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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22. 2017

한라산 영실과 어리목

2015년 4월 28일

제주를 방문한 아내의 제안이 한라산을 가보고자 하는 일이다. 아내가 지인에게 얻어 들은 루트는 영실을 통해 가면 한라산이 보기 좋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갈길과 버스시간표를 확인한다.


740번을 타라 한다. 시간 터울이 1시간 이상이다. 다행히 10시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가 있다. 이걸 놓치면 안 된다.


아침에 이런저런 짐을 싸고 김밥으로 점심을 준비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20분이 남았다. 국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버스에 올랐다. 이런 오늘따라 버스의 카드단말기가 고장이 났다. 모든 승객이 현금으로 버스비를 내야 한다. 예상치 않던 일이다. 다행히 천 원짜리 몇 장이 주머니에 있다. 휴~

아침에 깼을 때부터 날씨가 맑다. 창을 열어보고 베란다로 나섰다. 하늘이 맑은 정도를 구분하는 기준은 하나다. 뒤돌아봐서 한라산 백록담이 보이느냐다. 오늘따라 백록담 정상이 맑게 보인다. 제주에 내려와서 두 번째로 느끼는 맑은 한라산이다. 


한여름 같은 뙤약볕이다. 다행히 산에는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그럼에도 얼굴은 많이 탈것 같다. 버스에서 내렸다. 산속 길을 한참 지나 서귀포 쪽으로 기우나 싶더니 영실입구에 도착했다. 내가 알기로는 여기서부터 등산로 입구까지 한참을 또 가야 한다. 역시 내리자마자 셔틀용 택시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냥 걷기로 했다. 아내는 자꾸 택시를 타자고 하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걷기 위해 왔는데 여기서 택시를 타고 싶지 않다.

오늘따라 백록담 정상이 맑게 보인다. 제주에 내려와서 두 번째로 느끼는 맑은 한라산이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누군가 내 앞을 막는다. 버스에서 봤던 커다란 덩치의 외국인이다. 외모상으로도 독일인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나에게 길을 묻는다. 그들은 윗세오름까지 가서 어리목 산장으로 내려오는 길을 보여주며 그곳에 가겠노라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길이니 이대로 가면 된다고 알려줬다. 나 역시 그곳으로 간다 하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행이 됐다.

뒤에서 젊은 청년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독일인에게 영어 몇 마디 하는 것을 들었는데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온다. 버스시간표를 두고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이 친구는 목표가 한라산 등반이 아니다.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 묻자 테디베어 박물관을 보고 싶단다. 중문 가는 길과 그곳에 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시간이 남으니 이곳을 둘러보라고 일러줬다.


젊은 청년이 영어를 잘한다. 예전의 경험상 사회가 발전하면 사람들도 업그레이드된다. 아내와 나의 판단은 마치 홍콩 피플과 같이 생겨 홍콩인인 줄 알았다. 중국 출신이란다. 그것도 상해나 베이징이 아닌 난징에서 왔다고 했다. 중국이 발전하긴 했다.


하늘은 그지없이 맑고 산행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날씨가 좋고 경치가 좋기 때문이다. 부담 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등반 시작점에서 독일인이 다시 한번 길을 묻는다. 40여분을 걸어왔는데 그럼 여기서 어디로 해야 어리목에 내려가냐는 것이다. 아뿔싸 이 사람들은 여기가 등산로의 끝이고 옆으로 빠지는 길이 있는 줄 알고 있다. 자신들은 등산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중국 출신이란다. 그것도 상해나 베이징이 아닌 난징에서 왔다고 했다. 중국이 발전하긴 했다

"그렇다면 너는 여기서 뒤돌아서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네가 보여준 지도는 등산로다. 총 4시간 이상이 걸린다"라고 하자 그제야 알아듣는다. 결심을 했는지 트레킹길을 향해 한라산을 향한다. 우리와 함께 길을 나섰다. 졸지에 일행이 되어 버렸다.


영실로 올라가는 한라산은 날씨도 좋은 덕인지 상쾌하기 그지없다. 조금을 오르니 바로 숲을 지나고 나무로 만든 계단이 나타나 바위 언덕을 오른다. 뒤편으로 서귀포의 바닷가와 멀리 산방산 그리고 앞에는 병풍바위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좋은 경치로 인해 힘들 겨를이 없다. 힘들면 뒤를 돌아 하늘을 보고 중산간과 오름을 바라보면 눈이 즐거워진다. 그러기를 계속해서 걸었다. 바로 코앞처럼 느껴지는 정상스러운 바위의 꼭대기는 쉽게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길을 연이어 이어 붙였다. 뛰듯 걷다를 반복하니 관목과 고목들이 잔뜩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가까워졌구나. 약간의 수풀을 지나고 보니 한라산 주봉인 백록담이 불쑥 솟아오른 게 눈앞에 나타난다. 그 앞에까지는 탁 트인 전경과 뒤로 보이는 남벽과 한라산 백록담의 헝클어진 머릿결을 한 듯한 강한 인상이 눈에 들어온다.


