉을자리가 없다. 욕이 절로 나오는 날이다. 종점 몇 정거장 앞이 되서야 다행히 자리가 생긴다. 털썩 주저앉아 길지 않은 순간이나마 꿈을 꾸기 위해 급 피곤한 모드로 스스로를 조정한다. 졸음이 닥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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