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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Sep 09. 2016

제주 동부의 이정표_다랑쉬오름

구좌 생활을 위한 동네 나들이 및 신고식

다랑쉬 오름을 오르는 일은 어찌 보면 신고식과 흡사하다. 내가 제주에 왔으니 스스로의 마음을 알리는 과정이 한라산에 가는 일이라면 제주 동부지역은 그 역할을 다랑쉬 오름이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성산일출봉을 이야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바다를 이야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제주 동부 지역의 상징적인 이정표는 공교롭게도 다랑쉬오름이 심리적 역할을 담당한다. 동부지역에서 가장 높고 우뚝 솟아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상에서 보여주는 동부오름 군락군과 세화 바다 그리고 멀리 배경 역할을 해주는 일출봉과 한라산이 360도를 돌며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자림'과 '용눈이오름'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오름. 오름의 외형은 몹시 가파른 비탈을 이루고 있다. 오름 주변에는 다랑쉬마을이 있었으나 4.3 사건 때 없어졌고 4.3 사건 때 희생자인 유골 11구가 발견된 '다랑쉬굴'이 있다.

공교롭게도 입구에 놓인 다랑쉬오름에 대한 설명이다. 이중 생략한 내용이 있다.

"이 일대에서는 남서쪽의 '높은오름'(표고 405m) 다음으로 높은 오름(표고 382m)이다."

제주 동부 지역의 상징적인 이정표는 공교롭게도 다랑쉬오름이 심리적 역할을 담당한다

이 말대로라면 높은 오름이 더 높다. 그동안 다랑쉬가 더 높다고 알고 있던 나의 상식이 무너진다. 다시 다랑쉬 오름의 표지석 내용이다

"동부지역의 오름들 중 비고가 가장 높은 오름이다"

이 말로는 다랑쉬 오름이 동부에서 가장 높다.


어느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분화구에 도착하니 정상의 모습이 보인다.
분화구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

아침에 일어나서는 다랑쉬오름에 가리라 결심했다. 나름 평대에 자리 잡은 숙소, 아니 새로운 생활터전에 대한 결심을 알리기 위한 신고식을 하고 싶었다. 구좌지역으로 생활근거지를 옮기겠노라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그 첫 시작을 괜히 다랑쉬 오름에 올라 동부지역의 너른 들판과 그 사이에  연이어 솟아오른 오름들을 굽어보고 더불어 바다와 성산일출봉, 그리고 우도에 이르기까지 나 자신을 그 한가운데 세우고 싶었다.


다랑쉬 오름은 그런 곳이다. 동부지역에서 자신을 세우거나 이 지역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 높다는 자부심으로 4.3 사건의 아픈 상처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어느덧 상징적인 오름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아가고 있는 곳이다.


왼쪽부터 좌보미, 이상하게 생긴 동거미, 그 오른쪽 옆 낮은 평지스러운 문석이, 뒷편의 백약이, 그리고 오른편의 우뚝 솟은 높은 오름이다. 이제야 조금 오름 구분이 된다.

설렁 설렁 걸어도 될 듯한 다른 오름들과 같이 다랑쉬오름은 첫 시작도 가파르지만 숨을 충분히 헐떡이게 할 만한 높이와 그 보상을 충분히 해 주는 곳이다.


길을 오르며 뒤돌아보면 소돔과 고모라처럼 굳어버려 인형이 되어버린다거나 오르페우스처럼 죽은 자신의 아내가 사라져 버린다는 위협을 받아도 슬금슬금 궁금증이 솟아나는 길이다.

다랑쉬오름은 첫 시작도 가파르지만 숨을 충분히 헐떡이게 할 만한 높이와 그 보상을 충분히 해 주는 곳이다

분명 멀고도 풍부한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을 알고 있는데 이를 모른 채 하기 쉽지 않다. 그럴 바에는 가족과 아내 신경 쓰지 말고 제주의 풍경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 된다. 그 보상은 무엇보다 역동적으로 한 순간에 다가온다.

봉우리가 말발굽형처럼 한쪽으로 용암이 흘러내린 구조가 아닌 온전한 분화구를 갖춘 곳이라 오름을 한 바퀴 돌며 느끼는 상쾌함은 멋지다 못해 여유롭다. 다른 오름이라고 왜 한 바퀴 돌곳이 없겠는가 마는 이 오름의 분화구는 돌면서 분화구와 뒷 배경이 아주 조화롭게 나그넷길 같은 느낌을 전달해주는 재주가 있다.


