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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pr 22. 2016

박쥐가 날개를 편 바굼지 오름_단산 1

북쪽 단산의 느낌과 문뜩 먼저 들른 대정향교.

박쥐는 다시 날 수 있을까.

어제의 폭우와 비바람에 지쳐 토요일을 보내고 난 일요일 아침.


우선 비바람에 제주공항에 2만여 명이 발이 묶였다는 소식이 들린다. 요즘 자주 결항사태가 벌어진다. 제주관광의 본질적인 한계 중의 하나인 셈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몰리고 많은 비행기 편을 만들어놔도 바람과 눈 등 기상 사태에 문제가 생기면 여지없이 도로아미타불이다. 인간의 한계를 다시 한번 경험케 하는 순간들인 셈이다.


제주에서 흔히 이맘때쯤이면 비가 한 번씩 온다고 한다. 이를 고사리 장마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 모양이다. 한 번씩 비가 내리고 나면 고사리에 집착하는 분들에게는 쾌재가 아닐 수 없다. 하루 만에 고사리와 고비 순이 쑥쑥 올라올 테니 말이다. 


숲에서 자라는 고사리를 찾을 능력도 없는 대신 그저 걷거나 어딘가에 갈 생각만 한다. 


아침 날씨가 서서히 좋아지는 분위기다. 새벽녘인지 아닌지 언제부턴가 비가 그쳤다. 많은 구름이 끼어 있기는 해도 점점 햇볕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몸을 위해서, 내일 시작되는 한주를 위해 이번 주의 걸음걸이와 운동을 보충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 가지 미루던 오전 일들을 채 못 끝내고 집을 나섰다. 후보지는 3군데다. 


우선 올레길이 거쳐가지 않은 바닷가를 무작정 걷는 일. 한경 용수리 쪽을 시작점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걸어서 갔다가 다시 차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니 여간 번거롭지 않다. 올레길을 걷기 위해 각 코스의 시작점을 가기 위한 겪었던 번거로움이 생각났다. 진짜 귀찮은 일이다. 피곤이 찌든 상태에서 집에까지 버스를 갈아타고 오는 길이나 먼저 세워두었던 자동차가 있는 출발점으로 다시 되돌아 오는 일이란 너무너무 번거롭게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날씨가 흐린 것을 보니 지난주에 계획했던 노로오름을 가는 것도 고민이 됐다. 원래대로라면야 이 오름을 가야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이지만 흐린 날씨에 나무로 뒤덮인 오름을 올라가 보면 사실 그다지 유쾌한 기분을 주지는 않는다. 지난주 바리메오름을 다녀오면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도 경치 볼 것이 없을 경우 숲 속을 걷는 오름은 천천히 걷는 올레 길에 비해 큰 매력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일이다. 암튼 노로오름은 차를 타고 지나다가 날씨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사실 차를 지나는 순간까지 날씨는 나를 이 오름으로 이끌지는 않았다.

근데 단산이라는 곳을 내가 지나치며 보기는 했던가. 도대체 어디를 단산이라 하는지

마지막은 단산과 군산이다. 이름만으로는 어느 구석인지 모르겠다. 지도에서 위치를 찾았다. 군산은 중문에 더 가깝다. 운동량도 많다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려다보는 풍경이 강정의 풍경일 텐데 썩 내키는 경치는 아니다. 오랜만에 송악산이 보이고 형제섬이 자리한 바다를 볼 수 있는 단산으로 향하기로 했다. 

근데 단산이라는 곳을 내가 지나치며 보기는 했던가. 도대체 어디를 단산이라 하는지 궁금했다.


송악산에 가깝다는 이유로 어느 오름 인지도 모른 채 네비를 찍고 달렸다. 대정향교와 추사의 유배지 흔적이 지척인 동네에 차가 목적지로 삼는다. 이곳은 산방산 바로 옆이다. 네비가 목적지를 알려줬을 때 스스로 깜짝 놀랐다. 

'저 산을 단산이라 하는 거야?'


지지난해 12월 20일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주에 내려와서 불과 3달도 채 안된 상태에서 주말에 할 일이 없는 관계로 매주 올레길을 찾아서 걸었다. 순서대로 걷는 것이 싫어 그날 그날 갈길을 정했다. 그날은 모슬포항에서 용수리까지 가는 12코스의 길이었다. 


올레길은 모슬포항과 대정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모슬봉으로 구불구불 걷는 이들을 안내하고는 모슬봉 뒤편의 공동묘지로 길을 안내했다. 숲 속을 걸으며 무작정 걷는 순간 눈앞에 탁 트인 평야와 우뚝솓은 바위산 멀리 형제봉과 송악산이 보이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별로 좋은 날씨는 아니었지만(겨울의 제주 날씨는 좋은 적이 없다) 탁 트인 풍경을 보는 기분은 언제나 상쾌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눈에 낯선 이상한 바위 봉우리가 눈에 띄었다. 뭐라 모양을 설명하기 쉽지 않은 모양새였다. 얼핏 보면 모자 같기도 하고 아님 종이배스럽기도 한 특이한 모양의 바위 봉우리들이 산방산 앞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모자 같기도 하고 아님 종이배스럽기도 한 특이한 모양의 바위 봉우리들이 산방산 앞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제주에 익숙지 않은 나에게 산방산만으로도 특이한 지형이었고 바닷가 쪽에서 보면 산방산 뒤편의 이 이상하게 생긴 봉우리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우중충하고 바람이 불던 이유였는지 그 봉우리는 음침한 분위기에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은 악산임에도 불구하고 양기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때의 기분은 저 주변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다지 좋은 기운을 받으며 살지는 않겠구나 하며  날씨와 추위와 늦은 오후 시간의 모든 쓸쓸함을 그 봉우리 탓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벌써 1년 반전의 이야기다. 그 봉우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 봉우리가, 아니 단산이라 불리는 그 산이 오늘의 목적지였는지 나는 몰랐다. 아! 이 어이없음이여.

