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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26. 2017

서귀포를 거니는 올레 6코스

2015년 5월 29일

금요일 저녁을 하염없이 보내고 토요일 아침을 맞는다.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내린다. 지난주에는 지인들이 내려와서 주말을 정신없이 보냈지만 오늘은 추적이는 날씨에 나 혼자 보내야 하는 토요일 오전이다. 이 비가 그칠 것인가 아니면 오후까지 계속 내릴 것인가. 그것에 따라 오늘 행선지가 달라진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 건너뛰지 않고 6코스를 걷기로 했다. 아무리 서귀포시내를 통과하는 코스라 할지라도 제주는 제주다. 그 아니 새로운 맛이 없겠는가 싶다. 다행히 시청에 거처가 있다 보니 버스를 한 번만 타면 출발지인 쇠소깍까지 갈 수 있다. 물론 가는 시간은 1시간 30분이나 걸리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시외버스를 타는 것도 마음의 여유를 준다. 그게 여행 아닌 여행의 힘이 아니겠는가 싶다.

버스는 남원을 지나 바닷가 마을들을 차례로 지나며 쇠소깍 앞에 섰다. 그전에 위미와 공천포를 지나면서 이제는 이 동네가 마치 내가 있어야 할 것처럼 익숙하기 짝이 없다. 난 이 동네가 좋다.

쇠소깍을 향해 걷고 있자니 운동화 속이 축축하다. 이상하다 벌써 물기가 들어올 리가 없는데 싶어 잠시 서서 운동화를 살펴보니 양쪽 운동화 모두 좌우가 다 떨어져 그 사이로 물이 술술 들어오게 생겼다. 이 신발을 올여름이 지나면 무조건 버리리라. 다시 한번 결심한다. 싼 게 비지떡이라 했던가. 걷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양말이 젖은 느낌으로 걷는 기분은 참으로 더럽다.


그래도 쇠소깍은 보기에 좋다. 비가 오는 덕인지. 테우를 운행하지 않아 한적하다. 몇몇 관광객들이 여전히 배 타는 곳을 기웃거리고 있지만 평소의 날 맑은 날에 비하면 한적하니 아주 좋은 느낌을 준다. 다행히 비는 거의 내리지 않는다. 우산을 괜히 가져왔다 싶지만 지팡이 대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작년 가을 5코스의 종착점으로 도착했던 쇠소깍을 떠올리며 이곳을 다시 찾으니 입가에서 저절로 미소가 생긴다

작년 가을 5코스의 종착점으로 도착했던 쇠소깍을 떠올리며 이곳을 다시 찾으니 입가에서 저절로 미소가 생긴다. 벌써 제주에 내려온 지 8개월이 됐다. 좋은 점과 싫은 점 기쁜 점과 슬픈 점 등을 떠올리며 잔잔한 쇠소깍의 호수 같은 물과 역시 잔잔한 바다를 쳐다본다. 나는 이곳에 왜 있을까...


해변을 향해 걷는다. 바닷가는 아스팔트가 잘 깔려있다. 그래서 그런지 특별한 감흥이 없다. 여기서부터는 암튼 서귀포시내를 향하는 것이니 더욱더 도시 냄새가 나고 관광지 냄새가 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길을 가다가 섶섬을 마주 본다. 그냥 덩그러니 놓여있는지라 그 섬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까먹는다. 너무 가까이 있어 네가 있는 줄 모르니 그냥 제주에 붙어있는 코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섬이다. 덩그러니 나지막한 물길 너머에 우뚝 솟아있다.


일단은 무조건 오름을 오른다. 오늘따라 몹시 지치고 힘들다. 헐떡이며 오르는데 입안에서 단내가 난다. 나는 어제 무엇을 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데 도대체 아침을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허기가 지다니 전례 없는 일이다. 


