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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Sep 05. 2018

자연과 닮은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서귀포의 베케를 다녀와서

일요일 오후 망설임의 시간을 갖지 않기 위해 서귀포의 한 정원을 향했다. 집을 지을 때 어떤 모습의 정원을 만들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은 있지만 무엇보다 정원이라는 막연한 대상에 철학을 담게 되면 어떤 모습일까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정원은 어찌 보면 대단히 인기 있는 공간이면서도 공간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특히나 개발의 논리 하에 모든 주거공간이 경제논리에 휩싸이면서 정원은 어쩌면 있는 자의 사치이거나 자투리땅의 활용에 대한 심각하지 않은 고민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정원이라는 막연한 대상에 철학을 담게 되면 어떤 모습일까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파트의 가격을 논할 때 몇 평이냐도 중요하지만 강남에 있느냐 아니냐의 경제적 혹은 교육적 논리에 모든 것이 결정이 됐지 결고 아파트의 조경과 산책을 위한 정원 등이 좋아서 아파트값이 올랐다는  이야기는 귀를 씻고 들어보려 해도 결코 들을 수 없는 세상이다.

서귀포 시내에서 가까운 베케라는 정원을 찾았다. 정원의 가치를 오랫동안 찾아온 분이 만들어온 공간이라는 점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의 매우 중요한 정원 조성작업에 몰두한 전문가가 만들어놓은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연과 닮은 공간의 모습을 구현해 놓았다는 여기저기의 평가로 호기심이 발동했다.


한달음에 달려간 곳은 의외의 카페다. 서귀포시내가 가까운 신례라는 곳이고 일주도로에서 바로 옆이라는 점에서 '헉... 시내에 있는 곳이네"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첫인상도 자연을 닮았다는 느낌보다는 노출 콘크리트 공법의 건물과 아직 채 조성이 되지 못한 미완성된 공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 생각이 그러할 뿐 사실이 그러하지는 않을진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선입견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 때문인지 벽면의 거친 마무리는 어찌 보면 이것이 곧 자연이 아닐까 하는 뜻밖의 인과관계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금세 깨달을 수 있는 일이다.  

밭의 경계에 아무렇게나 두텁게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뜻한다는 베케. 순수 제주도 말이라고 하니 그 용어의 생소함과 멋스러움에 놀란다. 여미지 식물원과 비오토피아 생태공원 등 생태학을 바탕으로 한 암석원과 고층습원의 국내 최고 일인자로 평가받는 김봉찬 선생의 작품이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 때문인지 벽면의 거친 마무리는 어찌 보면  이것이 곧 자연이 아닐까 하는 뜻밖의 인과관계도 만들어 낸다

정원은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돌무더기를 보는 듯했지만 역으로 어쩔 수 없는 전문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먼저 다가왔다.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사람의 환경과 인식은 스스로 알게 모르게 자신의 몸속 어딘가 혹은 생활습관과 의식 곳곳에 묻어나기 마련이다.  베케 정원도 어떻게든 자연과 닮도록 만들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정원의 세련된 요소는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구석이 여기저기 보인다. 몇몇 사람들은 이 정원이 그다지 감동도 없고 그냥 막 널브러진 뒤뜰 혹은 우영팟을 재현해 놓은듯해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인위적인 자연스러움이 만들어놓은 도시의 풍경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정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은 홀 안에 움푹 파여 아래로 내려간 공간이다. 테이블이 땅 높이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 테이블에서 밖의 정원을 바라보면 수평으로 정원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대부분 높은 위치에서 정원을 바라보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땅의 높이에서 정원을 바라봄으로써 땅이 보여주고 있는 세세한 모습과 그 안에 널브러져 있는 돌무더기와 풀들을 경외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이날도 몇몇 팀들이 아래쪽 움푹 파인 자리에 앉아 정원을 뒹굴듯이 바라본다. 재미있는 풍경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마당에는 새들이 연신 날아들며 무언가를 찾고 다시 날아간다. 자연스러운 동네 뒷마당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보기에 나쁘지 않다.


땅의 높이에서 정원을 바라봄으로써 땅이 보여주고 있는 세세한 모습과 그 안에 널브러져 있는 돌무더기와 풀들을 경외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베케가 만들어낸 모습은 사실 내게는 전혀 신기 하달 게 없다. 현재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돌무더기에 이끼가 퍼져 있을 뿐이다. 밭담들에 이처럼 이끼가 끼어있지 않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 차이가 없는 모습이니 말이다. 정원을 조성한 선생님 역시 그같이 자연스럽고 자연과 닮은 정원을 만들려 했다고 하니 일견 성공한 모습이 아닐까.

한 여름의 날씨는 무더위의 극으로 치닫고 있고 아직 조성 중인 정원을 둘러보는 마음에는 미완성의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다. 사실 오픈한 것도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그도 그럴만하다는 생각이다. 


본의 아니게 조성한 김봉찬 선생을 만나고 싶다고 청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왜 이처럼 정원을 조성했는지 본인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차근차근 자연스러운 뒷마당의 모습을 살펴보니 더 정감이 가는 듯하다. 사실 깔끔한 정원에 익숙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정원은 정리가 되어있지도 않은 데다 유럽식 혹은 일본식 정갈한 느낌의 정원과 너무 거리가 멀어 갸우뚱할 요소들이 많은 편이다. 그래도 정원은 사색 혹은 자신의 철학적 방향의 일부를 반영한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받아들이면 좋을 듯싶다. 

공교롭게도 핸드폰의 카메라가 작동을 멈추었다. 날씨로 인해 기기가 너무 뜨거워져 식힌 다음에 다시 촬영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핸드폰을 사용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세상에 날씨가 뜨겁기는 뜨겁구나. 어쩔 수 없이 한참을 식히며 뙤약볕에 서성이고 있는데 김 선생님이 약속을 있어 지나다 한마디 하고 가신다.

"아직도 이 볕에 여기에 계셔요?"

이 불볕에 너무 자세히 보기에는 힘든 시간이라는 셈이다.


사실 천천히 둘러보기에는 날씨가 받쳐주질 않는다. 어쩔 수없다. 오늘은 이만 가 보련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서귀포시 시내 가까운 곳에 낯설지만 새로운 개념의 정원이 있다는 것은 찜해둘 만한 사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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