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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l 28. 2018

다시 사려니숲길과 사려니오름

언제 걸어도 기분좋을 순간들. 숲길은 그래서 기다려진다.

사려니오름의 붉은오름 쪽 입구는  차는 물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다지 빠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늦지도 않은 오전의 한 중간.  붉은오름 입구의 주차 가능 공간을 찾기 위해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다 보니 차를 세울 수 있는 마지막 위치까지 다 달았다. 걸어야 한다. 정작 사려니숲길을 걷기도 전에 지치겠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할 수 없지만 사려니 숲길로 가는 길 양편에 산수국을 촘촘히 심어놓았다. 산수국 길이라는 이름과 함께 사람들은 애초부터 산수국이 이곳에 자리 잡은 듯 자연의 만발함에 한껏 취해 걷고 있다.


산수국
산골짜기나 자갈밭에서 자란다. 높이 약 1m이다. 작은 가지에 털이 난다.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형이며 길이 5~15cm, 너비 2~10cm이다. 끝은 흔히 뾰족하며 밑은 둥근 모양이거나 뾰족하다. 가장자리에 뽛족한 톱니가 있고 겉면의 곁 맥과 뒤셤 ㄴ맥 위에 털이 난다.
꽃은 7~8월에 흰색과 하늘색으로 피며 가지 끝에 산방꽃 차례로 달린다. 주변의 중성화는 꽃받침 조각이 3~5개이며 꽃잎처럼 생기고 중앙에는 양성화가 달린다. 꽃받침 조각과 꽃잎은 5개, 수술은 5개이고 암술대는 3~4개이다. 열매는 삭과로서 달걀 모양이며 9월에 익는다.
탐라산수국은 주변에 양성화가 달리고 꽃산수국은 중상화의 꽃받침에 톱니가 있으며 떡잎산수국은  잎이 특히 두껍다. 관상용으로 심는다. 한국. 일본. 타이완 등지에서 분포한다.

오늘의 목표는 당연히 사려니오름으로 가는 길이다. 한라산 둘레길이기도 한 이 길은 일 년에 한 번 2주간 열린다. 일상적인 사려니숲길과는 사뭇 다른 깊은 숲길이자 임도이기도 하지만 일 년 동안 닫혀있어 어떻게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물론 작년 이맘때에 다녀온 길의 감동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크게 다름은 없지만 길 위에 풀들이 더 많이 자라나 있고 인적이 드물어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좋다는 사실만으로도 훌륭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월든 삼거리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거칠 것 없이 사려니 오름길로 나선다. 손쉽게 찾아온 여행객들과 달리 이 길을 들어서는 사람들은 트레킹을 작심한 듯 길을 나서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 길이 주는 의미를 익히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숲길은 곧 호젓함으로 바뀌면서 나의 기대를 만족으로 대답했다. 크게 다름은 없지만 길 위에 풀들이 더 많이 자라나 있고 인적이 드물어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좋다는 사실만으로도 훌륭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잠시 쉴만한 곳에서 사람들이 멈추어 선다.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갈 길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고 있다. 나 역시 시간의 흐름을 멈춰놓고 하늘과 앞으로 뻗어 난 초록빛 숲길과 되돌아 갈 길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앞뒤로 서성인다.


부자 관계처럼 보이는 남자 둘이 내 앞을 지나간다. 무뚝뚝한 표정이라 의아하다.  부자 사이인듯한데 저렇게 어두운 표정을 지어야만 할까. 남의 일이니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괜한 심술이 났었나 보다.

숲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짙음을 향해 가는 느낌이다. 다만 그 짙음이 어두움보다는 생생함과 맞닿아있다. 통상적인 짙음이 주는 공포보다는 살아있는 생동감을 주고 있으니 지금이 한참 생명을 꽃피우는 시절인 모양이다.


나 역시 시간의 흐름을 멈춰놓고 하늘과 앞으로 뻗어 난 초록빛 숲길과 되돌아 길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앞뒤로 서성인다

나무도 좋고 풀도 좋고 숲도 좋다. 군데군데 천천히 걷다 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 나무의 모양과 덩굴 그리고 양치식물 등 다양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도감이다.

숲과 나무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속에 계속 신선한 자극을 줘도 되나 싶을 만큼 온몸에 주는 감동이 가라앉질 않는다. 물론 도중에 덩굴에 온 줄기를 빼앗기다시피 한 독특한 나무들도 보이지만 그 나무가 불쌍하기보다는 기괴함과 신기함에 감탄을 하기에 바쁘다.

통상적인 짙음이 주는 공포보다는 살아있는 생동감을 주고 있으니 지금이 한참 생명을 꽃피우는 시절인 모양이다

이 계절에 굳이 이 숲을 여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나름 결론을 냈다. 가장 생동감을 주면서도 걷기 좋은 계절이라는 사실. 조금 더 시간이 가면 장마가 뒤덮을 것이고 그다음부터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계속될 텐데 그 같은 계절적 요인은 아무리 숲이 좋아도 일종의 축제처럼 숲을 만인에게 오픈하기에는 비판적 요소가 많게 된다. 오픈 시기에 대해 불만이 없다. 