뷰포인트인 전망대에 오르니 저 멀리 어리목을 향해 내려가는 길과 뒤편에 있을 윗세오름의 갈림길이 있을 장소가 보인다. 이제 다 왔다. 독일인 부부에게 어리목길과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고는 길을 재촉했다. 중간에 산꼭대기의 샘물을 만났다. 사람들은 신이 나서 물을 마시는데 독일인 부부는 무언가 불안한 듯 물에 입을 대지 않는다. 이 물을 어떻게 믿느냐는 눈치다. 믿기 싫으면 말든가. 북유럽과 독일인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다른 나라의 인프라와 자연에 대해 경외심보다는 불신을 늘 먼저 앞세우는 느낌이다.  선진국이 된 사람들이 후진국의 모습을 경계를 하면서 보는 느낌과 거의 유사하다.

그 앞에까지는 탁 트인 전경과 뒤로 보이는 남벽과 한라산 백록담의 헝클어진 머릿결을 한 듯한 강한 인상이 눈에 들어온다


암튼 윗세오름에서 독일인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몇 가지 주변 상황을 알려주고는 편안하게 앉아 점심을 먹는다. 볕이 뜨겁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많이 탓을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어리목을 향해 걷기로 했다. 그 흔한 인증숏을 남기고 구불대는 길을 바라보며 한적함과 편안함으로 걷기 시작한다.

한참을 걷다가 갑자기 내려가는 차 시간이 궁금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언제 버스가 있지... 지금부터 2시간 후에 버스기 있다. 아님 마지막으로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럴 수는 없다. 속도를 내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하는 순간 넓은 오름의 언덕 같은 느낌의 길은 사라지고 가파른 돌길만 나온다. 내려가는 코스로 숲 속에 쌓여 주변 경치도 보이지 않는다. 흙길이 아닌 관계로 발바닥이 아프고 계속해서 내려가다 보면 발이 풀린다. 결국 아내가 고통을 호소하며 천천히 걷기를 요구하지만 버스시간이 만만치가 않다.


아주아주 지루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면서 아내와 합의한 것이 이 길은 기억 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올라오기도 무지 지루했을 것이며 내려가는 것도 다시는 이 길을 선택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어리목에 대한 추억 아닌 안 좋은 기억을 남기며 입구에 도착하니 버스시간까지 10분이 남았다. 물었다. 버스정류장까지 얼마나 남았나요. 10분이 걸린단다. 과연 10분 만에 갈 수 있을까. 발길을 재촉하다 와이프가 손을 들었다. 히치하이킹을 하자. 지나는 차량에 손을 들어 버스정류장까지만 태워달라고 하니 갑자기 차 한 대가 멎는다. 휴... 다행이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순간인지... 한참을 차를 타고 내려와 보니 결코 10분 만에 도착할 수 없는 거리임을 알았다. 무슨 10분의 거리가 이리도 멀단 말인가...


아주아주 지루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면서 아내와 합의한 것이 이 길은 기억 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문제는 이 운전수가 시내 쪽으로 가기 위해 우회전을 했다. 아마도 정류소는 왼쪽에 있는 모양인데. 정류장 표시가 보이질 않는다. 어디인가 한참을 오다가 결국 중간의 어중간한 자리에서 내렸다. 버스시간표를 보니 10분 가까이 기다리면 우리가 타기로 한 버스가 도착 예정이다. 정류소에 서서 10분을 기다리니 등산객들을 가득 채운 버스가 도착한다.


웬걸 30분 이상 우리보다 먼저 내려간 독일인 부부가 맨 뒤편에 앉아서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하물며 옆자리까지 비켜준다. 내가 그 옆에 앉았다. 얼마나 기다렸냐고 묻자 30분을 정류장에서 기다렸단다. 이를 기회로 몇 가지 사실을 물어본다. 아들이 서울에서 공부 중이며 자신들은 2주간의 휴가를 갖고 서울과 제주 그리고 부산을 들렀다가 다시 서울에서 프랑크프루트행 비행기를 탄단다. 한참 휴가 중인 상황이다. 사는 곳이 슈투트가르트라 했다. 도움이 될런지는 모르겠으나 외국 관광객에 대한 호의 정도로 생각하고 몇 가지 덕담을 나누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착하고 서로 인사를 하니 이미 저녁시간이다. 긴 하루를 보냈지만 좋은 날씨 덕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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