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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y 01. 2018

음식은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음식커뮤니티의 가능성과 제주에서 얻어야 할 것들

"우짜든지 밥심으로 견뎌야 하는 기라"

멀리 지방에서 서울로 떠나는 자식을 붙잡고 마냥 불안한 어미가 할 수 있는 말은 사실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많고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는 가장 본질적인 당부는 밥의 힘을 빌어 자식의 안녕을 기원하는 일이다.


밥은 우리의 생활에서 필수 불가결하면서도 결코 등한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 먹고사는 일이야 굶으면 죽게 되니 의미를 더 이야기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럼에도 굳이 음식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먹고사는 이야기를 하는 데는 생존의 욕구를 넘어 그 이상의 무엇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 3월의 마지막 날 아니 30일이면 마지막 전날인가. 제주시 원도심의 고씨 주택에는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주관하는 '공공디자인으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 사업이 진행됐다. 벌써 4회 차이니 사람들에게도 꽤나 알려진 행사인 셈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음식을 주제로 함께 만들어 보기도 하고 시연도 하면서 제주만의 혹은 전국 최고의 요리사에게 배우는 '음식 커뮤니티'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주부들이 마다할 리가 없을 터이다. 더구나 무료이니 마다할 행사가 아니다. 

굳이 음식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먹고사는 이야기를 하는 데는 생존의 욕구를 넘어 그 이상의 무엇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바람이 꽤나 부는 날씨이기는 해도 햇볕이 좋은 날이라 다행이다. 점심을 급하게 먹고 행사장으로 향한다. 굳이 인사말을 해달라는 담당 팀장의 요청을 강력히 거부하고 팀장에게 자신의 프로젝트이니 스스로 인사말을 하라고 떠넘기고 나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자신이 준비하고 스스로 가장 잘 아는 프로젝트에 괜히 상위직급이라고 꼭 인사말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내 주장을  듣고는 마지못해 인사말을 떠맡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사람들의 표정과 행사를 쳐다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다른 곳에 홍보를 하지 않고 센터 인터넷 페이지에만 올렸는데도 몇 시간 만에 인원이 찼다. 나름 흐뭇하다.

자신이 준비하고 스스로 가장 잘 아는 프로젝트에 괜히 상위직급이라고 꼭 인사말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사진을 보는 사람이나 모여 커다란 행사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30여 명의 인원이 참가하는 행사가 뭐 그리 대수인가 싶겠지만 제주에서 이런저런 행사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그 피 말리는 행사 인원 모집과 진행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주에서는 사람을 모으는 일이 진짜 무지하게 힘들다. 아주 커다란 행사도 50여 명 이상을 같은 시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은 사실 엄청나게 힘들다. 500명도 아니고 50명이라니... 그것도 촛불집회에서 1만 명이 모였던 지난해를 기억한다면 피식 웃을 일이다.


그렇지만 50명을 모으는 일은 대단히 힘들다. 그것도 일반적인 행사에서 약간의 강제적 동원 없이 순수 자발적인 사람들, 그리고 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한편으로는 무너져 내린 가슴을 추스르느라 얼마나 힘겨웠던지 생각하면 지금도 몸이 떨리는 느낌을 받는다

행사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 시간관념을 고려하면 사람들의 참석률이 높은 편이다. 제주에 내려와 처음 행사를 진행했을 때 피가 말라죽는 줄 알았다. 행사 시작 5분 전이 되도록 참여 약속 인원의 반은커녕 30%도 채 안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주의 행사를 진행해봤던 담당자는 생각보다는 비교적 차분하다. 그리고 왜 나만큼 불안함이 없었겠는가 마는 상대적으로 그는 나보다 느긋해 보였다.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나뿐인 듯싶었다.


어이없게도 5분 정도 남기고 난 후부터는 사람들이 속속 도착한다. 이미 행사를 시작하며 제자리에 착석을 하고 준비해야 할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그때 속절없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윽고 5분 정도가 지나자 60~70%의 예상인원이 자리를 메웠다.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한편으로는 무너져 내린 가슴을 추스르느라 얼마나 힘겨웠던지 생각하면 지금도 몸이 떨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경험을 알고 있는터라 사람들 30명 모으는 행사가 공지후 2시간 만에 마감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은 주관하고 있는 우리나 외부 업체에서 보면 반갑고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제가 먹거리였던 것이기 때문이라는 확신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먹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가지며 그 관심의 집중도는 매우 높다. 방송에서 워낙에 먹방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일들은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주는 모양이다.


나는 어떠냐고.. 나는 그냥 맛있는 거 먹는 거면 다 좋은 듯..

먹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가지며 그 관심의 집중도는 매우 높다

그렇지만 이 같은 행사를 경험하면서 느끼는 점 한 가지. 음식은 사람들을 커뮤니티로 만드는데 가장 좋은 재료이다. 오늘의 행사에서만이 아니라 수많은 행사를 해보며 진행하는 주제 중 음식주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이날 행사의 제목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천연염색으로 감싸는 봄 도시락이다. 제주의 음식을 도시락으로 만드는 시연을 해 보이고 도시락보를 천연염색으로 만들어 보는 경험을 하는 어찌 보면 일석이조의 행사였다. 참여한 사람들은 당연히 주부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간간히 남성들도 보인다.

음식은 사람들을 커뮤니티로 만드는데 가장 좋은 재료이다

행사가 진행되자 사람들의 관심이 한 곳에 모인다. 바람만 조금 덜 불면 좋겠는데 내 맘 같지가 않다. 여기저기서 새싹이 꽃과 순을 내보이고 있다. 사람들도 마음으로는 이미 봄이지만 날씨는 여전히 심술을 부리자 투덜거림이 잦다. 4월에는 풀리려나 싶지만 요즘 같아서는 어떻게 날씨가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3월이 꽃샘추위의 계절이지만 4월은 또 어떤 신기록을 세울지 모를 일이다.

사람들이 흥겹게 모여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다. 제주의 다른 지역에서도 이 같은 활동을 계속하면 좋겠다. 아니면 먹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라도 계속하고 싶다. 그 모임이 제주 전역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말로만 하지 말고 몸으로 직접 참여하는 시대가 세상의 모든 곳에서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나 같은 구경꾼의 입장에서 본다면 행사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그 어떤 모임이 되었든 사람들이 진지하게 자신들의 관심과 그에 따른 직접 참여를 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말로만 하지 말고 몸으로 직접 참여하는 시대가 세상의 모든 곳에서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주류에 편승하고 싶은데 젊은 세월을 너무 허투르 보낸 게 아닌가 아쉽기만 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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