모슬봉에서 본 단산과 산방산. 오른쪽 바다로 형제섬이 보인다.

날씨 탓인가. 내가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그 봉우리에서 예전의 우울함이나 스산함이 덜 한 듯 싶다.  동네의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 산이 여러 개가 합쳐저 날아오르려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북쪽 방면은 깎아지를듯한 바위로 구성되어 있어 위험해 보인다. 재밌는 사실은 옛사람들도 북쪽산의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던지 단산 북쪽 마을은 단산을 향해 방사탑(사악한 기운을 막기 위해 세운 탑)을 4개나 세웠다고 하니 사람들 느낌은 비슷한 모양이다. 대체로 마을에 하나씩 세우는 모양인데 4개나 세운걸 보면 사악한 기운이 매우 강했던 모양이다.

 

왜 사람들이 이 봉우리를 바굼지(박쥐) 오름이라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 가운데 높은 바위 봉우리가 있고 양옆에도 봉우리가 멀지 감치 떨어져 올라있는데 그곳까지 바위 능선이 이어져 있다. 약간만 생각하면 영락없는 박쥐의 모습이다. 역시 제주사람들 아니 마을 사람들은 주변의 지명에 대해 솔직한 이름을 부여해준다. 


단산 북쪽의 인성리 쪽에서 입구를 찾아보니 잘 나타나지 않는다. 오는 길에 단산사 입구가 보이는데 저기가 입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일단 향교가 궁금하다. 대정향교를 시작점으로 하기로 했다. 일단 대정향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즈넉한 옛 향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널찍한 주차장에 아무도 없다. 


가운데 높은 바위 봉우리가 있고 양옆에도 봉우리가 멀지 감치 떨어져 올라있는데 그곳까지 바위 능선이 이어져 있다


살며시 열린 낮은 문으로 일단 몸을 들이밀고 본다. 의외로 정겹고 고즈넉하다. 옛적에 이곳에 앉아 공부를 하면 공부는 잘 되었듯 하지만 이 먼 고장에서 유교식 공부를 한다한들 과연 중앙무대에 벼슬을 할 수 있는 길이 있기는 한 것일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추사 같은 양반이 이곳에 유배를 왔다. 그것은 이미 최고의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이다. 이 먼 곳에서 자력으로 공부해 과거 급제로 벼슬을 한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 일일까 싶다. 괜히 이곳 향교가 결국 이 지역을 통치하는 이데올로기의 양산지로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럼에도 장소 하나만은 나무랄 데 없이 좋다. 제주도를 삼분하는 행정지였던 대정현의 또 다른 중심지 역할을 했을 터이다. 


나무와 건물이 따뜻한 양지에 자리를 잡은 게 공부보다는 세월을 낚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리라. 오늘날처럼 교통이 발전된 시기에도 이곳은 세월을 낚기 좋은 위치인데 옛적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해가 간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내가 좋아하는 나무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대부분은 팽나무인 경우들이 많지만 모든 나무들이 자신들만의 구력을 자랑하듯 스스로 제멋을 부리며 하늘을 오르고 땅을 디디며 자신의 모습들을 멋대로 장식하고 있다.


남쪽 바다의 풍경과 이 지역의 평야지대에서 주는 풍족함이 아마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제주도의 다른 지역보다 조금은 여유로움을 주었을 듯 싶다.


실제로 넓은 밭을 지니고 밭벼를 지을 수 있는 제주 유일의 지역이 아니던가.  물론 그곳이 이곳까지 포함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앞에 널게 펼쳐진 알뜨르 비행장까지 포함하면 평야지대가 지닌 탁 트인 느낌은 호연지기를 생각나게 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갗주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4서 3경의 유교 경전보다는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이 더 어울리는 풍경이었으리라. 차라리 이곳에서 무를 깨우치는 것이 더 나았지 않았을까. 물론 내 선택은 아니지만 자연은 자꾸 무위로 돌아가라 한다.

쉬엄쉬엄 향교를 돌아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깜빡했다. 이미 시간이 오후로 한참을 지나가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서둘러 단산을 오르기로 했다.


향교 문을 나서니 세미물이 나는 샘이 떡허니 버티고 있다. 추사 김정희도 자신의 글에서 숙소에서 세미물까지 멀어 번거롭다고 적었다 하니 추사가 좋아하는 차를 위해 이 물이 꽤나 많이 이용된 듯하다.


옆으로 지나 입구를 찾아볼까 하다 세미물의 표지석 옆에 난 큰 길이 눈에 띈다. 이 길은 필시 소나무 재선충병을 때문에 나무를 베기 위해 만들어놓은 길이 분명할 텐데 너무가 크게 길이 뚫려있다. 사람이란 간사하다. 정신 탐방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이 길을 가보고 싶어 진다. 마치 잘못이라도 저지를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무작정 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높지도 않은 산인데 오르는 길이야 없겠어?' 

본격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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