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 Nov 28. 2017

강정 평화대행진

2015년 8월 1일

금요일 저녁이다. 지인으로부터 강정 평화대행진에 참석할 의사가 있으면 같이 가자 한다. 단, 함께 걷거나 다니지는 못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면 어떠리 싶어 일단 참여하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의 목적지는 서귀포고등학교. 뜨거운 날씨에 어찌 되겠지 싶어 그곳에 도착했다.


며칠 전 아내로부터 강정 평화대행진 참여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제주에 살면서 강정문제를 등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어느 입장을 들든 그들의 모습을 한번 찾아가 보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 용기를 내서 함께 걷기로 했다. 단순히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라면 나야 직업상 취재를 위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노릇이지만 이번은 반반이다.

그 어느 입장을 들든 그들의 모습을 한번 찾아가 보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

걷는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걸을 것이고 행사 시에는 기자로서 취재를 할 뿐이다. 어정쩡한 상황이지만 지난번 행정대집행 때도 현장에 찾아가지 못한 이유로 조금은 아쉬웠던 터라 부담 없이 선뜩 서귀포를 찾았다.

도착한 서귀포고등학교에는 이미 이날의 일정을 마치고 하루를 정리하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잔디밭에 앉아 술을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람들. 몸을 씻고 편안한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중 가장 분주한 곳은 전원이 나와있는 곳의 핸드폰의 충전 열기다.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요즘 어딜 가든 충전은 필수인 셈이다.


체육관 앞에서 이를 어쩔까 싶어 낯설게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다. 얼마만인가. 이 같은 현장에 나와본 것이 옛적에 취재현장에 다니던 시절과 이후 몇몇 한국 사회의 주요 상황에서 광화문에 잠깐 나갔다 왔던 일들을 제외하고 리얼한 현장에 나와본 것이 참 오랜만이다. 생각해보니 세월호 때 석가탄신일 날 가두행진을 하면서 종각에서 천도재를 했을 때 한없이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났다. 오래됐구나. 그리고 내 감성을 숨기느라 힘들었구나 싶다. 그런데 여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비롯해 참으로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보기에 좋으면서도 대단히 낯선 모습니다.

그러나 그중 가장 분주한 곳은 전원이 나와있는 곳의 핸드폰의 충전 열기다.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요즘 어딜 가든 충전은 필수인 셈이다

잠시 체육관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봤다. 여전히 낯설다. 내가 이들의 행진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도 이유가 있지만 그동안 강정마을의 이슈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것으로 인해 사실 강정평화대행진이라는 낯선 행사에 불쑥 들어온 것이 더 낯설었던 본질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행진과 행사를 마친 현재까지 나로서는 아직 그들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강정 이슈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지만 왠지 다녀오기는 잘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여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비롯해 참으로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보기에 좋으면서도 대단히 낯선 모습니다

결국 서귀포에 사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이날 서귀포고등학교 체육관에서의 숙박은 가능하지 않았다. 아침에 참여하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출발시간인 9시에 맞춰 서귀포고등학교에 갔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진 준비를 마치고 있다. 나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아침 준비인지라 뒤편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열심히 노래와 율동을 하며 오전의 흥을 돋우는 이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저절로 마음속에서 흥이 솟아나는 느낌이다.


아침부터 이미 뙤약볕이 매우 강하다. 오늘 하루 얼마나 뜨거울까 싶다.

열심히 노래와 율동을 하며 오전의 흥을 돋우는 이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저절로 마음속에서 흥이 솟아나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출발이다. 서서히 뒤를 따라간다. 몇 블록을 걷다 보니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역시 올레길을 걷는 것과 비슷하지만 이 한여름의 볕은 견디기 힘들 만큼 뜨겁다. 내가 아는 지인이 저만치 있는 게 보인다.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는 체 하지 않기로 했다. 나도 이 길을 걸으며 일정 시간 후에는 직업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출발 시에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다시 행진에 충실하기로 했다. 낮에 이어갈 주요 행사인 인간띠잇기 행사 때까지는 걷는데 충실하고자 한다.

2번의 휴식을 거치자 강정마을의 비석이 나오고 저 멀리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이 눈앞에 보인다. 이제부터는 직업인으로 취재를 해야 할 때다. 부지런히 옆으로 빠져나가 행렬의 앞과 옆을 오가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할 것이다.


저놈은 갑자기 잘 걷다가 튀어나와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가 싶을 테니 말이다. 머릿속으로 이 사진으로 포토뉴스를 만들어서 나열하면 되겠다 싶다. 암튼 집중적으로 걷는 시간은 2시간 조금 넘은 듯싶다. 이후로는 걷되 행진 참가자라기보다는 취재기자로서 걸었던 기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상절리의 오전 산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