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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r 18. 2016

건축이 이끄는 명상의 길_지니어스 로사이

자연을 이용해 상상밖의 명상과 나를 찾는 공간을 만들어낸 건축

섭지코지는 제주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명소다. 

섭지코지 등대와 바닷가 풍경

한라산, 성산일출봉 등과 견주며 자신만의 독특한 경치와 경계를 가지고 온전히 한 일가를 이룰 수 있는 관광지다. 


관광지 사이에 숨어있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지니어스 로사이. 


벽면 앞에 붙어있던 안내 글씨도 제거되어 있어 이전의 이벤트가 끝난 추억만을 보여주는 흔적인 줄 알았다. 외부에서 보면 건축을 하다만 느낌을 주는 장소. 안쪽으로 들어가면 안내표시판도 없이 사무실 앞에 붙어있는 설명이 전부인 곳.


제주에 내려와서 섭지코지에 와본 것만도 수차례다. 개인적으로, 서울서 내려온 지인들과, 혹은 가족들과의 방문을 비롯해 이제는 코스와 경치조차 눈에 선한 곳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곳이 이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선입견을 깨는 일이 어려움을 실감한다. 괜히 들어가지 않게 되면 계속해서 이를 거부하게 되는 고집과 오만의 결정을 옳다고 여기고 사는 습성이 무섭다.


지난해 서울서 광고업을 하는 대학 동기가 여행을 왔을 때다. 방송통신대에서 강의차 내려온 다른 동기와 함께 바쁜 일정을 쪼개어 제주에 내려온 그녀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지니어스 로사이를 꼭 들러야 한다며 일정을 조절했다. 제주에 와서 그곳을 꼭 보고 가야 하는 숙제가 있다는 것이 그녀의 강변이었다. 광고쟁이들 사이에서 그곳은 들러야 할 코스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곳이 이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선입견을 깨는 일이 어려움을 실감한다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려 한 적이 없다. 이전에도 입구 앞에서 서성이며 바라보다 섭지코지 안에서 다시 입장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못마땅해 밖에서 보이는 어정쩡하고 삭막한 풍경과 정체의 불명의 설명 때문에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었다. 굳이 제주의 관광지에 와서 명상에 특화된 장소를 찾아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할 자연은 주변에 충분히 널려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쪽에 보이는 문같은 곳이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다

지난주에 이어 2주 연속 찾은 섭지코지는 신선함보다는 밋밋함을 주는 듯했다. 경치는 물론이거니와 온통 중국 관광객들로 가득 찬 섭지코지를 딱히 비 오는 주말에 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집사람이 제대로 가보지 못했던 곳이라는 이유로 다시 목적지로 삼았다. 피닉스 아일랜드 주차장에서부터 한참을 올라가는 수고로움을 덜고 한화 아쿠아리움 쪽으로 돌아 해안가에서부터 올라가는 뒷길도 알아뒀으니 동네 사람인 듯 자랑질도 할 겸 이곳을 찾았다.


비가 온다. 적지 않은 비가 내린다. 우산은 작은 것 하나뿐이다. 둘이 쓰기에는 작아 한쪽 어깨가 다 젖는다. 비 맞으며 돌아보는 섭지코지는 나의 거만함에도 아랑곳 않고 천혜의 환경이 가진 자태를 뽐냈다.


목적지인 지니어스 로사이 입구에 섰다. 라틴어로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나와있다.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 일단 이곳에 들어갈 것이냐 말 것이냐가 문제다. 다행히 입장료 4천 원은 그냥 감내할 만하다. 더구나 도민 할인의 혜택을 더하니 반값. 


밖에서 안쪽을 빼꼼히 쳐다보는 기분으로는 색다른 것이 없기에 전에도 망설였지만 그래도 안도 타다오라는 건축가를 믿기로 했다. 콘크리트 노출 기법으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안도 타다오. 그가 설계했다는 글라스 하우스가 바로 코앞에 있지만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않은 관계로 명성 대비 만족도는 높지 않은 터였다.


그의 콘크리트 노출 기법의 건물은 어디서든 느끼는 것이지만 늘 짓다 만 느낌을 준다. 때로는 지나치게 인공적이라는 느낌도 준다. 콘크리트가 주는 현대문명의 차가움때문이리라.  지니어스 로사이 위쪽에 만들어 놓은 풍경은 어쩌면 만들다 만 느낌의 정원이라 다소 생소하면서도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일단 자연을 해치고 역행하면서 추진했다는 느낌이 없어 좋았다. 기존 제주의 자연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특히 널브러진 현무암을 뿌려 놓음으로써 그 자체가 정원이 되는 효과는 다소 의외이기도 했다.

일단 자연을 해치고 역행하면서 추진했다는 느낌이 없어 좋았다


안내원은 가운데 정원을 지나면 폭포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라 했다. 막상 찾아간 폭포라는 게 인공적인 물이 벽을 타고 흘러내려가게 만든 것이지만 언뜻 듣기에는 마치 물줄기가 아래로 쏟아져 내려가는 폭포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저 입구를 지나면 또 다른 지옥의 문이나 저승으로 가는 입구가 열리지 않을까. 혹시 타르타로스처럼 거인들을 가두어 놓은 지하세계로 통하는 입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가 오는 중에 물에 젖은 콘크리도 외벽과 양쪽에서 내리는 물을 지나는 기분은 다른 세계로 내려가는 입구라는 인식을 더 강하게 심어준다. 아마도 건축가가 의도한 것도 이것이었으리라. '지금부터 당신이 걷는 길은 이승을 지나 다른 차원의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인위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 메시지를 위해 작가는 높은 벽과 좁은 길이라는 두 가지 도구를 사용했다. 문제는 그 요소만으로는 사람들에게 심한 위화감을 충분히 줄 수 있고 경계심과 거부감을 강하게 느끼게 할 것이 분명했다. 유쾌하지 않은 반응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작가는 그 선택을 2가지 도구로 상쇄시켰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명상의 도구로서 이것을 활용하도록 했다.

