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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28. 2017

발길은 중산간을 걷다 지친다

2015년 7월 6일 올레 16코스의 후반부

구엄을 끝으로 길은 마을 안으로 들어가더니 멀리 보이는 수산봉을 향해 이끈다. 더 이상 바다가 눈앞에서 보이지 않으려니 오늘 괜히 노을을 보고픈 욕심은 이쯤에서 접어야겠다.


마을 안 길을 걷노라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집을 짓고 사는 모습을 알 수 있다.


새로운 도시풍 집이 이제 제주의 곳곳에서 결코 분리할 수 없을 만큼 전통농가와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산재해 있다.

더구나 제주시내가 가까운 이곳에서는 육지서 내려온 사람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을 터 그들의 선경지명을 부러워해야 할라나...


암튼 일 년이 가까워지도록 아직도 내 갈길을 찾지 못하는 정처 없는 발걸음이 마을로 들어와 버리면 더욱 갈길을 잃는 경향이 있다.


워낙 늦게 시작한 발걸음인지라 빨리 서둘러도 시간은 이미 훌쩍 저녁시간을 향해 달려가고 내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오리무중. 구불구불 마을과 산길을 헤매고 있다.


이미 배도 고프고  지치기도 해서 아~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 정리하자고 생각하고 제주시내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보니 버스가 없다. 아니면 원래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가던 길을 재촉하는 수밖에 없다.

암튼 일 년이 가까워지도록 아직도 내 갈길을 찾지 못하는 정처 없는 발걸음이 마을로 들어와 버리면 더욱 갈길을 잃는 경향이 있다

저 앞이 항파두리인가. 그럼 그곳을 가고 끝을 가보자 싶어 새로 난 애월 길을 건넜다. 이제 발걸음은 산길을 돌아 항파두리를 향해 길이 이어진다. 토성이 계속해서 나오고 예전의 군영이 있었을 법한 너른 장소가 나왔다. 대몽항전터이지 특별한 유적이 있을 곳은 아닌지라 역시 눈에 가장 들어오는 것은 전투를 위한 토성뿐이다. 토성이 이곳저곳으로 이어져 있다.

토성 위로 올랐다. 아주 장대하지는 않지만 전투용으로 사용하기에는 그럭저럭 의미 있는 토성이겠다 싶다. 그럼에도 얼마 되지도 않은 제주도민들이 참으로 많이 동원됐겠구나 싶다. 그 당시 사람들이 항몽 투쟁에 동의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항몽 연합군은 이질적인 육지의 또 다른 점령군이었겠구나 싶다. 당시 제주도는 원나라에 말을 바치며 나름대로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장소였던 터라 굳이 항몽 연합군에 동의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당시 사람들이 항몽 투쟁에 동의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항몽 연합군은 이질적인 육지의 또 다른 점령군이었겠구나 싶다

이곳을 지나니 곧바로 길은 구불구불한 숲길로 안내한다. 숲 속 깊은 곳을 걷다 보니 저저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제 끝이 다가오지만 아직 멀다. 올레길은 내 발걸음을 목적지 언저리로 계속 이끄는데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한참을 걷다 보니 4km의 이정표가 보인다. 이대로라면 한 시간. 지금 시간을 보니 6시다. 벌써 6시가 됐구나 7시에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 같다.

목적지에 가까울수록 좋아 보이는 집들이 많이 보인다. 시내 가까운 곳에 사람들이 몰려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일터 부러움이 다시 샘솟는다. 언덕을 하나 넘으니 눈에 익숙한 광령초등학교 교정이 앞에 보인다. 곳곳에 피어있는 수국은 내 마음을 활짝 펼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버스정류장이다. 앉아서 10여분을 기다리니 버스가 온다. 반갑다. 어찌 됐든 공식적인 올레길 코스 1코스부터 21코스까지 다 걸었다. 물론 우도라던가 마라도, 추자도 등은 아직이지만 일단 한 가지 단락을 맺었다는 점에서 마음이 뿌듯하다.


다시 시작이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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