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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l 21. 2018

곰솔나무가 쓸쓸해 보이기 시작했다

산천단을 스치다

곰솔나무가 쓸쓸해 보이기 시작했다.


자주 오지는 않아도 몇 번이고 이곳을 지나쳐봤지만 산천단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은 어디를 찾아봐도 찾을 길이 없다. 도대체 어디서 제사를 지냈단 말인가.  결국 한라산을 오르지 못해 땜방으로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 이야긴데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산천단에 오면 무엇을 보든 곰솔나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 나무들 몇구르가 없었다면 무슨 의미로 여기를 산천단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제사를 지낼 수 있었을까 말이다.

이곳의 곰솔은 총 8그루가 있으며 우리나라 곰솔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라 한다. 수령이 500~600년 정도라나. 중요한  장소이자 이름이다. 아마 조만간 박제화된 방문지로 새롭게 자리를 잡겠지만 살아있는 멋진 장소로서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곰솔나무는 그 위상과 주변의 허함으로 인해 쓸쓸함이 더해간다.


크고 오래된 나무가 8기나 있는데 그 의미를 충분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탄보다는 쓸쓸함을 먼저 기억하는 나의 정서가 잘못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 쓸쓸함과 허무함을 아는지 이곳에 사는 냐옹이 한 녀석이 도로 한복판에 누어 잠을 청하고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귀찮은 듯 아무 생각이 없다. 가까이 다가서자 본능적인 경계심을 가진 녀석이 부스스 눈을 뜨더니 영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졸리고 귀찮으니 내 주변을 어슬렁 거리지 말라는 표정이다. 녀석을 깨우지 않기 위해 살며시 길을 돌아서 걷는다. 


나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려는 듯 또 다른 방문객에 속한 아이들 두 명이 깔깔 거리며 신기한 듯 고양이에게 다가간다. 참다못한  녀석이 슬금슬금 길을 벗어나 풀밭으로 들어간다. 별 시답지 않은 녀석들이 다 방해한다며 투덜거리는 느낌이다.

졸리고 귀찮으니 내 주변을 어슬렁 거리지 말라는 표정이다

녀석을 보면서 산천단의 현재 위상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노쇠하지만 귀찮은 장소가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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