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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28. 2017

동쪽 바다 신촌에서 함덕까지

2015년 7월 19일

아침시간을 아끼자는 제안에 내일 아침 시간을 미리 당기기로 했다.


새벽 1시 30분 내일 함께 걷기로 한 일행의 집으로 향했다.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서는 배낭을 둘러멨다. 순간적으로 착각을 했다. 내일 오전이나 길가다가 트럼펫을 불어 보리라는 허황된 결심을 하게 됐다.


그 허황됨이 이날 걸음걸이의 하루 종일 비아냥 거림의 대상이 됐다.


부스스 일어나 짐을 꾸린다. 오늘 아침 해장은 생소한 감자크로켓을 먹기로 했다. 도착한 크로켓 집은 공교롭게도 셰프가 정통 이태리 셰프란다. 이태리까지 가서 공부를 하고 온 셰프가 크로켓 집을 낸 사연은 잘 모르겠지만 맛은 좋았다.

공교롭게도 나와 같이 간 일행에 대해 나와의 관계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눈초리가 느껴진다. 가게 주인들과 손님들을 모두 알고 있으니 멋쩍게 느껴지기도 한다.


식사 후 버스를 타고 신촌초등학교 앞에 도착했다. 오래전 혼자 걷던 시절 이곳을 끝으로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낯설고 조금은 불안한 날들이었는데 다시 오니 새롭다. 날씨도 많은 차이가 난다.


내려서 선블록을 바르지 않으면 안 될 날씨다. 무덥고 뜨겁다. 신촌초등학교를 거쳐 바다와 접한 곳에 덩그러니 놓인 빵집에 우선 들렸다. '빵 굽는 놀이터' 빵가게와 강습을 위한 교육공간을 동시에 만들면서 농업기술원으로부터 인테리어 지원금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4천만 원 정도를 받았단다.

그때만 해도 낯설고 조금은 불안한 날들이었는데 다시 오니 새롭다

그러나 의구심이 든다. 빵집도 아닌 것이 놀이터도 아닌 것이 교육장도 아닌 것이 뭐지?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 빵을 사러 잘 오지 않는단다. 나라도 가서 빵을 사 먹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밀통빵이나 친환경 빵들이 일반적인 제과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익숙한 구조가 아니다. 더구나 아주 다양한 빵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몇 가지 종류의 빵을 사러 바닷가까지 온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설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다양한 빵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몇 가지 종류의 빵을 사러 바닷가까지 온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설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인지 나보고 40대 중반이 안된 후배보다 더 어려 보인다며 처음 보자마자 말의 뒤끝이 짧다. 참, 어이없는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지나 자신보다 내가 7살이나 많다는 점을 알아채고 나서야 슬그머니 뒷말이 길어진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무리 상대가 젊던 늙었던 손님으로 온 사람에게 본인의 우월감을 내보이려 하는 듯한 태도는 뒤끝을 좋게 만들 리가 없다. 기본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남의 일을 탓할 상황은 아닌지라 일행이 이야기를 마치는 동안 몇 마디를 거들고는 길을 나섰다.

신촌을 지난 습지 비슷한 곳을 지나니 새들이 보이고 멀리 해녀들의 물질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일행이 사진을 찍는 동안 기다리며 들고나갔던 트럼펫을 꺼냈다. 며칠 동안 연습도 못한 터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간단한 연습을 하고는 케이스에 다시 집어넣었다. 남들이 보면 뭔가 부는 줄 알 것 같아 쑥스럽기 그지없다. 바닷가 길을 따라 조천을 향해 걸었다. 무엇보다 올레길 리본을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무엇이든 정해진 루트만 따라간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현실이다. 어차피 여유롭게 걷기로 했는데 그 상황에서도 정해진 길만을 따라간다는 것은 편한 선택이 아니다.


날이 무덥다. 걸을수록 햇볕이 뜨겁다. 조천에서 점심을 먹고는 다시 함덕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다양한 풍경이 보이지만 바다가 보이는 모습은 큰 차이가 없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제주바다는 제 날씨에 맞는 그때그때의 최선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을 뭘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차피 여유롭게 걷기로 했는데 그 상황에서도 정해진 길만을 따라간다는 것은 편한 선택이 아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멀리 해안이 보인다. 곳곳에 정자가 보이지만 전부 다른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편안하게 낮술이라도 한잔하면 좋을 분위기다.

함덕에 도착하기에 앞서 옛 기억이 난다. 함덕은 30여 년 전 처음으로 와본 후 가슴에 담은 옥빛 바다의 색깔을 잊지 못했던 지라 늘 가슴에 남는 설렘이 있다. 제주에 내려와서 벌써 네 번째 오는 함덕이지만 그 당시의 아스라함 만큼 즐거운 기억을 주지 않는다.


더구나 이미 여름철 유흥가로 바뀌어 버린 함덕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오기 싫은 모습이라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캉스 상혼과 곳곳에 계속해서 올라가는 호텔과 숙소로 인해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아, 이 쪽빛 바다가 이렇게 망가지는구나. 해안을 멀리 벗어나 서우봉 앞에 돗자리를 깔았다. 소주 한잔을 기울일 만큼 바다는 이쁘고 바캉스객들은 즐겁게 논다. 그곳을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다. 멀리서 바라보는 바다와 그늘에서의 즐거운 시간들이 나를 잡는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술 한잔은 어느 상황에서도 즐겁다.

아, 이 쪽빛 바다가 이렇게 망가지는구나. 해안을 멀리 벗어나 서우봉 앞에 돗자리를 깔았다

바닷가에 바로 붙어있는 서우봉을 바라보며 함덕의 힘은 서우봉이 큰 역할을 해준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햇볕이 뜨거워 서우봉 가는 것을 거부하는 일행의 요청에 맞춰 주저앉기로 했다. 피크닉 나온 느낌이다.


다른 어디를 추가로 갈까 고민하다 그냥 주저앉았다. 저녁시간에 가까워지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그래도 즐거운 걸음걸이다. 얼굴과 다리가 빨갛게 익었다.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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