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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26. 2017

박수기정과 월라봉을 거쳐 화순으로

올레 9코스 2015년 6월 13일

조금 망설여지던 코스였다. 지도상으로 7.5km밖에 되지 않는 짧은 코스인 데다 바닷가에 불쑥 솟은 박수기정 넘어 이쪽과 저쪽이 갈라진 곳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대평포구와 화순은 지척인 거리다. 그 사이에 월라봉도 있고 제주도에서 가장 계곡다운 안덕계곡이 자리해서 지리적으로는 대단히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장소라는 사실이 조금은 생소했다.


그동안 나름대로 끊어져서 걷던 올레길을 잇는 기분으로 나머지 몇 군데 걷지 않은 올레길을 걷고 있었다. 2코스를 걸었고 전주에 6코스를 비롯해서 이제 다시 9코스를 걷는다. 이 길을 걸으며 그동안 자주 주변을 얼쩡거리며 다녔던 애월 고내리부터 광령리까지 16 코스만 남는다. 그 코스는 부분적으로 자주 들르던 곳이라 새로움이 남아 있지 않아 사실상 마지막 올레코스라는 기분으로 걸음걸이에 나섰다.

그 코스는 부분적으로 자주 들르던 곳이라 새로움이 남아 있지 않아 사실상 마지막 올레코스라는 기분으로 걸음걸이에 나섰다

제주도 올레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과 망설임이 함께 하는 날이다. 오늘 이 길을 걷고 나면 내일은 부랴부랴 짐을 싸서 숙소를 빼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당분간 생활해야 한다. 어디로 갈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왠지 정하고 싶지 않다. 분명 사무실에서 며칠을 지낸다는 게 바보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곳을 찾는 일이 이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져 본 적이 없다.

남들은 제주가 좋아서 안달인데 나는 점점 향수병에 빠져드는지 초조함이 앞선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서울에 가족을 남겨두고 왔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나 혼자 아무리 경치 좋은 곳이라고 와봐야 함께 있어야 할 사람들이 서울에서 떨어져 지낸다는 사실이 마음을 너무나 불편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의 걸음걸이는 마음속에 많은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는 걸음걸이다. 혹시나 내가 제주에 남아있게 되는 마지막 순간이 아닐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부터 ' 아, 더 이상 걸을 제주도의 올레길이 없으니 이제는 어디로 다녀야 하나... 한라산 둘레길과 다른 다양한 걷는 길을 또다시 찾아 나서는 게 맞는가'부터 '어쩌면 여기까지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 혼자 아무리 경치 좋은 곳이라고 와봐야 함께 있어야 할 사람들이 서울에서 떨어져 지낸다는 사실이 마음을 너무나 불편하게 한다

차를 화순 해변 가까운 버스정류장 근처에 세우고 버스를 기다린다. 화순에서 오랜만에 쳐다보는 느낌이란 지난해 10코스를 걷기 위해 찾았던 순간과 8코스를 마치고 대평포구에서 제주시로 나가기 위해 이곳을 들렀던 순간들이 오버랩된다. 벌써 7-8개월 전이다. 그 당시에는 걷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제주도 몰랐고 서울을 정처 없이 떠나야만 했고 머릿속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순간이었다. 여러 가지 외부 상황이 너무 복잡해 나 자신을 이 낯선 장소에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8코스를 걷고 지친 몸으로 버스정류장 맞은편의 중앙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땀으로 찌든 몸을 달래려 물회를 먹겠다고 정신없이 덤벙이던 생각이 난다. 그 순간과 다시 산방산을 지나 송악산을 향하기 위한 10코스의 첫 시발점으로 버스를 내리던 순간이 함께 생각난다.

지친 몸으로 버스정류장 맞은편의 중앙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땀으로 찌든 몸을 달래려 물회를 먹겠다고 정신없이 덤벙이던 생각이 난다

대평포구로 향한다. 출발점으로 가는 길이 불편하다. 일단 702번 순환버스를 타고 중문단지 근처의 예래 입구까지 갔다. 그곳에서 대평포구로 향하는 서귀포 시내버스인 120번을 갈아탔다. 주변의 마을을 꾸불꾸불 돌며 버스는 이윽고 아주 외져 있지만 외지인들이 한껏 게스트하우스와 펜션 등으로 마을을  바꾸어 놓은 작은 포구인 대평포구에 도착했다. 예적에는 이곳을 당캐라고 했다는 안내 만화가 그려져 있다. 예적에는 오늘 걷기로 한 박수기정의 풀밭에서 말들을 배에 싣고 중국과 육지로 향했던 포구란다. 그래서 아주 번성했던 포구였지만 지금은 한산하기 그지없는 조그만 포구가 되어 버렸다. 더구나 이 곳에서는 유일하게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제주의 드문 마을이다. 월라봉과 안덕 계속이 둘러싸인 이곳에서는 과연 여기가 제주도 맞나 싶을 정도로 외져있는 기분이 든다.

무어 잡아먹을게 그리 많다고 이곳은아기자기하게 지은 집들과 수리한 농가주택 그리고 민박과 펜션, 게스트하우스들이 즐비하다. 무엇하러 이곳까지... 이 교통 불편한 곳까지 들어와서 아주 화려하지도 않은 바다를 보면서 지내는지 사실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솔직이 나는 대평포구 근처에서 살라고 한다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을 만큼 둘러싸여 있다거나 혹은 갇혀있는 느낌마저 드는 장소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는 포근함을 줄 수도 있으리라. 입장의 차이와 기질의 차이겠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그러더군. 뱀띠가 왜 섬에 처박혀서 개고생하고 있냐고. 그 말을 들으면 슬퍼지지만 그래도 밖으로 나가기 위해 움츠리기 위한 장소로 여긴다며 자조하기도 하고 슬픈 마음을 함께 갖기도 한다. 그렇게 이 마지막스러운 올레길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이끌어낸다.


