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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ug 21. 2018

동부오름군이 줄을 서다

검은오름 옆 알바매기오름의 숲을 헤치다

한 여름의 뙤약볕이 지칠 줄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주말 아침 지친 몸을 이끌고 뒹굴거리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지난주 북오름 코앞에서 봤던 검은오름 앞의 오름을 이어 가기로 했다


지도를 찾아보니 검은오름 바로 옆은 웃바매기. 그 앞쪽에 위치한 것이 알바매기다. 어차피 구좌쪽을 중심으로 동쪽의 오름들을 차례대로 다 둘러보기로 작심을 한 터라 쉽게 갈 수 있는 오름 혹은 나름 접근이 용이한 오름부터 올라보기로 한다.   

   ㅈ 

지도상에서는 쉽게 찾을 것 같은 입구가 막상 오름 코앞에 가보면 입구를 찾기가 영 쉽지 않다. 분명 봉우리 옆으로 도로가 지나가는데 아무리 봐도 삼나무로 잔뜩 덮인 봉우리 주변에는 높은 담만 쌓여 있을 뿐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쯤이지 않을까 싶은 곳을 지나고 나니 오름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속도를 줄이며 반대편으로 차를 돌리려는 사이 건너편에 표짓돌이 커다랗게 서있다. 알바매기 오름이란다. 길거리에 입구가 저토록 크게 쓰여있으면서 사전에 이정표를 찾을 길이 없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무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차를 세우거나 차가 충분히 지날 수 있는 농로 혹은 임도가 보인다. 이 정도면 문제가 없겠다고 여기며 길을 나선다. 우선은  편안한 길이 먼저다. 차 세운 바로 앞에 길이 보이는데 숲이 너무 우거져 있어 막상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임도를 따라가다 보니 산소나 밭으로 들어가는 길들이 이어져 있다. 어느 것이 오름으로 오르고 어는 것이 산소나 밭으로 이어지는 길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한두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막상 게으름에 굴복하는 기분으로 넓은 길을 따라 무작정 걷는다. 이 길을 가면 결코 오름 정상으로 오르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이 섬에도 불구하고 길이 편하다는 이유로 계속 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어느 정도 걷다 보면 분명 봉우리로 치고 올라야 할 갈림길이 나올 텐데 애써 무시한다. 


길거리에 입구가 저토록 크게 쓰여있으면서 사전에 이정표를 찾을 길이 없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무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인생이란게 그런 게 아닐까. 어디선가 갈림길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애써 외면하다 보면 궁지에 몰리게 된다. 매 순간순간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을 알면서도 언제나 게으름이나 나태함은 삶은 선택에서  우선하기 마련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길은 길이 아닌 듯 계속 오름의 둘레를 돌며 반대편으로 걷는 이를 이끈다. 더군다나 모든 길들이 트럭이 다닐 정도로 넓게 흔적이 남아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명확하다. 재선충 소나무를 체크하고 일부를 베기 위해 오름의 중턱까지 치고 올라왔을 터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그 흔적을 따라 걷는다. 

어디선가 갈림길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애써 외면하다 보면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이윽고 한계가 왔다.  둘레로 이어진 길이 오름과 멀어지며 입구의 반대편 밭으로 이어진다.  이러다가는 반대편 숲 속 어딘가의 알 듯 모를듯한 입구로 나올 곳이다. 고민 끝에 발길을 돌린다. 분명 가파른 길로 오르는 갈림길이 있었던 기억과 그것을 애써 무시했던 기억이 있다.  길이 꺾이는 언저리쯤에서 오름 정상 쪽을 바라보니 숲이 우거져 있음에도 나무와 나무 사이가 큰 나무보다는 가는 잡목으로 흩어져 보인다. 언뜻 보면 등반로라고도 볼만한 자국이 나있다. 재선충병 검사하느라 이곳으로 올랐을 것이다. 이쯤에서 무작정 비탈을 치고 오르기로 한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역시 고정된 등반로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등반로가 아니라고 해서 온갖 가시덤불이나 잡목으로 엉켜있어 앞으로 나가지 못할 만큼은 아니다.  그대로 올라간다. 비탈이 심해서인가 기분이 상해서인가 온몸에 피곤이 급격하게 밀려온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후회되고 짜증이 난다.  왜 이제 와서...    


