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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28. 2017

비 오는 날의 용눈이 오름

2015년 4월 4일

지난해 맘먹고 다랑쉬 오름을 걸었을 때의 감흥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동남쪽의 어딘가에 무언가 봉우리가 연결된 듯한 오름을 봤었다. 내려와서 찾아보니 용눈이오름이란다. 용이 누워있는 모양이라나 뭐라나. 이름도 이쁘기도 하거니와 다랑쉬에서 봤을 때 그래도 눈에 확 띄는 오름이기는 했다.


 큰 감흥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편에 늘 시간이 되면 봄직한 오름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세화 벨롱장에서의 쓸쓸함과 허무함을 뒤로한 채 어디로 움직일까 고민하다 이 오름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내비게이션을 찍으니 그다지 멀지 않다. 가는 길에 네비가 제대로 안내를 못해주는 이유로 인해 길을 잘못 들었다. 한참을 돌아간다. 한 30분 가까이 걸린 기분이다. 물론 중간에 엔꼬난 기름도 채워야 했지만...


생뚱맞게 용눈이 오름의 입구가 나타나기 전에 팻말이 보인다. 왼쪽은 다랑쉬 오름이란다. 낯설지 않은 오름의 이름을 들으니 반갑다. 그래도 오름은 용눈이. 갑자기 주차장이 나타나면서 차를 지나쳤다. 조금 앞에서 차를 돌리고는 주차장에 들어섰다.


안개가 좌우하다 이미 차는 몇 대 남지 않은 상태에서 입구에 떡하니 봉고차가 서있다. 이 차의 주인은 감귤을 파는 사람이다. 나름 감귤 파는 장소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이곳을 찾았으리라. 주는 귤 반쪽을 얼른 입에다 쑤셔 넣고는 모른 채 했다.


여기서 귤을 살만큼 내가 한가롭지도 않고 타지로 나가는 관광객도 아니니 그다지 신경 쓸 일이 없다.



오름의 간단한 설명을 쳐다보고는 입구를 향했다. 정상에서 10분이면 충분히 돌아내려 올 수 있다는 설명문만 생각하니 싱겁기 그지없다.


 그래도 완만하게 3개의 봉우리를 돌아서 올라간다 하니 그다지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오며 가는 2팀을 만나고는 정상을 향해 걸었다.


이미 여기서부터 제주의 날씨는 한 치 앞의 경치도 허락하지 않는다. 정상 발치에 이르자 빗발이 더욱 거세진다. 우산도 없거니와 잠바에 붙은 모자를 얼른 썼다. 다행이다. 등산용 잠바가 참 유용하게 쓰인다. 겨울 내내 봄까지도 이 잠바 하나로 잘도 버틴다.


정상에 올라 오름 주변을 돌아보는데 앞뒤 풍경은커녕 내가 가는 길이 제대로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상 부근에 조망할 경우의 설명이 나와 있다. 이쪽 방향은 한라산이고 이쪽은 무슨 봉우리고 등등... 내 앞에는 뿌연 안개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왔노라, 못 보았노라, 가노라!


그래도 다음에 오면 참 좋을 것 같은 인상을 받고 간다. 역시 오름에 오르고 나면 다시 오고픈 생각이 든다. 오름은 육지의 등산과 사뭇 다르다. 육지의 등산은 말 그대로 산을 오르고 최소 1~2시간에서 6~7시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코스를 걷는다. 오름은 동네 뒷동산 느낌이다. 뭐랄까 쉽게 힘 안 들이고 멋진 풍경과 가슴 트이는 행운을 얻어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름을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암튼 그렇게 빗방울과 바람이라는 제주의 특기를 보여주는 날씨 속에서 용눈이는 나에게 첫인사를 했다. 그래도 반가웠다.


내려가 보니 나 이외에는 남은 차들이 없다. 쓸쓸하다. 창문을 닫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 섭지코지의 지포 박물관 부관장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그곳에 있을 거란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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