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 Nov 14. 2017

첫 번째 다랑쉬오름

201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저녁의 동쪽 제주를 겨누다

크리스마스날이다. 이브날의 밍밍한 저녁을 보내고 빈속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허탈한 행사. 왜 허탈하였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모든 행사를 마쳤는데 기분이 흥분되거나 기쁘지 않고 편안하지 않을까. 내린 결론은 하나다. 진정함이 부족해서였다. 진실됨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아침이 밝았다. 일어나기 싫었다. 업무도 있다. 빨리 끝내고 움직이기로 했다. 벌써 2시다. 겨우 끝났다. 이제는 외출이다. 크리스마스 해가 벌써 넘어가려 하고 있다.


방향을 오름으로 잡았다. 오늘은 어디선가 들어본 다랑쉬오름이다. 성산봉 근처에 있다는 것을 들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하니 3시다. 물 하나 챙기고 천천히 오른다. 앞부분에 있는 아끈다랑쉬오름이 묘하게 보인다. 마치 달걀을 깨서 풀어놓은 것 같다.

일단은 다랑쉬로 오른다. 다랑쉬가 어찌 생겼는지보다는 아끈다랑쉬가 먼저 보인다. 저 녀석은 나중에 오를 거다. 오르면 오를수록 경치가 감탄하게 만든다.  멀리 성산봉이 보인다. 봉우리로서는 참 낯선 모습이다. 오른쪽으로 용눈이오름도 보이고 왼편 뒤쪽으로 우도가 보인다. 오를수록 바람이 거세다. 풍광도 좋아지고 있다. 길이 거의 직선으로 위로 향하고 있다. 조금씩 돌다 보면 안보이던 경치가 다시 보인다.



제주의 오름은 특이한 구석이 있다. 주변의 풍광을 한눈에 다 볼 수 있다. 육지의 다른 산들과 다른 풍경을 준다. 그냥 산과 다르다. 산은 주변의 언덕을 통해 오른다. 천천히 경사를 오르다. 험한 곳과 완만한 곳이 겹치면서 정상을 향한다. 강원도의 산들이 그렇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산과 산이 겹쳐 있으니 주변에는 산이 보인다. 굽이굽이를 넘어 저 아래의 마을이 보이는 것이 정상적이거나 아주 자연스럽다. 제주의 오름에서 보는 풍경은 그것과 사뭇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국적인 느낌을 갖거나 낯선 풍경을 경험하게 된다.  

제주의 오름은 특이한 구석이 있다. 주변의 풍광을 한눈에 다 볼 수 있다

다랑쉬는 아끈다랑쉬와 나란히 누워있다. 마치 형 동생이거나 어미 자식 같은 느낌이다. 정상에 오르면 오를수록 바람이 거세진다.


봉우리의 경계에 올랐다. 오른쪽은 정상이고 왼쪽은 비교적 낮게 보인다. 어느 쪽을 먼저 볼까 하다 오른쪽을 골랐다. 정상이 우선이다. 가운데의 분화구는 역시 화산 봉우리인 관계로 움푹 파여 있다. 주변 경계를 따라 걷다 보니 그동안 걸었던 제주의 동부지역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멀리 김녕에서부터 앞쪽에 월정리 해안도 구분이 가능하다. 세화 해변과 바다를 향해 꺾인 곳을 따라가다 보니 지미봉까지 구분이 가능하다. 그리고는 생뚱맞은 성산봉과 우도가 들어온다.

3개월 동안의 제주에서 가장 호사한 것은 역시 눈이다. 마음으로 전해주는 풍경의 감동이 제주를 기억나게 해주고 있다

파노라마가 제격인 곳이다. 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제주에 오면 그 무엇보다 눈이 즐겁다. 조금만 나서면 바다와 너른 밭과 겹겹이 쌓여있거나 생뚱맞게 혼자 툭 튀어 오른 오름이 전해주는 풍광은 그 무엇보다 눈을 즐겁게 해준다. 3개월 동안의 제주에서 가장 호사한 것은 역시 눈이다. 마음으로 전해주는 풍경의 감동이 제주를 기억나게 해주고 있다. 그다음은 역시 입이다. 신선함으로 대변되는 해산물과 어류의 맛은 입의 즐거움을 준다.

무엇보다 마음의 즐거움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내가 갇혀 있다거나 한정되어 있음에도 역시 편안함을 전해주는 이 느낌은 제주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말이다.


다랑쉬 오름의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계속해서 찍는다고 뭐 그리 달라질 것도 없는데 뭐가 그리 아쉬운지 계속 카메라를 누른다. 핸드폰이 고생한다. 추운 바람에 흔들림 없이 이쁜 사진을 만들어 내야만 하니... 여러 번 찍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이 웃음이 나온다. 바람은 너무 거세고 추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태백산이나 기타 겨울산의 추위는 말 그대로 온도가 너무 낮아 닥치는 한기의 추위 그대로이다.


그런데 이곳의 추위는 아주 매섭지도 않지만 그냥 차가운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부니 몸이 견딜 재간이 없다. 바람의 추위는 육지의 한 겨울 추위 하고는 다르다. 바람이 싫기도 하지만 무섭기조차 하다. 매서운 추위와 달리 싸늘함의 연타가 쉬지 않고 불어댄다. 몸이 버티기가 힘들다.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이다.

계속해서 찍는다고 뭐 그리 달라질 것도 없는데 뭐가 그리 아쉬운지 계속 카메라를 누른다. 핸드폰이 고생한다

별로 높지도 않은 이곳에 올라와 주위의 풍광을 감상하다가 내려오니 한 시간이 지났다. 벌써 해가 뉘웃거리며 제 갈길을 재촉하는 기분이 든다. 저 아래 동생 봉우리가 빨리 나를 찾아줘라며 계속 부르고 있다. 내려갈 시간이다. 바람도 약간은 잦아들 거라 생각하니 발길을 재촉하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사방에 남겨둔 이 시원한 경치를 남겨두고 가기가 이렇게 아쉬울까 싶다. 지도에서는 여기가 바닷가와 이렇게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 못했는데 멀리서 보니 그동안 내가 걸었던 곳이 다 지척이다. 제주의 동북사면을 다 본 느낌이다.


따뜻한 날에 다시 와야겠다. 추위로 쫓기듯 지나지 않고 여유로 시간을 갖고 걷고 싶다. 옆으로 누우며 바람을 이야기하는 억새와 차근히 하루를 논하고 싶다. 아래로 내려오며 아끈다랑쉬로 향했다. 저기는 낮으막한 언덕이라는 느낌이 든다. 저곳의 정체는 뭐지?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모슬포에서 곶자왈을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