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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24. 2017

오랜만에 걷는 올레길 15코스

2015년 5월 1일

날씨가 좋은 듯해 작심하고 걷기로 했다. 애초에 14코스를 생각하고 한림항까지 차를 몰고 갔다. 차를 세우고 저지마을까지 가서 거기서 목적지인 한림항에 닿으면 될 듯한 생각에 차를 세우고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버스도착시간을 살펴보니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방향을 급선회 출발점인 15코스를 향했다. 목적지는 고내포구다. 원래 이 계획은 다음 주 토요일이었는데 한주일 앞당겨졌다.


저지리는 이래저래 찾아가기 힘든 곳이다. 교통이 안 좋다. 암튼 다음 주나 다음 기회에...

그렇게 한림항을 걸었다. 한림항 앞에 비양도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낯설기도 하고 제주에서 본 항구가 이토록 산업항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는 없어서인지 꽤나 큰 포구에 온 느낌이다. 수산업 물류기지도 이곳에 세워진다 하니 이유가 있어 보인다.


제주의 어촌 포구와 같은 느낌이 없어지고 무언가 발전을 위해 몸부림치는 항구의 모습. 한림항의 첫인상이다. 그 사이에 비집고 놓여있는 비양도를 위한 도항장은 아무리 봐도 초라하기 그지없고 참 어이없이 볼품없다.


웬만하면 제대로 된 선착장 하나 마련해 주면 어디 덧나나 싶다.

제주의 어촌 포구와 같은 느낌이 없어지고 무언가 발전을 위해 몸부림치는 항구의 모습. 한림항의 첫인상이다

항구를 따라 한참을 걸으니 어느새  제주의 바다와 바다 색깔 그리고 할망과 하르방들이 보인다. 이제는 이 장면이 더 익숙하다. 도심의 풍경이 낯설어졌다. 사람은 이런 점에서 참으로 간사하다. 어느새 제주스러움을 찾고 있으니...


할머니 한분이 무언가를 도로변에 잔뜩 널고 있다. 얼른 보니 톳같아 보이기는 해도 자신이 없다.

"이게 뭐예요?"

"우뭇가시"

"아,,, 이게 우뭇가사리예요?"

할머니가 낯설게 나를 본다. 우뭇가시지 왜 저놈은 우뭇가사리라고 말하나 싶은 표정이다. 이래나 저래나 내가 생각하는 우뭇가사리가 맞으면 된다.

길은 바닷길을 벗어나 동네로 들어가고 마을과 중산간 쪽으로 방향을 튼다. 곳곳에 널려있는 커다란 팽나무가 마음에 든다. 제주에 와서 가장 마음에 두는 것은 팽나무다. 그런데 팽나무도 잎이 달리니 별로다. 잎이 떨어진 팽나무의 괴기스러움과 이야기가 있을법한 그 느낌이 훨씬 강렬하다.


도로변을 걷는다. 이길 저길 특별한 기억 없이 마을과 마을, 밭과 밭 사이를 걷고 있다. 도대체 방향감각이 없다. 분명 곽지와 애월 납읍 그리고 귀덕을 왔다 갔다 하며 걷는 느낌인데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에 정처 없기만 하다.


쉴만한 곳이 하나 나온다. 마을 어귀에 있는 나무 한그루가 그늘을 만들어 놓고 있다. 한쌍의 부부가 그곳에서 쉬고 있다. 내가 다가가니 먼저 인사를 한다. 혹시나 그냥 지나치려던 내 계획에 이상이 생겼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그렇지 않아도 두 분 보고 여기서 쉬어가야지 했습니다"

"여기가 쉬기에 좋은 장소네요. 여기가 올레꾼들 쉬는 장소인가 봐요. 담배꽁초도 있는 게"

분명 곽지와 애월 납읍 그리고 귀덕을 왔다 갔다 하며 걷는 느낌인데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에 정처 없기만 하다

여행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서로에게 '나는 당신에게 해를 끼칠 의사가 조금도 없으니 당신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요즘처럼 무서운 세상에는 아주 적극적인 호의의 메시지이자 평화의 메시지인 셈이다. 그들은 먼저 떠났고 나중에 버스를 탈 때까지 그들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것이 지금도 의아하다. 부부가 한참을 걸어도 나처럼 쉬지 않는 사람에게는 따라잡힐만도 한데 내 앞에 걸어가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들은 어쩜 전문적인 등산객이거나 여행이 달코달은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우걱우걱. 아침에 사 온 김밥을 꺼내 물과 함께 먹는다. 올레길을 걸으며 오랜만에 먹어보는 점심이다.주말에 길을 걸으며 거의 점심을 먹지 않는다. 한참을 걸으며 에너지를 소비하고 초코바나 약간의 과자류만, 혹은 물과 음료만으로 버티고 저녁을 먹으면 꽤 몸의 에너지를 태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기는 한데 오늘은 왠지 점심을 싸가지고 오고 싶어 졌다.


