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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ug 14. 2018

여름... 해 질 녘 1

고산 수월봉과 차귀도의 저녁 무렵

언제였던가 

우리 마음속에 해 질 녘이 늘 멋진 감동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일들이

무엇보다 다정한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 일들이

언제나 자신이 찾으면 멋진 풍광을 내어주리라는 자만심 가득한 기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잔뜩 품고는 기다리고 기다린다


고산 수월봉에 가면 그 기대가 현실이 된다 

사람들은 때가 되면 하나둘씩 바닷가와 천문대 언저리와 전망대 주변으로 꾸역꾸역 몰려든다

언제부터 이 곳이 그토록 아름다운 노을을 주는지 알게 됐을까

언제부터 다정한 혹은 기다림의 미학이 고되더라도 할만한 일이라고 알려주게 되었을까


나 역시 기억이 없고 계기도 없다 

제주에서 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닿게 되는 곳이고 

별일 없이 해넘이가 끝나 어둠으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이 장소에 다다른다

고산의 너른 평야를 보면서 제주에서는 흔치 않은 수평선 느낌을 받는다 

문뜩 해가 하루를 마감하는 순간 이러다 노을을 놓치고 말겠다는 초조함이 몰려든다


수월봉에 헐레벌떡 닿게 되면 그때야 알게 된다

멋진 해넘이보다

사람이 그리워진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사람도 나를 기다리지 않을까 한 번쯤 확인해 보고프다는 것을 


노을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원래부터 그 색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붉은 감정을 가지고 놀라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또는 낯 뜨거운 고백에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원래부터 노을의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수월봉과 차귀도 앞바다는 그래서 슬픈 석양의 느낌보다는 희망을 주는

붉은 따스함을 지녔다


아뿔싸 해가 넘어간다

사람들이 뒤로 넘어가지 않아 다행이기는 하지만

저 꼴닥이는 순간이 잠깐만 짬깐만 하는 사이, 

침을 목으로 몇 번 넘기지도 못하는 사이

물아래로 숨고 말았다

아쉬운 표정을 한 순간이 아직 남아 다시 아쉽다


밤이 올 것 같지 않도록 오랜 숯불의 장작처럼 격하지 않게

늘어지지 않고 열정을 담는 창끝의 따가움으로 

바다와 하늘과 사람의 가슴에 희망과 기대를 남긴다

눈을 돌릴 수가 없다 

걷다 보면 다시 눈길이 바다에 닿아있고 

이를 아는지 새로운 어둠 이전의 세계를 선보인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낚시를 한다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시간을 따라 도망치기도 한다 

때가되면 기다리는 사람에게 차분히 속삭인다

그래서 낚시를 던지기도 하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옆사람에게 어깨를 내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바다라는 이름에 빗대어 태양은 서쪽 세상의 의미를 전해준다

서방정토이건 혹은 어둠의 세상 어딜지라도 

지금의 모습이라면 무엇이 두려울 수 있을까


그래서 도대체

바다에 앉아 노을을 담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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