제주에 내려와 매 주말 올레길을 걸으며 시간을 보내던 시간들. 일요일 오후 느지막이 일을 끝내고는 어딘가로 가지 않으면 좀이 쑤실듯해 찾았던 곳이 다랑쉬오름이다. 오름에 대한 이해는 물론 어떤 오름이 있는지 조차 모른 채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다른 사람과 하던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듣고 가보기로 한 오름이 다랑쉬였다.


그 날 역시 파란 하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동부 제주의 풍광을 얻었고 아주 가까이 특이하게 생긴 아끈다랑쉬라는 작은 다랑쉬오름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 오름의 분화구는 돌면서 분화구와 뒷 배경이 아주 조화롭게 나그넷길 같은 느낌을 전달해주는 재주가 있다

해 질 녘 노을의 잔영을 그리워하며 다랑쉬를 내려오고는 아무런 기대 없이 민둥산이를 생각나게 하는 아끈다랑쉬를 주섬주섬 올랐다. 아끈다랑쉬는 억새풀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딱 한그루의 나무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구조다.


나는 평생 억새밭에서 노을을 맞으며 바스락 거리는 바람소리에 맞춰 혼자 걸어본 경험이 없었다. 더구나 그 너머 일출봉이 자리 잡은 가을의 저녁을 보며 처음으로 벅찬 감동을 제주로부터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아끈다랑쉬를 오늘이라고 건너뛸 수는 없다.

아끈다랑쉬 오르는 길
아끈다랑쉬 오름은 다랑쉬오름 동남쪽에 위치한 해발 198m, 비고 58m인 분석구이다. 다랑쉬오름과  나란히 닮은꼴을 하고 다랑쉬오름에 딸려있는 나지막하고 자그마한 오름이란 뜻에서 아끈다랑쉬(작은 다랑쉬)라 부른다. 정상에 올라서면 분화구 모양이 마치 원형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작고 귀여운 오름이다.

아끈 다랑쉬를 달려간 이유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한 이유도 있었다. 다랑쉬만 멋있는 것이 아니라 아끈다랑쉬의 억새 속을 걸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었다. 다랑쉬를 내려오자마자 사람들은 차를 향해 걸어가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끈다랑쉬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오늘 알게 된 사실. 아끈다랑쉬는 사유지 오름이라는 점이다. 누가 저 이쁜 오름을 소유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함이 새록새록 솟는다.


아끈다랑쉬를 오르며 바라본 다랑쉬 오름

아끈다랑쉬는 정상이랄 게 없는 오름이다. 분화구 주변을 둘러봐도 입구에 나무 한그루가 서있고 모두 억새풀이다. 나는 그 나무에 다시 오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내려간 지 거의 2년이 되어가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자신에게만 나는 그 나무를 약속의 나무라고 부르고 있는 터였다. 그 약속의 나무는 여전히 생생히 억새밭 사이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반갑다.


자신에게만 나는 그 나무를 약속의 나무라고 부르고 있는 터였다. 그 약속의 나무는 여전히 생생히 억새밭 사이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억새밭은 사이로 길이 조금씩 나 있어 처음에는 걷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봉우리의 반대편으로 가려니 억새의 높이가 허리는 물론 가슴을 지나 높게 자란 녀석들이 앞길을 끊임없이 막아대고 있다. 한라산 중턱에서 조릿대에 길이 막혀 갈길을 잃고 헤매던 상황과 비슷하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길을 잃을 일이 없다. 그냥 나무가 있는 곳을 향해 한 바퀴를 돌면 그뿐이다.  그래도 만만치 않다. 하긴 2년의 세월이 이곳에도 또다시 무르익었으리라.


갈색이 아닌 한여름의 억새밭은 말그대로 억새다. 뻗뻣하기 이를때 없이 내 앞길을 막는다. 그래도 헤쳐가는 재미가 있다.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헤쳐가는 재미를 느끼는 것.

억새너머로 용눙이 오름의 부드러운 곡선이 이어진다.

푸르름으로 가득한 억새길을 걸으며 나는 다시 원위치로 왔다. 멀리 조금전 올랐던 다랑쉬를 오르며 다시한번 제주를 생각한다. 일단은 제주의 전부보다는 제주의 동부, 내가 새롭게 터전을 잡기위해 무모하게 시도한 동부안착을 위해 다랑쉬에 신고식을 왔다. 그 신고식이 길지 않아도 나는 어느새 돌아가는 길이 멀지 않은 친숙함이 남아있음에 어색해 했다.


'돌아갈 길이 멀지 않네.'


혼자서 싱글거리며 독백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이상했다.

아직 해는 노을빛을 뿜어대려면 꽤나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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