이 마을 저 마을 어느새 특색이랄 것도 없는 마을과 밭들을 지나게 된다. 자세히 생각해보려 해보 별다른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러던 차에 지나는 마을의 이름을 보니 귀덕이란다. 음 이곳이 귀덕이구나 싶게 지나간 마을도 있고 버스 팻말이 있어 아니 이곳에도 버스가 들어오나 싶은 장소도 보인다. 사실 알고 보면 큰 순환도로나 지방도와 가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방향감각이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올레길을 꼬불꼬불하게 만들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영생이물통의 모습

한참을 걷노라니 마을 언저리에 현대식 전원주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 참 깊은 곳에 이런 집을 짓고 잘도 살고 있네 싶다. 그런 집들이 평평하고 안정적인 마을에 계속된다. 갑자기 이 동네에 급 관심이 생긴다. 이곳의 정체가 궁금하다.납읍이다. 그 외진 느낌의 납읍이 이렇게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니. 놀랄 일이다. 애월의 한 자락을 차지할 만하다.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납읍에 위치한 난대림 연구림이 있는 금산공원, 납읍초등학교와 붙어있는그곳을 한 바퀴 돌면서 납음과 숲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온화한 마을의 느낌과 안정되고 결코 외지거나 아주 개발에 찌든 느낌도 아닌 어쩌면 일본의 농촌스러운 느낌을 전해주는 분위기였다

혹시라도 내가 제주에서 집을 짓고 살아야 한다면 이곳은 아주 우선적인 후보지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3군데를 선택했다. 와흘리와 위미리 그리고 납읍리를 나의 제주살이 후보지로 결정하기로 했다.


온화한 마을의 느낌과 안정되고 결코 외지거나 아주 개발에 찌든 느낌도 아닌 어쩌면 일본의 농촌스러운 느낌을 전해주는 분위기였다. 내가 생각하는 귀촌에 잘 어울리는 마을의 모습인지라 편안함으로 나무 그늘에 앉아 신발을 벗고 물을 마시며 한참동안 마을을 느끼며 앉아있었다.

그곳을 바로 나서면 큰 도로가 있음에도 말이다.

납읍 포제를 지내는 곳

굽이굽이 돌다 보니 길은 과오름과 고내봉을 향해 가도록 지그재그로 길을 비틀고는 오늘의 올레길 길이를 맞추려고 온통 뱀처럼 길을 꼬아버렸다. 몸이 지칠 때쯤 되닌 이런 길이 짜증스럽게 느껴진다. 더구나 그 꼬아놓은 길들의 대부분이 전에 같으면 숲길이었겠지만 이제는 베어진 소나무 사이를 걸어야만 해서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숲 인지도 모르는 황량함만이 남아있는 길들이라 슬픔을 느끼게 해준다. 올레길에는 재선충병이 할퀴고 간 밑동만 남은 앙상한 소나무 흔적만이 흉물스럽게 뒹굴고 있을 뿐이다.


고내봉을 돌아 하르방 길을 지나 내려 오니 저 멀리 고내포구로 향하는 큰 도로가 보인다. 이곳은 이미 나도 차를 타고 다녀보기도 하고 여러 차례 지난 길들이라 익숙해져 있다. 그 나무들 사이로 알록달록한 집이 아닌 건물이 보인다. 익숙하다.


아이코... 그 유명한 더럭분교다. 그 분교가 이곳에 있구나 이 산길이 그 분교의 뒤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나니 눈 가리고 동네 뒷산을 걷는 기분이다.


바쁘게 재촉한 고내포구는 여러 가지 해초가 널브러져 있는 때문인지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무인카페에 잠시 거하고 앉았다가는 버스시간을 고려해 한림항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만났던 부부를 이곳에서 만났다. 저들은 어디서 있다 왔을까. 왜 한 번도 보지 못했을까. 여전히 미스터리다. 아무리 길어야 이 버스를 기다린다는 것은 나보다 10분 이상 빨리 오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더구나 목적지에 다달아서 다른 곳에서 쉬고 있었다면 그들은 무척이나 빠른 걸음이 아니면 안 되는 터였다.

이 산길이 그 분교의 뒤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나니 눈 가리고 동네 뒷산을 걷는 기분이다

그들은 나보다 한정거장 더 가서 내린다고 했다. 주차해놓은 곳에 내리고 차를 타고나니 아직도 해는 중천에 있다. 잠시 곽지해변을 둘러보고 싶어 졌다. 대신 해안도로로 가고 싶다. 해안도로를 이용해 구불구불 곽지과물해변을 향했다. 그곳에서 잠시 바다를 보다 집으로 향했다.


오는 도중 애월의 낙조가 나를 유혹한 때문인지 낙조를 위해 신엄리 해안가에 앉아 잠시 감상을 한다. 온몽이 쑤신다. 꽤나 피곤하다. 일찍 자고 싶다. 내일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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