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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14. 2017

아끈다랑쉬의 설레임

2014년 12월 25일 억새로 치유받는 마음의 둘레길 

아끈 다랑쉬

다랑쉬 오름 동남쪽에 위치한 해발 198m, 비고 58m인 분석구. 다랑쉬 오름과 나란히 닮은꼴을 하고 다랑쉬오름에 딸려있는 나지막하고 자그마한 오름이란 뜻에서 아끈다랑쉬(작은 다랑쉬)라 부른다. 정상에 올라서면 분화구 모양이 마치 원형 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작고 귀여운 오름이다.


아끈다랑쉬에 대한 현지 팻말의 설명이다.


이 설명이 필요 없었다. 나는 어떤 봉우리든 이렇게 낮게 평지와 바로 구분되며 혼자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를 본 적이 없다. 처음 봤을 때도 참으로 이상하고 묘한 느낌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유지되는 아주 보기 드문 경험을 전해준 곳이다.

하늘에서 내려보면 그 모습은 여러 가지 형상을 연상케 한다. 팻말의 설명대로 원형경기장을 연상케 할 수도 있다. 혹은 나처럼 계란 모양인데 노른자만 쏙 빠진 모양의 계란빵이랄까... 혹은 함몰 유두를 연상케 한달까. 그 느낌이야 여러 가지지만 묘한 감정은 처음부터 영 지워지지 않았다.


다랑쉬 오름을 내려와서 고민할 필요도 없이 옆에 나란히 누워있는 아끈다랑쉬로 향했다. 이 녀석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 위에 가볍게 산책이나 하고 오자는 편안함과 오만함으로 뚜벅거리며 걸었다. 억새풀 사이로 길이 나있고 한 바퀴를 돌면 되는 정체가 뻔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그 느낌이야 여러 가지지만 묘한 감정은 처음부터 영 지워지지 않았다

억새만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그곳을 오르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정상 아닌 정상을 오르려는 순간 내 앞에서 수문장이 서서 인사한다. 소나무 한그루가 떡하니 서 있다. 순간, 가슴이 멎었다. 이곳에 이 녀석 홀로 서있는 모습을 차마 상상하지 못했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의 축소판이다.

그렇다. 어릴 적 커다란 뒷동산의 나무 밑에서 무언가를 약속하던 그림. 나지막한 언덕 구릉에 덩그러니 나무 한그루가 서있는 풍경을 동화책이나 소설책에서 많이 보아왔고 나 역시 그런 이야기를 내 아들에게 수도 없이 해주던 기억이 난다. 막상 그 녀석은 그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매일 저녁 아들에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야기를 해주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니까.

나지막한 언덕 구릉에 덩그러니 나무 한그루가 서있는 풍경을 동화책이나 소설책에서 많이 보아왔고 나 역시 그런 이야기를 내 아들에게 수도 없이 해주던 기억이 난다

그런 느낌의 축소판처럼 억새만의 숲 속에 덩그러니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분다. 이놈의 제주는 어딘지 모르게 늘 바람이 분다. 놀라운 것은 이곳의 바람은 싫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 바람에 꺾이는 억새를 보며 나무를 중심으로 정상에서 순환선 한 바퀴를 돌아볼 순간이었다.


오름 정상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어이쿠나. 세상에.


엄청난 풍경이 있어서가 아니다. 히말라야 같은 화려함도 아니고 수많은 악산들처럼 바위들의 온갖 기묘함을 자랑하는 모습도 아니다. 나는 온 봉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억새만으로 이루어진 것을 이렇게 제대로 본적이 한 번도 없다. 10분이면 다 돌 수 있는 봉우리지만 그 아담한 모습에 초입의 나무 한그루를 제외하고는 전부 억새뿐이다. 나는 연신 탄성을 올렸다. 내 생애 50에 이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 억새 너머로 제주의 바다가 아스라이 배경 역할을 하고 있었고 한쪽은 멀리서 풍력발전의 바람개비들이 보이고 한쪽은 성산봉과 그 바다의 광경이 억새 너머로 연이어 펼쳐져 있다.

그저 좋았다. 내가 여행객보다는 이 오름의 일부분이 된 듯하다. 그렇게 억새가 바람에 속삭이는 소리를 여전히 들었다. 바람은 다랑쉬 정상만큼 무섭고 매섭지 않았지만 여전히 춥고 차가운 바람이다. 억새는 이에 아랑곳 않고 자신의 처신을 위해 연신 바람에 화답하고 있었다. 몸을 구부린 채 가끔 흔들어주고,,,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나에게 이 바람은 처음으로 시련이 아니라 축복으로 여겨졌다. 순간 내 눈에 태양이 들어왔다. 억새풀 사이로 갈라진 길들이 보이고 뒤편에 해가 뉘엿거리고 있다.  이미 4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동지가 지난 지가 3일밖에 안됐으니 해는 어지간히 일찍 제 갈길로 바삐 움직이고 있으리라. 벌써 산너머로 동선을 잡고 바람과 함께 억새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하루가 가고 있다. 너의 길을 가거라.'

억새는 이에 아랑곳 않고 자신의 처신을 위해 연신 바람에 화답하고 있었다. 몸을 구부린 채 가끔 흔들어주고,,,


그렇게 낙조 아닌 낙조를 감상하기를 10여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는 아주 작은 봉우리를 돌았고 이윽고 처음의 그 소나무 자리에 왔다. '다 같이 돌자 동네한바퀴'려나 아니면 어린 시절의 약속을 이야기하듯 나에게 이정표를 주려는 것일까.


못내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한 채 멀리 보이는 차를 향해 오름을 내려가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하기 싫다. 그래도 해는 지고 배도 고프고 춥다. 기쁘다. 제주 와서 느끼는 여러 가지 기쁨 중 새로운 흥분을 느끼게 해준다. 고마운 순간들을 잊고 싶지 않다.  나는 빠지지 않고 아끈다랑쉬를 세 손가락 안에 뽑을 것이다. 멋진 풍광과 달리 억새만의 그 단일함이 주는 감동을 어찌 표현할까 나에게는 그럴만한 재주가 없구나. 안타깝다. 그래도 노력해봐야지.

이미 5시가 훌쩍 넘어 20분 가까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다랑쉬에 올랐다 내려온 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저 위에서 시간이 어찌 지났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그저 감동하고 감사하고 마음의 설렘을 담고 왔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3주 정도 되려나 제주 동쪽 올레길을 걷는 동안 내내 춥고 비가 오고 바람이 거셌다. 그래서인지 김녕부터 월정리 세화 그리고 종달리까지 고난의 행군을 연상시키는 억울함 또는 아쉬움이 있었다. 

저 위에서 시간이 어찌 지났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그저 감동하고 감사하고 마음의 설렘을 담고 왔다

그 내가 걷던 해안도로를 차를 몰고 가보고 싶었다. 세화 해변으로 향했다. 해녀박물관에서 오일장 해변을 지나 정처 없이 해안도로를 달렸다. 해는 이미 어스름을 지난 어둠으로 난 길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목표지인 월정리 해안에 도착하기 전까지 약간의 빛은 남아있다. 다행이다.


집에 도착하기 전 마트에 들러 한 보따리 장을 보니 8시가 넘었다. 아직도 가시지 않는 아끈다랑쉬의 흥분을 가슴과 머리에 담은 채 크리스마스의 따스함을 간직할 수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게 무슨 의미이든 보람된 하루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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