역시 고정된 등반로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등반로가 아니라고 해서 온갖 가시덤불이나 잡목으로 엉켜있어 앞으로 나가지 못할 만큼은 아니다   
 그 

간간히 거미줄이 앞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오를만하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반갑게도 노끈으로 나무에 등산로 표시한 표식이 보인다. 등산로는 아니지만 이곳으로 올라가도 무방하다는 표시 정도로 읽힌다. 아주 오래고 낡았지만 나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예상하고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작은 배려다.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과연 조금 더 오르니 원래의 등반로와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길이 그다지 바뀌는 것은 없다. 다만 이때부터는 좀 더 많은 거미줄과 풀과 잡목이 앞을 가로막는다. 온몸으로 길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억새풀이 점점 길어지더니 길이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래 봐야 정상이 코앞이다. 밀고 가면 그만이다. 

아주 오래고 낡았지만 나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예상하고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작은 배려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오름은 한여름에 오면 불편하다는 사실이다. 길이 숲 속에 흩어지기도 하고 웃자란 풀들이 길을 막고 있으니 순간순간 헷갈리는 구간이 많아진다.

   

 

정상의 순간은 특히 조망이 트인 오름의 정상은 과정의 모든 어려움을 잊게 해준다. 이 오름의 정상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그동안 구좌 오름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는데 익숙했던 풍경이 새롭게 보인다. 이 오름은 거문오름 옆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덕천과 김녕은 물론 송당과 성산까지의 오름들이 줄지어 눈앞에 서있다. 바로 코 앞의 북오름부터 멀리 외떨어져 있는 둔지오름을 비롯해  높은오름과 멀리 지미봉과 우도까지 동쪽의 오름 모두 모여 줄을 서 보시오라고 외치듯 모든 오름이 줄을 서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오름은 한여름에 오면 불편하다는 사실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라산이 뭉게구름과 함께 한껏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오늘도 비가 내리기는 그른 모양이다. 파란 하늘과 흰색 구름이 가득 찬 하늘과 그 하늘을 받들고 서있는 한라산이 정상을 숨기고 있다. 정상 부근에는 비라도 오려는지 약간의 구름이 뭉쳐 있지만 비구름이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색의 대비가 재미있다. 파란색과 흰색 그리고 초록의 향연이 온 세상을 구분하여 제 갈길을 가고 있다.      

 

내려오는 길. 선택을 포기했던 갈림길중 어딘가 나올 것이겠지만 그 출구는 모른 채 무작정 반대편을 따라나선다. 원래대로라면 이 길을 따라 올라왔던 길을 하산길로 택했겠지만 반대도 오히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내려가는 내내 워낙 비탈이 심해서있지 밧줄을 나무들 사이에 묶어놓은 구간이 대부분이다. 이 비탈을 올라왔다고 생각해보니 막연한 버티기가 결과적으로는 괜찮은 선택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고 내 선택이 전적으로 옳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색의 대비가 재미있다. 파란색과 흰색 그리고 초록의 향연이 온 세상을 구분하여 제 갈길을 가고 있다

이미 하산길을 선택한 순간 온몸의 피곤함은 극에 달한다. 헤매느라 한 시간 30분 정도를 걷다가 경치 구경을 한때문인지 피곤함이 나아지질 않는다. 계획대로라면 바로 코앞의 웃바매기오름도 가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빨리 바다로 가서 옷 입은 채로 그대로 잠수하기를 기대하며 하산길의 속도를 낸다. 도중에 팝콘을 닮은 버섯과 먼나무인지 어떤 나무인지 빨간색 열매로 가득한 나무도 만났지만 피곤함이 모든 것을 앞서고 있으니 내 저질체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왜 이모양이 되도록 몸을 그토록 혹사시켰단 말인가. 스스로 자책하며 후들거리는 하체를 겨우 버티면 걷는다.  반성의 수준이 도를 달리해야 할 판이다. 부끄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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