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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l 21. 2018

벡주또는 이 오름을 몇 번이나 올랐을까

제주 당신화가 시작된 곳 당오름

제주의 당신화가 시작된 곳. 송당을 찾으면 늘 건너뛰기 미안한 곳이 당오름이자 본향당이다.

유독 당이 많고 당굿이 발달한 지역이기도 하지만 한 지역의 문화를 오롯이 지배하고 있는 역사 문화적 근원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본향당은 그 모습의 허전함과 약간의 어이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제주의 당굿이 시작되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백주또는 본향당이 자리 잡은 이 오름을 몇 번이나 올랐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둘레를 잠깐씩 걸어본 적은 있어도 당오름 이름의 오름을 오롯이 올랐다 내려와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둘레길이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슨 재주로 백주또는 아를 열여덟과 딸 스물여덟을 낳을 수 있었을까. 결국 헤어진 남편 소천국과 결혼하여 참으로 수많은 자식을 낳았으니 사는 동안에는 부부간의 금슬이 무지하게 좋았던 모양이다. 물론 상징적인 숫자이긴 할 테지만 말이다. 한 지역의 시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그 의미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목축을 주업으로 하는 소천국과 농경을 주업으로 하는 백주또는 본성상 갈라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노동력의 역할 차이와 지역의 특성이 달랐을 테니까. 그로 인함은 아니겠으나 제주 여성들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는 단초는 아니겠는가. 농사짓는 와중에 바다에 들어가 해녀일도 해야 했으니. 

한 지역의 시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그 의미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백주또의 자식들을 표현한 돌들이 서 있는데 영 사람같이 느껴지기보다는 조금은 허접한 정령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상상일까 싶다. 조금 더 잘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당오름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호젓하다. 그 초입의 본향당을 들뜬 마음에 찾아보지만 아무런 제물이 없고 행사가 없는 시간인지라 쓸쓸함 그 옛적 추억에 대하여 가만히 귀기울여야만 할 시간이다.

꺼지지 않을 듯 초에 불이 붙어 조용히 자신을 태우다 만 초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설명에 의하면 본향당은 마을의 생산과 물고, 호적, 장적 등을 담당하는 당으로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제주 신당의 원조로 여기는 장소이기도 하니 제일을 찾아 나설 일이다. 음력 1월 13일 2월 13일 7월 13일 10월 13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하니 시간을 맞출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런 제물이 없고 행사가 없는 시간인지라 쓸쓸함 그 옛적 추억에 대하여 가만히 귀기울여야만 할 시간이다

시간을 맞춰 본향당에 찾아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오늘도 옛적 이야기만 가슴에 담고 오름으로 방향을 바꾼다.


호젓한 초입과 본향당을 잠시 둘러보고는 오름길을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예의 오름과 거의 흡사하다. 놀라운 것은 겉에서 보기에는 아주 나지막하고 숲의 깊이가 그다지 깊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인데 막상 안에 들어와 보니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다. 꽤나 깊고 시원하다. 느낌이 이토록 깊었나 싶을 정도로 오름 그대로에 빠지게 된다. 


'음...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여러 차례 방문할 것을...'

사람의 선입견이란 것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를 일으키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차례다.

사이 사이로 이곳이 제주의 웃뜨르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끔 주변의 오름과 목초지가 눈에 두드러진다. 송당만큼 많은 오름과 목초지를 가진 마을이 없을 터 그 모습을 한껏 뽐내며 지역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좋은 지역이다.

숲이어서 으스스한 것인가 아닌 천남성을 상상해서 그런 것인지 조금 구분이 되지 않는다

길은 길에 연하여 이어지듯 계속 조금씩 위로 오르는데 나무 밑의 생태계가 비자림에서 본 느낌과 조금씩 비슷함을 느낀다. 다른 무엇보다 천남성으로 보이는 풀들이 곳곳을 잠식하고 있다. 천남성은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릴 때 사용했다던 독초라 하니 생각만 하도 무서운 식물이다. 그런 것들이 곳곳에 퍼져 있으니 괜히 조심스러움과 약간의 공포가 찾아든다. 숲이어서 으스스한 것인가 아닌 천남성을 상상해서 그런 것인지 조금 구분이 되지 않는다.


돌탑을 지나고 오름을 한 바퀴 돌며 제지리로 찾아드는 사이 당오름이 물론 뒷동산처럼 편안한 오름이지만 이곳에 한밤중에 마실 돌듯 돌아다니면 아주 묘한 정적이 사람을 이끄는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당이 있는 것이어서 그런가 이 차분하면서도 묘한 분위기는 무엇일까. 땅의 기운이라는 것은 어디를 가든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뭔가 숙연하면서도 차분한 마음을 당오름에서는 저절로 갖게 된다. 이름을 잘 지었다. 물론 당이 있어서 당 오름이었겠지만 이 오름이 아니면 안 되는 그 분위기도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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