날이 흐리고 찌뿌듯하면 그 이유는 저기압이다. 비가 오기 직전이나 아주 흐린 날에는 몸이 힘들다


이 오름과 혹시 궁합이 맞지 않는 게 아닐까. 몸이 이렇게 힘들어하니 말이다. 그러다가 이유를 깨달았다. 저기압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날이 흐리고 찌뿌듯하면 그 이유는 저기압이다. 비가 오기 직전이나 아주 흐린 날에는 몸이 힘들다.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몸이 쑤시면 비가 온다고 한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들었는데 이제는 그 정확한 현상을 알고 있다. 단지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내가 인정하든 말든 몸은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다. 몸이 언제나 생각보다 앞선다. 그게 인생이지 않나?


보목포구에 닿았다. 제재기오름 정상에 올랐을 때 나는 정상에서 누군가 장기자랑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노랫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 가까이서 들리는지 이런 곳에서 고성방가를 하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하러 성큼성큼 돌아다녀봐도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곧 저 아래 포구에서 노래자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렇게 가까이 들리다니 놀라운 일이다. 얼른 내려가서 저 흰색 천막들의 정체를 알고 싶어졌다. 뭔가 재미있는 장이 열린 것이 아닐까. 그런 장에서 나는 무언가 발견할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와 혹시나 하는 우려를 가지고 부리나케 오름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초기의 예상대로 출구는 올라가 입구 옆에 나란히 몇십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채 포구로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시장의 교통정리는 교통순경도 있지만 어디서나 해병전우회는 구릿빛 얼굴과 듬직한 체구를 자랑하며 붉은색 모자와 더불어 무언가 열심히 정리정돈을 하고 있다. 3대 조직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저들은 무슨 이유로든 인정해줘야 한다.

나는 무언가 발견할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와 혹시나 하는 우려를 가지고 부리나케 오름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장터로 들어서는 순간 그 정체를 알게 됐다. 자리돔 축제란다. 입구에 자그마한 돔의 세꼬시를 먹을 수 있도록 연신 회를 떠주는 아저씨가 고맙다. 냉큼 하나를 집어 오득 오득 씹었다. 역시  세꼬시는 벼와 비늘이 기분 나쁘다. 입안에 남은 잔가시와 비늘을 모아 바닷가로 퉷 하고 뱉었다. 

다양한 천막이 처져 있고  안쪽에 음식들을 팔고 있다. 시골 축제라는 것이 주는 느낌이 비슷비슷하다. 특색이라고는 별로 없이 몇몇 가지 먹거리 장터만이 전부다. 물그러미 쳐다보다 종종걸음으로 장터를 빠져나왔다. 

자리돔 축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어딘가 어울리는 구석이 없다. 여전히 앞에서는 섶섬이 덩그러니 자신의 존재를 자랑하고 있다.


날씨가 찌뿌등하다. 오후에도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다. 다른 날도 아니고 토요일에 내리는 비는 진짜 싫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온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날이다. 그런 날에 비가 오면 참 어쩌질 못하겠다. 하루 종일 집에 앉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누구 하나 아는 사람이 있어 다정히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토요일은 제주에서는 걸어야 한다. 자동차가 있다면 멋진 곳을 싸돌아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것은 토요일의 의미나 지내는 방식에 어긋난다.

적절한 피곤함과 건강에 도움이 됐다는 만족감, 그리고 몸의 한 구석에 무리를 주는 듯한 느낌을 받기 위해 토요일은 걷거나 운동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혼자라는 것은 장점이면서도 무한히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생으로 홀애비타령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무슨 기러기 가족인 양 미국에 가족을 보낸 것도 아니요. 이역만리에 돈 벌러 와서 열사의 사막 더위를 참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가정을 내팽개치고 혼자서 제주에 내려와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기도 하거니와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마음도 든다. 그래도 왜인지 모르겠으나 내려왔고 어려움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견뎌나가고 있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무리수를 두는 수라도 아직은 장단점을 헤야려볼만큼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동시에 공존하는 도심의 한 복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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