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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r 31. 2016

벨롱장_세화 바다에 모이는 바람의 영혼들

바람이 몹시 불어 대던 3월의 마지막 주 세화바다에서

세화 벨롱장은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열린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열렸다 닫힌다. 그래서인가 사람들의 집중도가 강하다. 제주도에서 처음 시작된 이주민들의 벼룩시장이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다른 곳도 아닌 세화 바닷가에서 열린다는 것은 방문객들을 설레게 하는 낭만의 한 대목이다.


구좌의 바람은 제주 어느 곳 못지않다. 자연의 척박함을 상징하던 바람이었을 테지만 방문자들에게 그 바람은 척박함과는 달리 자신들의 영혼을 부르는 신호와 같다. 기존의 제주적 관점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일 것이다.


하늘을 보니 나 역시도 부르는 신호가 들린다. 토요일 오전 예전과 달리 부리나케 서두른다. 금요일 저녁부터 긴장을 풀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토요일 오전에 일찍 일어나는 일이란 매우 어렵다. 한주중 가장 긴장이 풀린 시간이기 때문이다. 


바람은 척박함과는 달리 자신들의 영혼을 부르는 신호와 같다


주섬주섬 일어나 아침을 포기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도로가 잘 뚫렸음에도 불구하고 연동에서부터는 멀다.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나 역시 제주의 거리 감각에 익숙해져 가는 모양이다. 서울에서 1시간이라면 아무것도 아닌 거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바닷가는 이미 장사진을 친 채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파란 바다가 더욱 빛을 발하는 날 자그마한 테이블에 자신만의 정성과 영혼을 담았을 물건들이 아기자기하게 널려있다. 세화 바다가 유독 더 파랗게 보인다.

으레 부는가 싶은 바람이 남다르다. 한참을 서성이다 보니 추위가 옷 속으로까지 스며든다. 개인적인 이유로 판매자들에게 지금 사는 지역을 묻고 다녔다. 서울서 내려와서 제주도에 정착을 고려하는 사람, 구좌와 송당에 터를 잡고 있는 사람, 조천 혹은 제주시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판매자 등 다양한 거주지를 가진 판매자들이 몸을 움츠리며 서있다. 바람이 예사 바람보다 세다. 춥기까지 하다.


세화의 바람이 영혼의 무게를 시험하는 느낌이다. 이 바람을 오롯이 견디는 사람은 바닷가에 서서 세화 바다와 함께 동화되며 살아갈 것이다. 많은 판매자들이 추위에 몸을 떨면서 자신의 위치를 사수한다.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며 이 매대 저 매대를 기웃거리며 돌아본다.  


사실 제주 외곽에서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모이기란 쉽지 않은 풍경이다. 오일장을 제외하면 특히나 그렇다. 그만큼 벨롱장은 흥미로운 장터로 자리를 잡았다.

유심히 물건을 바라보는 관광객. 사실은 집사람이다. ㅎ.ㅎ

언제나 느끼지만 사람 손으로 만들고 개인의 창의성을 반영한 제품들은 용도와 상관없이 눈길을 끈다. 더구나 그 장소가 제주의 바다인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햇볕이 좋아 바다의 색이 더욱 눈부신 날 벼룩시장은 함께 하는 것만으로 유희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에게는 다시없는 기회다.


이 바람을 오롯이 견디는 사람은 바닷가에 서서 세화 바다와 함께 동화되며 살아갈 것이다


얼마나 팔리는지는 모를 일이다. 나야 주머니가 비어있어 무엇을 살지 생각도 못하지만 기웃거리는 매대마다 혹시나 나를 감동시킬 무엇인가 있을까 관심이 끌린다. 이 모습 자체가 제주의 이주민이 만들어 놓은 문화적 현상의 하나라는 점은 상품들의 수준과는 다른 문제인 듯 하다. 장터 이상의 그 무엇이면 좋겠다. 아직 벨롱장은 잠시 열렸다 사라지는 색깔만으로도 영향력을 갖는다. 


추억은 미소를 낳고 미소는 관계를 만들어 간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달고나 대신 마시멜로를 숯불에 굽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정겨움의 미소를 한껏 떠올리게 된다. 시간은 멈추는 대신 새롭게 흐르지만 과거의 기억이 잊힐 필요는 없는 일이다. 다시 시간의 한 자리를 차지하면 될 일이다.


도시의 발 빠른 시간과 달리 제주는 제주의 시간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장터. 그 장터에서 사람들은 바람을 타고 자신들의 영혼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세화는 도시인들에게는 특히 영혼의 공명을 잘 전달시키는  유사한 코드를 가진 곳이다. 


12시가 넘어 1시가 가까워진다. 바람이 잦아들지 않자 사람들이 주섬주섬 짐을 쌓기 시작한다. 3월 하순의 세화는 섣부른 사람들이 모이는 대신 제주의 꿈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바라는 듯했다.


마시멜로를 달고나 대신 구워 먹는 그림을 카메라에 담으며 나는 판매대의 끝자락에 섰다. 


타로점을 치는 남자분이 내게 묻는다.

 "당신은 이 일을 왜 하고 있습니까?"


나 대신 아내가 타로카드를 뽑았다. 그녀는 2016년의 새로운 의미를 남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나름 만족스러운 계기를 얻을 듯했다. 삶의 행운은 어느 곳에서나 있는 듯하다. 내가 주춤하는 사이 세화의 바람은 아내에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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