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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14. 2017

처음으로_올레 1코스

2014년 말 올레길의 첫 시작을 밟다_2014년 12월 27일

올레길을 다 걸었던 기억기 꽤나 오래된 기분이다.


누군가처럼 한두 달을 집중적으로 걸었던 것도 아니고  게스트하우스에 묵어가며 연이어 걷던 길도 아니다.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걸었던 메인 코스는 다 걸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아직도 추자도 올레를 비롯해 몇몇 길은 아쉬움으로 남아있지만 오롯이 기억나는 길들을 다시 정리하며 분위기를 전하려 한다. 

<주의> 지루한 내용이므로 읽기를 포기해도 무방함...


2014년의 마지막 주말 한해를 마감하는 측면에서 무엇인가를 하기보다는 순서상 올레길을 다시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코스가 끝나는 광치기 해변에 차를 놓고 버스로 1코스가 시작되는 곳으로 갈 생각을 했다. 막상 광치기 해변에 도착해 보니 차를 세울 곳이 없다. 이런... 여기에 몇 시간씩이나 차를 세워놓고 나몰라라 할 만큼 뻔뻔함을 감수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출발점인 시흥초등학교를 향했다. 길가에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가 1코스 시작이구나. 그렇다면 바로 출발이다. 약간의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시작 자체가 늦었기 때문에 20-30분의 시간이 아쉽다.


길은 밭을 가로질러 말미오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도중에 안내소가 나타났지만 주말인지 꼭꼭 잠겨있다. 지난번 지질트레일 안내소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에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오는 시간일 텐데 그 시간에 안내소는 잠겨있고 평일에만 열어놓는다는 것은 조금은 수긍하기 어려운 조치라고 보인다.


애꿎은 정자가 쉼터로 변하고 사람들이 소원종이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갑자기 민족의 뿌리에 박혀버린 소원지 풍습이 결국 현대에서도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을 밝히고 소원지를 묶어놓고 마음속으로 기원하는 행위가 옛적의 성황당과 무엇이 다른가 싶다. 결국 무엇인가에 자신의 마음을 기대고 싶은 심리는 마찬가지다. 소원지를 묶어놓은 정자가 성황당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현대판 성황당이 올레길 곳곳, 그리고 전국 곳곳에 많이 있지 않은가.

<올레길 안내센터. 안타깝게 잠겨있다.>

첫 번째 올라선 말미오름이 주는 풍경은 아마 올레길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풍경임에 분명하다. 성산일출봉과 지미봉 그리고 우도와 바닷가가 한눈에 다 보이는 시원한 풍경. 멀리 섭지코지까지 잊지 않고 눈에 넣어주는 선물을 못 받을 리 없다. 뒤편을 돌아보니 엊그제 올라본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 그리고 용눈이 오름이 눈에 푹 파묻히듯 박힌다. 좋은 풍경이다.


트레킹 코스를 돌아 마을 묘지를 지나니 다시 오름이다. 알오름이란다. 오르는 언덕이 약간의 산책길스러운 느낌이지만 막상 올라가 보니 말미오름보다 더 높다. 이미 조금씩 길을 통해 표고를 높여놓았던 터다. 이곳도 비슷한 풍경이지만 그 멋스러움과 광활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자꾸자꾸 오를만한 풍광이다.

알오름이란다. 오르는 언덕이 약간의 산책길스러운 느낌이지만 막상 올라가 보니 말미오름보다 더 높다. 이미 조금씩 길을 통해 표고를 높여놓았던 터다

내려오는 길에 왠 녀석이 내 앞을 지나며 한참이나 제자리에 서서 나를 쳐다본다. 노루다. 나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판단하기 위함인지  조심조심 걸음을 걷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폴짝폴짝 제갈길로 가 버렸다. 이곳에 저런 녀석도 살고 있구나. 그 녀석에게 내가 불청객이다. 놀랠사람이 내가 아니라 저 녀석이 놀래야 정상인 것을 거꾸로 생각하고 말았다. 겁을 준 주체는 나인데 말이다.


종달리로 들어섰다. 알오름을 내려와 마을 안으로 들어오니 다시 종달리로 향하는 길이다. 시작점과 별 차이가 없는 곳에서 바다를 향하는 길이 나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산과 종달리에 자리를 잡은 터인지 새로운 집들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을 한복판에 나무가 서있는 게 세화와 같다. 나무와 그 옆에 놓여있는 한적한 느낌의 벤치는 앉아서 쉬어가기 좋은 마을의 여유다. 내친김에 자리에 앉았다. 신발을 고쳐 신고 배낭 안에서 주전부리 간식도 꺼내고 주변을 둘러본다. 어디선가 3층짜리 건물이 올라가는 소리가 뚝딱거리며 공사가 한창이다. 또 누군가가 숙소나 펜션을 짓고 있구나 싶다. 새로운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동쪽의 제주에 새로운 집을 올리고 있다. 

신발을 고쳐 신고 배낭 안에서 주전부리 간식도 꺼내고 주변을 둘러본다. 어디선가 3층짜리 건물이 올라가는 소리가 뚝딱거리며 공사가 한창이다

길은 바닷가로 다시 향한다. 그 사이에 놓인 물은 저수지인지 호수인지 겨울새들이 가득하다. 물오리도 있는 듯하고 자세히는 모르지만 많은 철새들이 움직이며 여유로이 물에 떠있는 모습은 겨울이라도 즐거운 상상을 가능케 한다.