사려니 오름길의 하이라이트중 하나인 삼나무 숲길. 기본 80년 이상 묵은 삼나무들이 아주 넓지는 않지만 한 군데 모여 깊이를 뽐낸다. 충분히 푸르르다 못해 진초록으로 변해간다. 나무 이끼들이 나무 표면에 잔뜩 묻어있다. 습기가 강해서 발생하는 일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숲 전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저변에 깔려있다. 그로테스크라... 사려니 오름길 전체가 기괴함과는 거리가 먼데 이곳은 별천지다. 그도 그럴 것이 삼나무의 둘레가 일상적인 삼나무 숲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이자 두께다. 

숲과 나무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속에 계속 신선한 자극을 줘도 되나 싶을 만큼 온몸에 주는 감동이 가라앉질 않는다

숲 전체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무 하나하나 돌과 풀 그리고 이끼에 집중하기로 한다. 예전에 왔을 때는 삼나무의 크기와 둘레 때문에 놀랐지만 지금은 조금 더 세밀하고 놓치기 쉬운 부분에 집중하려 할 뿐이다. 그래서인가 전에 보이지 않던 나무기둥과 이끼, 돌과 풀들이 비교적 눈에 잘 들어온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열어놓으면 안 될까. 너무나 아쉬움이 크다.

커다란 삼나무 밑에서 작게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찾아본다. 삼나무가 너무 잘 자라다 보니 그 나무 아래에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모양이다. 식물보다 오히려 이끼 덮인 돌무리가 먼저 보인다. 이끼 덮인 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자신들만의 새 세상을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너희들은 위로위로 뻗어 올라가라. 우리들은 작은 세계에서 다양함을 추구하리라' 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끼 낀 돌들이 제각각의 모양을 보여주는 모습은 뭔가 새로운 역동성과 새 생명의 가능성을 부여해 주는 듯 가슴이 설렌다.

이끼 덮인 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자신들만의 새 세상을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세부적인 것에 집중하다 묘한 식물을 발견한다. 이름은 뱀톱이다. 잎에서 가시가 테를 두르고 있는 듯한 모양으로 그늘진 곳에 낮게 분포하는 모양이다. 설명을 찾아보니 통상 7~25cm라고 한다.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고 뒷면에 입맥이 튀어나온다는 설명이 붙었다. 이제야 비로소 한 가지 식물을 알게 됐다.



삼나무 숲이라는 새로운 집합체를 둘러보는 동안 다양한 생각이 감돌았다. 한 수종을 한 지역에 조림한다는 것이 시간이 지난 후에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과 그런 일들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스스로의 동일성만을 치중하다 보니 다양성 측면에서 역동성이 부족해진다. 사람과 인간세상도 그와 같지 않을 런지...


다시 원래의 숲길로 돌아왔다. 이제는 남아있는 사려니오름을 오르고 하산하면 오늘의 목적지는 그만이다. 하루 종일 걷다가 마지막으로 오름을 오르는 일정은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오름을 충분히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름을 오르며 특이한 장면 여러 가지를 포착한다. 한번 와본 길이 되면 다양함이 보이는 법이다. 나무 아래에 깔려있는 뿌리들이 땅위로 드러난 모습이 계속 보인다. 숲 속의 모습도 정답고 이끼는 물론 자그마한 식물(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들하며 앙상한 가지만 남은 숲 속의 모습 등은 모두 놓치기에 아까운 모습들이다.


그런 것에 집중하다 보니 곧 정상이다. 다행히 날씨가 아주 나쁘지는 않아 서귀포 바다가 보인다. 오름 정상에 올라 편하게 서귀포 앞바다를 볼 수 있는 오름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제주시를 주로 다녔기 때문이리라.

한번 와본 길이 되면 다양함이 보이는 법이다

정상의 하산길은 극악한 선택을 요구한다. 700여 개가 넘는 계단을 곧바로 내려가던가 구불구불 산길을 돌며 내려가던가 구간마다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다시 한번 여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곧바른 길보다는 안 다녀본 여유 있는 구불텅길을 지나기로 했다.

직활강하듯 700여 개의 계단을 내려가는 대신 오름을 돌며 하산하는 길이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어차피 셔틀버스가 와서 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대레다주지 않으면 안 되니 그 시간만이라도 여유를 즐기면 될 일이다. 구불구불 둘레길을 걷다 보니 사려니오름의 숲 속 느낌을 몸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 평상시에 닫혀있는 오름인지라 깊이가 더 깊다는 느낌이다. 이 지역의 오름들과 별 다름이 없기는 할 테지만 한라산 남쪽의 숲이 주는 고요함과 정적을 느낄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는 성공적인 선택이다.


최종 목적지에 다달아 아깝게 셔틀버스를 놓쳤지만 얼떨결에 4시간 가까이 걷게 된 산행에서 몸은 피곤해도 마음의 상쾌함은 이질적인 결합을 가능케한다.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기 좋은 몸 상태를 이끌고 트래킹을 마칠 수 있다니 기분 좋은 순간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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