첫 번째 도구는 입구에서 가로로 길게 벽을 뚫고 보여준 성산일출봉과 바다의 모습이다. 눈높이에 어울리도록 만들어 놓은 풍경을 통해 마치 풍경이 내가 존재한 이곳의 모습과 다른 세상의 모습임을 암시하도록 하고 있다. 익히 아는 풍경이기는 하지만 인위적인 사각의 틀을 통해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보는 이를 풍경과 격리시켰다. 이 세상의 익숙한 경치를 동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격리 효과를 적절하게 배치했다. 저 경치를 보면서 무언가를 느길 수 있는 준비를 하도록 해준다.


작가가 두 번째로 사용한 도구는 제주의 돌이다. 수없이 많은 밭담이나 해안에서 널려 다니는 돌을 이용해 담장을 높게 쌓았다. 한쪽은 콘크리트 노출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며 이 곳을 지나는 사람이 격리되어 있다는 효과를 주게 했다. 그러나 다른 쪽은 자연의 돌을 활용함으로써 익숙한 곳으로 나를 이끈다는 안도감을 함께 제시해  사람들을 낯설면서도 무섭지 만은 않은 이끌림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 2가지 도구를 이용해 작가는 길을 걷도록 하고 있다. 그 길은 서서히 각도를 낮추어 지하로 내려가도록 유도한다. 쭉 뻗은 길을 통해 목적지로 이끌지 않고 직선의 길을 구부리며 코너를 돌 때마다 조금씩 새로운 무의 세계와 콘크리트와 돌이 주는 무념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도록 준비시키고 있다.  그렇게 해서 작가는 벽을 아무리 바라봐도 나오는 것이 없고 결국 바라보는 것이 벽이나 이미지가 아닌 자기 자신이 되도록 건축물을 명상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지니어스 로사이가 지닌 명상의 도구로써 건축물이 의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타타오는 훌륭한 건축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풍경을 가슴에 새기는 순간, 내가 걷는 길은 어둠으로 휩싸여 있으며 희미한 불빛만이 방문객들을 이끈다. 지금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들이다. 그 안에는 다양한 시각적 시간적 장치를 가진 3가지의 방이 있다. 그 개별을 설명하기에는 작가들의 의도를 훼손할 가능성이 높아 평가를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결국 바라보는 것이 벽이나 이미지가 아닌 자기 자신이 되도록 건축물을 명상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내가 지니어스 로사이를 평가하는 가장 큰 장점은 그의 건축물이 지상을 향해 올라갔으면 결코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그는 제주의 자연을 이질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인위적인 건축물이 이곳 섭지코지의 풍광을 방해할 것임을 알고 있는 듯했다. 거칠고 의미 없어 보이는 제주의 자연적 요소를 활용해서 내가 걷거나 서있는 별것 아닌 듯한 갈대와 돌 그리고 바람과 풍경 등 주변의 모든 것들을 사용해 인위성을 최소화하려 했다. 나를 되돌아보는 명상의 아주 중요한 수단이자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힐링의 능력을 극대화해주고 있었다.


특히 건물을 지하로 내려가게 배치함으로써 자연을 해치는 건축물의 부작용을 최소화 한 점은 눈여겨볼만하다. 그 두드러지지 않은 점이 내가 이곳을 방문하는데 오래도록 망설이게 했지만 그래서 더 의미가 있지 싶다. 


내부에서 명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성들은 이곳을 방문해 직접 느껴보기를 권한다. 내가 느끼는 힐링과 명상의 감각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동감을 줄 지에 대해서는 결코 자신이 없으므로 이 또한 생략하는 것이 옳은 듯하다.


역으로 그런 점에서 볼 때 그의 또 다른 옆 건축물인 글라스하우스는 아무리 봐도 좋은 점수를 주기에는 별로인 건축물이다. 


내려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오면서 역으로 바라보는 폭포의 물길과 입구 그리고 밖의 풍경을 하나씩 되뇌었다. 여전히 많은 비가 내리고 있지만 그 비로 인해 지니어스 로사이는 진정 자신을 찾도록 하는 건축물의 역할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새롭게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는 사람이나 밖에서 이것이 뭐지를 기웃거리는 사람이 보인다. 난 그들이 처음에 단순한 구경거리로만 생각했던 건축물과 작가의 명성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내 안의 침잠의 요소를 찾으러 저승의 세계로 내려가 카론의 배를 타고 레테의 강을 건너는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는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건축물 자체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을 현실과 극단적으로 구분시켜 자신을 볼 수 있는 기회, 그것도 준비 안된 상태에서 바라보는 자신은 여러모로 보나 솔직함을 담고 있기에 놓쳐버리기에는 아까운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2016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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