다시 바다다. 길은 성산일출봉을 향해 나를 이끈다.


한치를 말리며 지나가는 운전자나 트레킹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가게가 순간 고민하게 만든다. 먹고 싶은 심정이야 굴뚝같지만 그냥 지나쳤다. 아직 갈길이 멀다. 다리를 건너고 오조 포구도 지나다 보니 성산일출봉이 눈앞에 확 다가온다. 저곳이 목표구나 싶을 만큼 모든 걸음걸이의 방향이 그곳을 향해 걷고 있는 것 같다. 일출봉 옆자리 바닷가에는 해녀 할머니들이 해삼 먹고 가라며 유혹한다. 나 혼자서 주저앉아 해삼을 먹고 갈 만큼 여유는 없다. 누군가와 같이 왔다면 모를까 그저 혼자서 처량하게 해삼을 먹으라니 사람을 잘못 고른 게다.

물오리도 있는 듯하고 자세히는 모르지만 많은 철새들이 움직이며 여유롭게 물에 떠있는 모습은 겨울이라도 즐거운 상상을 가능케 한다

관광지의 한 복판인 성산봉에는 인파가 득실거 린다. 살면서 서너 번쯤 와보는 것 같다. 그때마다 정상까지 힘들게 올랐고 그곳에서 바다를 보았다.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그다지 감동적인 기억이 없다. 그냥 관광지를 와보는 정도라고나 할까.


멀리서 보는 봉우리가 역시 낯설게 생긴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인지 이정표가 된다.

일출봉을 옆에 두고 걸으며 서서히 가까워지는 느낌이 새롭다. 예전에는 원래의 코스에서 벗어나 해삼이나 멍게를 먹으러 내려오는 나름의 일탈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정해진 등반코스가 아닌 올레길의 가로지르는 코스를 걷다 보니 일출봉이 새롭게 보인다.


'맞아, 이런 느낌이 있었네. 이런 느낌을 전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혼자 뇌까린다. 봉우리를 오르지 않아도 옆면을 다시 보니 이쁘다. 멋지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겠으나 왜 그때는 그것을 못 느꼈지?

올레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이점에서는 올레길이 고맙다. 옆에 파놓은 일제시대의 진지 동굴도 보인다. 그 옆의 바닷가도 새롭다. 이런 바닷가가 있었을 텐데 한 번도 진지하게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이제야 이 바다가 이 해안이 그리고 봉우리가 보인다. 다행이다.


중간에 산들거리는 억새풀도 보인다. 동굴 진지에 가고 싶지만 다음을 기약하겠다. 언젠가는 아들 녀석과 가보고 싶다. 그 녀석이 이런 곳을 좋아할 테니...  

봉우리를 오르지 않아도 옆면을 다시 보니 이쁘다. 멋지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겠으나 왜 그때는 그것을 못 느꼈지?

일출봉을 뒤로 한채 하염없이 해변을 걸었다. 이제 종착지인 광치기 해변이다.  해가 뉘엿뉘엿 제갈길을 가려한다. 동지가 지났지만 아직 해는 짧다. 점점 길어지겠지. 그 기대감에 하루의 조금씩 조금씩 낮을 즐길 수 있다. 밤의 여운을 조금씩 뒤로 물러나게 한다. 그래도 그 여운은 충분히 길다.


이 해변은 걷기 쉽지 않다. 푹푹 발이 빠진다. 힘이 들어간다. 한참을 걷다 다시 뭍으로 올랐다. 한결 걷기에 편리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내가 걷는 길이 한 줄로 패어있다. 왠지 이상하다. 길을 벗어나 보니 5000원을 받고 태워주는 말이 지나는 통로다. 휴 다행이다. 말과 부딪힐 뻔했다. 

4.3의 흔적이 여기에도 묻어있다. 아름다운 경치의 이면에 담긴 아픈 상처가 제주 곳곳에 묻어있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아무런 이유 없이 학살당했을 그 수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슬픔이 바다처럼 가득 차지 않았을까. 괜스레 지나치기 미안해진다.


잠시나마 가벼운 묵념이라도 하고 가고 싶어 졌다. 길을 걷다 뒤돌아와서 아주 짧은 순간 묵념을 하고 갈길을 재촉한다. 내 묵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보냐마는 사람이 산다는 게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이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아무런 이유 없이 학살당했을 그 수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슬픔이 바다처럼 가득 차지 않았을까. 괜스레 지나치기 미안해진다

4.3 학살 장소에 새겨진 르 클레지오의 글 중 가장 가슴에 파고드는 구절이 있다.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 감감하게 만드는 이유다... <중략>...

1948년 9월 25일(음력)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

<GEO> 2009년 3월호 게재된 "제주 기행문"중에서

J.MG.Le Clezio -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프랑스)

목적지에 다 달았다. 2코스를 알리는 표지석이 눈앞에 나타났다. 조만간 이곳에서부터 다시 걸음걸이가 시작될 것이다. 해가 휘리릭 지고 말았다. 1코스의 시작점으로 가야 한다. 애초에 이곳에 차를 대놓고 갈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주차할 만한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한 때문에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버스 정류장에 섰다. 바쁘게 하루를 정리하면서 주말 저녁이 오고 있다. 어느덧 제주의 오랜 무엇을 알게 된 착각을 하게 만든다.

웃음이 나온다.

<2014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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