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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18. 2017

다시찾은 성산 일출봉

2015년 1월 15일

토요일 저녁 아들을 제주로 내려오게 했다. 내려오기 싫다는 녀석에게 억지로 유배의 이름을 씌워가며 제주로 끌어내렸다. 녀석에게 자연을 보게 하고 도시의 찌든 생활을 멀리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도 사춘기 아이가 빠져버린 게임과의 관계를 멀리하게 하기 위함이다.


녀석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거부감이 더 심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여기서는 육지로 도망갈 수가 없다는 점이다. 비행기표가 없으니 도망가봐야 이곳 언저리고 더구나 낯선 땅이라는 점이 내가 유리하다.


어디를 갈까? 고민중이다. 제주의 상징중 하나인 일출봉을 가기로 했다. 한시간이 넘는 버스를 타고 걷고 하다보니 2시가 되어 버렸다. 제주는 어디를 가려해도 버스를 타고 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뚜벅이의 비애라고 할까.

가는내내 녀석이 힘들어 한다. 버스안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멀미가 나는 걸까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이미 체력이 쇠진해서 저질 체력을 갖고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성산일출봉에 대해서는 나름 감동하고 있는 분위기다. 아무리 관심은 없다해도 여전히 도시보다는 좋지 않을까.


나 역시 일출봉을 15년여전쯤 올라가보고는 와본적이 없다. 지난번 올레 1코스를 지날때 언저리를 지난 적은 있지만 정상에 올라와 본 경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어린시절 일출봉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감동이 없었다. 그저 특이하게 생긴 바위산에 오르는 것이 다인 순간들. 그 산에 올라가서 바다를 보면 그냥 쉬원하게 탁 트인 것 말고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인지 일출봉에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무엇이 나의 마음을 바꾸었을까. 이번에 오르고 나니 좋은 풍경과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왜 이전에는 이런 느낌이 없었을까. 내 아들도 이런 느낌이 있지는 않을꺼다. 단지 아빠가 끌고가니 끌려오고 그냥 탁 트인 기분만으로 편안했을 것이고 다시 걷다보니 힘들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 버스를 타기 전까지 급격히 떨어진 체력을 의식했던지 녀석은 내색하지는 않지만 힘들어 하는 느낌을 알 수 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녀석은 힘이 들었던 거다. 내보이기는 싫었지만 알수 있다. 장난치듯 앉고 누웠지만 힘들어 했다. 슬픈 일이다. 한창 젊은 나이에 몇시간도 걷지 않았다고 힘들어하는 젊은 청춘이라니...


돌아오는 버스 내내 그녀석은 내게 기대어 힘들어 하며 잠만 잤다. 안스럽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내 처지가 더욱 슬프다. 아들녀석 하나 제대로 이끌지 못하다니...


일출봉이 녀석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바다가 있고 기암도 있고 일제가 파놓은 동굴진지도 있고 찬찬히 둘러보니 볼거리가 꽤나 있어 보인다.

일출봉서 나오는 길 마을 안을 거쳐 나오다가 새끼 진도개 4마리가 달려온다. 케일밭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던 녀석들이 사람들이 나타나자 우르르 달려온다. 워낙에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들이 달려가서 이놈 저놈하고 반갑게 만져본다. 저런 녀석들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많으면 섭지코지까지 걸어서 가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난번에도 멈추었던 광치기 해변에서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래도 돌아오는 버스가 오래 걸리니 7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왔다. 깜깜하다. 몇일이 될 런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시간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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