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 Nov 26. 2017

호젓한 길_서귀포 가는 길

2015년 5월 30일

호젓한 길


보목포구의 동네 장터를 둘러보고 뭐 이런 게 자리돔 축제라고 할까 라는 의구심만을 품은 채 종종걸음으로 포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길은 포구를 살짝 돌더니 나무가 우거진 길로 나를 이끈다.


곧 서귀포가 코 앞이니 뭐라도 있으련 마는 섶섬을 눈앞에 놓고 지나기 전에 해안을 두고 잠을 청할 수 있는 숙소가 보인다. 혹시 개인집은 아니겠거니 생각했지만 역시 펜션이다.


질투심... 나는 그리 못하니 다른 사람도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부러운 마음이 순간 가슴을 메운다

휴~하고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저런 위치의 방을 매일 같이 개인이 집을 짓고 살아간다면 나 자신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질투심... 나는 그리 못하니 다른 사람도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부러운 마음이 순간 가슴을 메운다.

피식 웃으며 호젓한 느낌을 느끼며 걷는다.


아~ 이길 어릴 적 인천의 자유공원 근처에 홍례문이라는 일제시대의 돌로 된 입구가 있었다. 아직도 있지만 그때의 그 호젓함과 고즈넉함을 생각나게 하기에 충분한 주택가의 길거리다. 이길 너무나 마음에 든다. 다시 한번 부러움이 가슴 한가득 찬다. 젠장...


세월은 왜 이리 빨리 가는고... 오늘 본 할머니들도 그렇고 파라다이스도 그렇고 가슴을 계속 짠하게 만든다

섶섬을 옆으로 놓고 한참을 걷다 보니 본격적으로 관광지가 나온다. 칼 호텔이 보인다. 그 옆으로 나있는 길이 호젓하기는 한데 왠지 조금은 위압적인 느낌이다. 아까의 호젓한 느낌이 나오지는 않는다. 길이 좋은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 옆을 돌아가니 파라다이스 호텔 입구로 길은 연결되어 있다.


가슴이 설렌다. 길이 좋아서가 아니다. 지금부터 17년 전 가을. 아내와 한참 연애하던 시절 둘이서 결혼하기에 앞서 작심하고 여행 간 곳이 제주도 파라다이스 호텔이다. 아직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17년이 지나버렸다. 그 앞을 지나는데 웬걸... 공사 중이다. 왜 이리 아쉽지... 세월의 무상함 만큼이나 나무로 덮여서 출입금지라고 막혀있는 입구를 보고 있으니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세월은 왜 이리 빨리 가는고... 오늘 본 할머니들도 그렇고 파라다이스도 그렇고 가슴을 계속 짠하게 만든다.

이제는 서귀포로 간다.


뭐 서귀포가 대단한 장소도 아닌데...

일단 중간에 만난 할머니들이 너무 인상 깊었을 뿐 아니라 그 이후에 만난 호젓한 길이 내 마음을 너무 사로잡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은지화의 느낌과 짧은 인생 중 1년간 가장 행복했을 시간들을 보낸 그가 남긴 흔적은 눈물이 겹고 아쉬움이 남는다

가는 길에 소천지를 지나며 아담한 호수 느낌의 바위 속 갇힌 바닷물을 본다. 소천지 같기는 하지만 검은색 바위에 갇힌 바닷물에 조금 기괴한 느낌과 어두운 기분을 함께 주는 게 오래 있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밝은 느낌이 안 들기 때문이다.


이후 파라다이스 호텔을 지나 소정방폭포를 보다 보니 시내로 다가선다. 정방폭포도 그렇고 이왈종 미술관도 그렇고 그다지 보고 싶지는 않아 서복기념관과 함께 겉핥기로 지나쳤다.


서귀포 시내는 다른 곳이야 보나 마나지만 이중섭미술관을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은지화의 느낌과 짧은 인생 중 1년간 가장 행복했을 시간들을 보낸 그가 남긴 흔적은 눈물이 겹고 아쉬움이 남는다.


잠깐잠깐이겠지만 그가 일본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왜 이리 가슴이 저며 오는지...

유토피아로를 지나며 이중섭 거리를 가는 길은 참으로 호젓하다. 여유로움이랄까... 언젠가 이곳을 중심으로 살아갈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중섭기념관과 이중섭거리를 걸으며 서귀포와 이곳 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곳을 벗어난 후로는 역시 똑같은 도시일 뿐이다. 천지연 폭포를 볼 수 있는 칠십리 공원을 거닌다. 천지연 폭포를 멀리서 바라보다 뒤늦게 목적지인 외돌개까지 급히 걸었다. 이미 해가 기울 시간이 지났지만 해가 길어져서 힘겹게 도착했다. 중간중간에 많이 머물다 보니 시간이 늦어졌다. 그럼에도 다양한 즐거움에 오래 기억이 남을 장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귀포를 거니는 올레 6코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