20여 분간 여러 마을을 지나며 결국 도착한 대평포구 정류장에서 출발점까지는 예상외로 한참이 걸린다. 그 와중에 이 곳을 차를 몰고 찾아온 사람들이 몇몇 눈에 띈다. 어린아이들도 보이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들도 아늑하고 많이 모여 있는 때문인지 이곳에 정들면 참 포근하겠다는 반대의 생각을 한다. 조금 전의 답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는 다른 느낌이다. 역시 선입견은 무서운 것이고 결코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기 위해 움츠리기 위한 장소로 여긴다며 자조하기도 하고 슬픈 마음을 함께 갖기도 한다

저 아래가 포구다. 지친 몸으로 이곳에 도착했던 10월 중순이 생각난다. 첫 번째 일요일에 도착한 슬프기 조차한 기억을 가진 그 종착점이 오늘은 출발점이다. 아마도 그 당시 불편했던 마음이 남아서 이 곳 포구에 다시 오기 싫었던 모양이다. 길은 포구 옆을 빠져나가 바로 박수기정을 향해 산길로 향해 있다. 중간에 어느 개인 사유지로 막힌 주택이 광활한 바다를 향해 덩그러니 놓여있고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집을 지난다. 이 집의 정체가 진짜 궁금하다. 이런 집을 소유한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여기에 집을 지었을까.

조금 전의 답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는 다른 느낌이다. 역시 선입견은 무서운 것이고 결코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박수기정을 오르면 오를수록 곳곳에 계속해서 지어지는 펜션이나 멋진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도 제주의 개발 붐은 예외 없이 정신없게 일어나고 있다. 사실 이런 점에서 제주는 더 이상 한적한 힐링을 이야기하기에는 자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그 제주가 이제는 더 이상 조용하지 않다. 서울 근교의 양평 개발을 보는 듯하다. 퇴촌이 개발되고 강상과 강하 지역이 전원주택지로 가득 차고 양평읍내까지 가득 차가던 전원주택의 개발 상황들이 다시 이곳에서 재현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30여 년간 살아왔던 서울과 그 주변의 쓸쓸함이 똑같이 살아난다. 이곳에서도 나는 역시 나그네가 아닌가.

발걸음은 간간히 바위계곡 너머로 보이는 바닷가의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 덕에 헐떡이는 숨을 쉬며 계속 오르고 풀밭을 지나게 된다. 이곳이 박수기정이고 여기서 말들을 놔 먹였겠거니 싶은 지역들이 펼쳐져 있다. 이어서 이러저러한 길들이 연이어 이어지고 길은 결국 예상되로 산 쪽을 향해 틀고 있다. 저 보이는 높다란 봉우리를 바로 오르지는 않겠지 싶다. 월라봉이다. 그 주변을 맴돈다. 한참을 맴돌고 보니 눈 아래 바로 바다가 아닌 다른 쪽이 보인다. 


화순항이 보인다. 화순항 보다는 화순항에 자리 잡은 열병합 발전소가 너무가 거대하고 크게 자리를 잡고 있어 별로 좋은 풍경은 아니다. 이제 화순하면 금빛모래밭이 아무리 좋다 해도 저 중부발전이 운영하는 발전소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길은 그것을 멀리 돌며 구비구비 안덕 계속을 눈앞에 보여주고 있는데 역시 종착지가 저 발전소라는 점은 계속해서 마음에 남는다.

이곳이 박수기정이고 여기서 말들을 놔 먹였겠거니 싶은 지역들이 펼쳐져 있다

제주에 이런 계곡이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는 말들과 같이 안덕계곡은 제주의 여느 곳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준다. 계곡 사이에 물이 있고 말 그대로 계곡이 있다. 한참을 지나니 이곳이 쇠소깍 같은 느낌을 계속 주고 있다는 생각에 마치 강원도나 경기 북북의 어느 계속을 찾은 느낌을 준다. 아 육지가 이랬었지 싶다.

역시 걸음의 종착역은 발전소를 지나고 메르스 때문에 출입자는 발열검사를 한다는 팻말을 읽으며 조용히 정문을 지나고 나니 시간이 멎은 듯 벌써 종착지다. 화순 모래밭을 다시 걸으며 한동안 바다를 응시하다 차를 향해 걷는다. 중간에 외국이 두 명이 집안에서 목재로 무언가를 열심히 공사 중이다. 이 집을 빌었거나 아니면 구매해서 사는 곳인가 싶기도 하고 저 친구들은 왜 이곳에 집을 구해서 사는 것일까 몸시 궁금해졌다.


차를 세운 곳에 도착하니 아직도 4시 30분밖에 안됐다. 기껏해야 3시간 남짓 걸은 것에 불과하다. 그동안의 올레길 걷기와 비교하면 반도 걷지 않은 느낌이어서 그런지 영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남은 시간을 보충하려 차를 위미항으로 돌렸다. 나의 아지트이자 마음의 쉼터인 위미 바닷가로 차를 돌려 저녁 늦게까지 수다를 떨다 마지막 숙소 정리를 향해 제주시로 향했다. 이 숙소도 이제는 끝이구나. 슬프고 서운하다.


내 삶의 방향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나이 50이 넘어서도 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웃기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하고... 그냥 서울에 올라가면 될 일을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싶다. 제주는 나에게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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